Heraus kommt heraus

예전에 알았던 어떤 아저씨(진짜 아저씨. 큰 아이 중학생 작은 아이 유치원생.)가 당신 친구들은 '낭만적'인 것을 좋아한다면서 예를 하나 들었는데, 친구 한 분은 여자를 납치해서 딴 데 가서 몇 년 살다 나타났다고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몇 분의 아줌마와, 나와, 내 또래 아가씨 한 사람은 입을 모아 그게 무슨 낭만이냐고 했다. 아저씨는 낭만적이라고 주장했다.

최근에 우리 애인이랑 그 얘기를 하게 됐는데, 그거 낭만 맞다고 한다. 남자의 로망이란 '그녀를 위하여 내 모든 걸 버린다'는 원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녀를 보쌈해다가 몇 년간 피난살이를 하고 온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 - 직업과 인간관계와 기타 등등 - 을 그녀를 위해 포기한 것이니 낭만 맞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여자 독자들이라면 입을 모아 말할 것이다.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고. 둘이 죽도록 사랑하는데 부모형제가 반대해서 어쩔 수가 없더라, 그래 둘이 손잡고 어디 멀리 도망가서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았다, 이거라면 여자에게도 낭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납치'는 절대 낭만의 요소가 될 수 없다.

그러면 여자의 낭만이란 뭘까. 애인을 이해시키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달콤하고 촉촉하고 부드러운 것, 그런 느낌인데.. '그녀를 위하여 내 모든 걸 버린다'는 식으로 한 마디로 꿰어 낼 원리란 게 있을까?

일단은 말했다.
정서적 친밀감이 가장 중요해.
근데 또 막히는 거다. 정서적 친밀감이 전제된 상태라면 다 되는가? 애인이 '이렇게 한다면 어때? 낭만 맞아?'라고 질문하는 것에 답하다 보니 '럭셔리' 비슷한 개념이 나오는 것 같다. 으음, 근데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고, 여자들이 꿈꾸는 '낭만적인 프로포즈', '낭만적인 여행', '낭만적인 기념일', '낭만적인 결혼생활' 뭐 이런 것들이 대개는 돈 드는 아이템들을 필요로 할 때가 많지만(하다못해 촛불 한 자루라도 밝히려면 초값이 든다. 촛대까지 구비하려면 촛대값까지 든다.) 그렇다고 액수나 화려함 자체가 절대적인 잣대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액수가 들기로 친다면 보쌈은 촛대 하나 사는 것의 수십배의 돈이 든다.)

하루동안 용산전자상가를 돌아다니며 낭만적인지 아닌지 모를 쇼핑을 같이 하고 나서 나진상가 맞은편 롯데리아에 앉아 쉬다가 하나는 정리가 됐다. 아까 그 납치 이야기가 왜 낭만이 아닌지.

남자 입장에서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고 했을 때 '그녀를 위해'는 사실 두 가지 의미가 될 수 있다. 'to HAVE her, to make her mine'과 'for her'.

전자의 경우라면 여자 입장에서 낭만이 되기 어렵다. 그건 공포다. 나는 싫어 죽겠는데 나를 보쌈해 가서 내 삶의 뿌리를 뽑아 버리고 좋지도 않은 당신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버린다면 그게 어찌 낭만인가. 경우에 따라 세월이 흘러 그런 당신이라도 정붙여 살다 보니 이것이 사랑인가부다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잖아 있겠지만 낭만은 아니다. 나에게 전혀 친밀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방식으로 맨날 쫓아오고 잡으려 들고 구속하려 드는 당신은 나의 낭만이 될 수 없다. 당신은 나의 공포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더 힘이 세고, 폭력을 잘 사용하고, 극단으로 쉽게 나아가며, 잘 알지도 못하는 사회구성원으로부터 쉽게 동의와 지지를 얻어내는(요건 나중에 따로 자세히 풀겠다) 것을 생각한다면 당신은 내게 내 존재 자체를 걸고 마주치는 극도의 공포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낭만의 필요조건이 맞다. 나를 위해 쪽팔림을 무릅쓰고 큰 꽃다발을 들고 사람 많은 거리거리를 지나 나를 찾아온 당신은 나의 낭만이다. 나를 위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초가집을 짓고 내게 손 내미는 당신은 나의 낭만이다. 나를 위해 부모님의 선 보라는 압박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당신은 나의 낭만이다. 나를 위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결심하는 당신은 나의 낭만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가요의 노랫말이나 드라마 속에서 '너를 위해' 떠나는 남자는 여자에게 낭만이 맞다. 물론 남자의 낭만은 될 수 없을 것이 뻔하다. 남자에게 '너를 위해', '그녀를 위해'라는 말은 첫번째와 두번째 뜻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여자에겐 낭만의 적이 될 수도 있는 첫번째 뜻에 치중되어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너를 위해 떠날 거야'라는 고백은 여자에게는 슬픈 낭만이 될 수 있지만, 남자에게는 여자를 위해 자신의 전 존재를 내던지지 못하는 비겁쟁이의 변명 외에 다른 것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아하, 정리해 보자. 여자의 낭만에 대해서.
일단은 정서적 친밀감, 사랑의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진정 나를 위해 이루어지는 남자의 희생(크든 작든, 물질적이든 감정적이든)과 배려 또한 필요조건이다. 그리고 크든 작든 그 상황에 적합한 따뜻하고 촉촉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느낌을 자아내는 어떤 아이템 또한 필수 조건인 것 같다. (그게 꼭 비쌀 필요는 없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과자 사은품 반지를 기억하라. 물질적인 아이템이 정 없다면 남자의 어떤 행동이나 말이 그 아이템이 될 수도 있다.)

이 정도면 여자의 '낭만'을 정의하는 데 충분할까? 읽으시는 분들의 리플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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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raus 2006/03/06 17:45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블로그에 글 올려놓고 다시 생각해 보면서, 좀더 정리가 되었다. 사랑하며 사랑받는 쌍방향성,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에 어긋나지 않는 상황, 이것이 핵심 원리인 듯 하다. 원하는 것이 꽃이면 꽃, 이벤트면 이벤트, 따뜻한 말 한 마디라면 말 한 마디가 필요하겠지. 하지만 아이템이 뭐건, 어디까지나 그 아이템이 위의 두 가지 원칙에 어긋나지 않을 때가 낭만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용산 전자상가에서의 쇼핑 또한 내게 낭만이었다.

  2. asuwish 2006/03/07 10:14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남자의 사랑은 소유를 지향하고 여자의 사랑은 공감을 지향한다는거네. (여기서 섹스 개념인 '남자'와 '여자'를 젠더 개념인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바꾸면 정치적으로 보다 공정해진다..^^)

    내 경험으로도 이 분류는 대충 들어맞는 것 같다. 남자는 때때로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여자를 물질적인 차원에서 쟁취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목표가 단순한 육체관계이든, 아님 애인이나 마누라를 삼는 일이든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상대방을 자신의 뜻대로 꼬시거나 설득하기 위한 필요에서가 아니라면.

    반대로 여자에게 있어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실로 중요하다. 여자의 사랑은 곧 '공감'이고 '소통'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서, 즉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여자는 상상할 수 없는 번민과 고뇌와 전략과 행동을 기꺼이 무릅쓴다. 따라서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어떻게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무엇보다 지대한 관심사가 된다. 여자는 상대방과 공감할 수 없는 결합보다는 차라리 달콤한 이별을 바란다.

    이처럼 남자는 물질의 차원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곁에 두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한 모든 행동의 동기는 이기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자는 정신의 차원에서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을 얻고자 하므로, 불가피하게 이타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자. 여기서 내가 앞서 남자의 감정을 '사랑하는'이 아닌 '사랑한다고 생각하는'이라고 표현한 것을 주목해보자. 여성인 나의 관점에서 소유욕을 사랑에 포함시키는 것은 굉장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소유욕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면 남자는 단순히 '가지고 싶다'는 욕망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남자들은 반대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여기 어떤 여자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그녀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와 자거나 그를 애인으로 삼거나 아니면 결혼에 이르기 위한 어떤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한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그녀의 노력은 인정을 받지 못한다.

    여자가 남자의 소유욕에 거부감을 갖는 것처럼, 남자는 여자의 공감에 대한 욕망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남성성과 여성성 한쪽에 치우친 사랑의 비극이 있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한 사람 안에 모두 존재하는 것처럼, 사랑에는 소유로서의 사랑과 소통으로서의 사랑이 공존하는 것이다. 이성간의 사랑에는 욕심과 희생이 둘 다 필요하다.

  3. BlogIcon heraus 2006/03/07 19:10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멋진 글 고마워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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