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aus kommt heraus

* 내가 다녔던 회사는 서울역 앞의 푸른빛깔 유리건물 '연세 세브란스 빌딩'에 있다.
그 빌딩은 23층짜리 건물 전체를 통틀어서 창문이 한 개도 없다.
오로지 1층과 2층에 있는 출입문 말고는 천기를 받아들일 통로가 없다.
거기서 살았던 1년여의 기간동안 나는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정말로 죽을 것만 같아서, 생명 있는 것들을 가까이 하려고 화분을 마구 사들였다.
책상 위에 각종 식물화분이 많을 때는 열 개 넘게 있었다.
대부분이 오래 살지 못했다.
내가 잘 돌보지 못해서도 그랬지만
환경이 워낙 안 좋았다.
환기는 안 되고, 흡연인구가 많아 사무실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도 많았다.
창가는 높은 사람들의 자리이고, 나는 말단 직원이어서 내 풀들은 햇빛을 못 봤다.
밤샘에 가까운 야근이 잦은 회사이니 풀들이 완전한 어둠 속에 놓일 기회도 잘 없었을 거다.
그리고, 그렇게 유리로 외벽을 싹 감싸 놓은 건물에 살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단순히 환기가 잘 안 되는 차원을 넘어서는 갑갑함이 있다.
나는 그게 천기의 소통이 안 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그리고 생명이,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늘과 땅과 소통을 해야 하는데
그 곳에선 그게 불가능했다.

* 가끔 나는 그 건물 지하에 한의원을 내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창문이 제대로 난 건물에서라도, 직장생활이란 고단하다.
하물며 창도 없는 그 곳에서..
그들에게 점심먹고 난 틈에 잠깐, 일하는 짬짬이 잠깐 한 20분,
그렇게 쉬면서 침 맞고, 위로를 받고 갈 수 있는 곳이 된다면...
게다가
직장에 매인 사람들은 아파도 제 때 병원 한 번 가고, 제 때 쉬어주기도 어렵다.
고단해서 무슨 어려운 건강유지법들은 잘 실천을 못하더라도
한 번씩 한의원에 들러 자기를 사랑하고 돌보는 시간을 지니고
한의사 언니야의 애정어린 잔소리를 들으며
작심삼일이라도 조금 더 건강한 생활로 돌아가려 노력해 본다면
무한 경쟁 무한 스트레스 속을 그대로 질주하는 것보다는 훨씬 행복하고 건강하지 않을까?
사무실 지하에 있는 한의원이면 자주 가기도 만만할 거고,
그렇게 작심삼일이 연속적으로 쌓이다 보면 삶이 바뀔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다가 사원이 바뀌면 후배가 행복할 거고,
팀장이 바뀌면 팀원들도 행복할 거고,
사장이 바뀌면 회사 전체가 행복할 텐데.


* 나중에 내가 졸업할 때면 한국의 의료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 한의사라는 직업의 위상 내지는 주변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의료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될지, 한국 사회가 어떻게 될지, 그런 걸 어떻게 알겠나. 또 내가 졸업할 무렵 어떤 인간이 되어 있을지, 어떤 경제적 상황에 놓이게 될지, 내게 어떤 기회가 주어질지, 그 또한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꿈꾸는 한의원이 나에 의해서든 다른 사람에 의해서든 실현이 될 수 있을지 그건 정말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꿈꾸는 일은 즐겁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꿈꾸는 한의원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자극해 누군가 정말 꿈꿀 만한 한의원을 만들어 준다면, 그건 그의 환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를 통해 건강해질 사람들과 이 세상을 위해서 참 좋은 일일 거라고 생각한다. 본과 1학년의 철없는 꿈에 불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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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Olga 2007/03/07 17:20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한의원 좋아해요.. 약초 냄새도.. 침맞는것도.. 침 소독안하고 쓰는거 티비에서 본 뒤론 좀 피하고 있지만.. ^^;; 도심속 지친 영혼의 쉼터가 되어주는 한의원.. 그리고 친절한 한의사 언니~ 멋져요!!!

    • BlogIcon Heraus 2007/03/07 17:39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ㅋ 그런 게 TV에 나왔었나요? 요즘은 대부분의 한의원에서 1회용으로 나온 멸균침을 바로 뜯어서 사용하고 한 번 쓰면 의료폐기물로 따로 폐기하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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