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aus kommt heraus

집앞 한약국에서 약탕기를 샀다.
무공해 옹기 약탕기, 3만5천원.
옛날식 약탕기는 길쭉한 손잡이가 마치 주전자 주둥이처럼 뻗어있고
뚜껑은 없어서 한지로 봉하게 돼 있는데
이건 조금 개량디자인이라
손잡이는 양쪽으로 항아리 손잡이처럼 달렸고 뚜껑은 옹기 뚜껑이다.

내 생애 첫번째로 약을 달이고 있다.
올케 언니를 위한 불수산.
한 제 분량의 약재를,
두 첩씩 다섯 무리로 나눠 담아 와서 한 무더기만 달이는 중이다.
사실 불수산은 한 제 다 만들어 먹을 필요는 없는 약인데,
여러가지 의미에서 넉넉하게 한 제를 만들어 왔다.
일단 약재가 간단하게 들어가서 값도 싼 편이고..
처음 달여보는 거니까, 시험 삼아 조금만 달여 보고,
보아 가면서 더 달이려고.
약이 남으면 뭐, 내가 먹지.. 약재들이 다 무난한 것들이고, 보혈약들이니..

옛날엔 약탕기에 달인 약을 면보에 받쳐 거른 다음
면보에 남은 약재를 나무막대로 비틀어 짰는데,
요즘은 부직포 주머니에 넣어서 달인다.
주머니 째로 달인 후에 주머니만 들어내고,
주머니 안에 든 물기 먹은 약재는 나름대로 짜 주는데,
주머니 상태니까, 면보를 접어 막대로 꼬아 짜는 것보다 훨씬 쉽다.
부직포이지만, 환경호르몬 테스트를 거친 안전한 제품이다.(단, 1회용이다.)
그렇긴 해도, 좀 아쉬운 기분이다.
시간 나는 대로 재래시장에 가서 소창면을 좀 끊어다가,
약달이는 주머니도 만들고... 해야겠다.
면은 안심할 수 있고, 삶아 빨아가면서 몇 번이든 쓸 수 있으니까..
당장 내일 공강 중에 다녀와야겠다.

물은... 집에 브리타 정수기도 있지만... 특별히 첫 출산을 앞둔 올케와 내 첫 조카 별이를 위한 약이므로... '제주삼다수'를 구입해 와서 달이고 있다. 생수로 세수해 본 적이 있는 --;; 사람은 내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아 물론 내가 피부미용을 위해서 생수로 세수를 했던 건 아니다. 물이 생수밖에 없는데 세수를 꼭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그리 했었다.) 집앞 슈퍼에 삼다수 외에도 두 가지 브랜드의 샘물이 더 있었는데, 수원이 인구밀도가 높고 골프장이 많은 경기도쪽이길래, 관뒀다. 삼다수가 물맛 좋기로 유명한 브랜드이기도 하고. 달인 약을 작은 페트병에 넣어 택배로 부칠 예정이므로 작은 페트병 자체가 필요하기도 해서, 500밀리리터 들이 다섯 개와 2리터 들이 한 개를 사 왔다.

출산이 임박한 산모를 위한 약은 대략 다음 순서로 먹으면 된다고 한다.
1. 임신 막달(예정일 1달 전부터..)에는 달생산(達生散)을 먹는다.
일명 축태음(縮胎飮)이라고도 불리는 이 약은, 산달에 쓰면 해산을 쉽게 하고 산후의 합병증을 예방한다고 한다. 사실, 이 약부터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미 시기를 놓쳤다. 중간고사 보고 어쩐다구 기냥... 쯔쯔.
2. 출산예정일에 거의 임박해서는 불수산(佛手散)을 먹는다.
약 이름이 재미있다. 부처님손이란다. 부처님 가피로 애기가 쑴풍 나온단 말인가 보다. ^^; 우리 집은 예수 믿으니까, 예수산이라고 바꿔 불러도 좋겠다. ㅋ
선배로부터 진통 시작할 때 한 봉지, 병원 도착해서 두 봉지 먹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출산과는 좀 먼, 새파란 총각들이었고, 지금 생후 두 주 된 딸을 둔 한약국 아저씨는 그냥 예정일 임박해서 3일 정도 먹이라고 했다. 방약합편에 나온 내용도 대략 아저씨 말과 일치하고, 동의보감에도 '산달에 먹으라'고만 되어있지 진통 중에 먹으라고는 안 돼 있다. 한약국 사모님도 그렇게 드셨다고. 아기가 3.85킬로나 되었는데, 큰 무리 없이 자연분만 하셨다고. (이 분은 위의 달생산부터 드셨다고 한다.)
3. 진통이 시작할 때 단녹용탕을 먹는다.
단녹용탕에 대해서는, 내가 늦깎이 한의대생임을 알고, 갈 때마다 자세히 한의학적인 설명을 해 주시는 세황한의원 류원장님께서 처음으로 알려주셨다. 녹용이 어떤 약인지 설명해 주시다가, '그래서 진기를 제일 많이 쓰는 출산 임박한 산모에게 녹용만 달인 단녹용탕을 먹인다'고 말씀해 주신 것.. 근데, 어제 문의하고 다닌 '새파란 총각' 선배들은 단녹용탕을 처음 들어본다고들 했다.(출산 임박해서나 쓰는 약이니, 관심이 없으면 모르는 게 당연한 처방이다.) 본초학 교수님은 '녹용 적당량에 물 적당량을 넣고 마음대로 달여보아요~'라고 실험정신을 강조하는 말씀을 해 주셨고.. --;;; 방약합편을 찾아보니 매우 고농도로 달이도록 지시되어 있다.
한약국 사모님은 단녹용탕은 안 드셨다고 한다. 사장님 말씀에 의하면, 진통올 때 탕약 꺼내 데워 먹을 정신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며, 특히 초산부의 경우 이게 진통인지 아닌지 잘 몰라 타이밍을 놓치기도 쉬울 것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의 경우, 이미 진통올 때 먹는 약을 달여주겠다고 호언장담 큰소리뻥뻥 해 놓았으므로.. 해야지. ^^; 하여, 단녹용탕 한 회분 만큼의 녹용을 구입해 왔다. 개인적으로, 녹용을 달여보는 것만으로도 큰 경험이 될 것 같다. 녹용은 동물성 약이라, 곰국 고아내듯이 오래오래 달여야 한다고 한다.

2006.11.28. 수정: 불수산 10첩은 한 제가 아니다. 한 제는 20첩.
옛날에는 한 첩을 달여 한 번 먹고, 두 번 먹고 난 약재를 모아 말렸다가 다시 달여(재탕) 또 한 번 먹는 식으로 하루에 두 첩을 먹었다고 한다. 요즘은 그렇게 하기가 너무 어려우므로(바쁜 현대생활과도 안 맞지만, 약재 널어말릴 뜰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므로 달이고 난 약재 말리는 게 어렵다) 두 첩을 한 번에 달여 세 번 분량을 빼내는 게 보통이다. 물론 한 제 등의 대량을 주문할 때는 두 첩에 세 번 분량 꼴로 곱하기 해서 빼낸다.

2006.12.3. 추가: 단녹용탕 먹기는 역시 어렵다.
12월 1일 금요일에 만난 동아리 선배 소영언니, 지난 9월에 출산하고 채 100일도 안 된 산모. 달생산부터 시작하여 산전 한약을 모두 달여 드셨는데, 단녹용탕은 미리 달여 냉장고에 넣어 놓으셨다가, 애기 낳고 나서 신랑한테 전화해서 시어머님 드렸다고 한다. -_-;; 별이 어무이도, 이미 병원 가서 진통 시작하고 있는 가운데 마침 나랑 오빠가 통화가 돼서, 오빠가 집에 가서 가지고 나와 먹을 수 있었다. 집이랑 병원이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2007년 2월 22일 추가:
옹기약탕기에 약을 달이면 옹기가 중금속과 농약성분을 빨아들여 탕약은 깨끗해진다고 한다.
그리고 옹기 약탕기는 얼마간 사용하다 보면 가열 중에 잘 깨진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구입한 옹기 약탕기에도 '사용기간을 장담할 수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데, 같은 브랜드의 약탕기를 사용하는 학교 앞 신농본초한약국 뒤뜰에 가면 깨진 옹기가 수북이 쌓여있다고 한다. 내 약탕기가 깨질 정도로 약을 달이려면 내가 몇학년쯤 돼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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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별이 2006/11/05 03:51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고모 고마워요 *^^*

  2. BlogIcon artgirl 2006/11/05 15:28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이런 고모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요. ^^ 약탕기로 직접 달인 약에는 정성까지 들어가서 훨씬 좋을 거에요.

    아강이도 고맙다고 인사할 기회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제가 예전에(언니한테 연락 오기 훨씬 전에) 알아본 바로는 순산을 돕는 약의 성분이 결국 자궁수축을 도와주는 거라고 해서 마음만 받기로 한 거에요. 자기도 아시겠지만 제 개인적으로 안 좋은 기억이 있다보니 자궁수축은 하나도 안 반갑거든요. -_-;
    그냥 내가 좀 힘들어도 때 되서 길게 진통하는 것 감수하려고요. 이제 경험도 있고 해서 그다지 두렵지도 않고...^^

  3. BlogIcon heraus 2006/11/05 22:11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별이: 우리 조카는 뱃속에서부터 벌써 리플도 달아요~ ^^

    artgirl: 그래요, 그 마음 이해해요. 자기는 지금 지금 이 상태 이대로, 손대고 싶지 않은 마음일 것 같아요.

    음 뭐 어쨌든 축태음(달생산)은 자궁수축시키는 약은 아니고(한 달 전부터 자궁수축시키는 약을 먹이는 건 좀 이상하잖아. ^^; 아기 몸에 흡수된 양수를 좀 빠지게 해서 태를 축소시키는 개념이라던데..) 뭐 내가 공부 많이 하고 하는 말이 아니니까, 더 긴 설명은 못 하겠네. ^^;

  4. 박쪈 2006/11/05 23:07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약탕기라.. 오오
    난 어제 전기 주전자 사고 좋아라하고 있는데
    살림 느는 거 좋아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한동안은 혼자지 싶어.

  5. BlogIcon Heraus 2006/11/07 00:20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전기 주전자, 정말 뿌듯하고 즐거운 아이템이지. 오늘처럼 날씨가 추운 날엔 정말 두고두고 유용한 아이템. 기념으루 핫쪼꼬 가루나 인스턴트 수프 가루라도 사 줘야겠군. ^^;

  6. 박쪈 2006/11/08 10:04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캬캬 전자렌지도 샀어
    ^_______________________^

  7. BlogIcon Heraus 2006/11/08 20:56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우오옹, 전자렌지! 막강 전자렌지! 1분만에 언 밥을 새 밥으로 바꿔 주고, 3분만에 카레와 짜장과 햄버거 따위를 요리해낼 수 있고, 팝콘도 튀겨 주고 스팀타월도 만들어 주는 효자 전자렌지!! 동기 오빠가 이사가는 집에서 얻어다주겠다고 해서 신나했더니 딴 사람 줬다고 해서 김빠졌던 그 탐나는 아이템 전자렌지!!

    전자렌지와 전기주전자를 갖추었다니, 당신은 '마누라'가 아쉽지 않은 자취환경을 구축했군!! 놀러가야겠다! ^^;

  8. BlogIcon okmir 2006/11/09 23:36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고마워요 별이 고모~ 약 구하고 달이고 정말 고생 많이 했네. 이 언니가 몸둘바를 모르겠네. 정말 고맙구, 위에 설명대로 잘 먹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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