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한국사회에서 30대 여성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려면
혼인관계에 있는 편이, 비혼인 것보다 여러모로 처신에 편리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재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별로 연애나 결혼을 '지금' 하고싶은 '생각'은 없으나 외롭기는 하였던 참에
잠시간, 기를 쓰고라도 빨랑 해야 하나 헷갈렸으나
제정신 차리자.
품위있게 살자.
처신이 편리하면(기혼) 어쩔 거고 생활이 편리하면(비혼) 어쩔 건가.
품위있게 살자. 그거면 족하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둬달만에 결혼할 결심을 하냐.
평생 어떻게 감당하겠다고.
괜히 기를 쓰지 말고,
'나는 외로워요'라는 에너지를 세상에 쏴보내지도 말고
남들 앞에서 남자 소개해달라는 소리도 그만두자.
품위없어보인다.
처신 불편한 30대 비혼 무직 여성이
품위까지 잃으면 그건 인생 막장이다. -_-;;
나는 아름답고 품위있는 사람이다!!
나는 독립적이면서도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
* 나와 같은 학교 다니다가 고2때 뉴질랜드로 떠난 후배가
뉴질랜드에서 변호사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 녀석 97년에 갔으니 올해로 벌써 만10년을 넘기는구나.
그렇게 넉넉한 형편으로 간 케이스는 아니었기에 학생 때 방학마다 들어온다든가 할 형편은 아니었고
일을 시작한 후로는 바쁘니까 자주 올 수가 없었고..
그러니, 서로 가진 마음은 애틋하면서도
연락이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이어지곤 했다.
(실은 다 내 게으름 탓이다...)
그렇게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이어질 때는 꼭 녀석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알럽스쿨에서, 싸이월드에서, 78년생 Heraus를 검색하면 되니까.
여기 오시는 분 중에서 아시는 분은 아시는 내 이름은 한글이름이어서 그렇게 흔하진 않다.
성도 김/이/박/최/강씨가 아니니 그렇게 흔치는 않고..
알럽스쿨시절엔 학교로 검색할 수 있었으니 정말 나 하나 나왔을 거고
싸이월드에서 연도와 이름으로 검색하면 같은 이름인 사람이 나말고 하나 더 있다.
알럽스쿨에서 한 번, 싸이월드에서 또 한 번 나를 찾아내서 연락해온 요 녀석은 이름이 김지연이다.
(지금 내 폰에 저장된 김지연만 두 사람이다.)
녀석이 한 번은 그러더라.
언니 이름이 그러니까 찾았지 언니도 자기 이름 같았으면 어쩔 뻔했냐구.
정말이다.
흔치 않은 이름 지어주신 울 어무이아부지 감사감사.
완전 사족이지만..
싸이에서 내 이름으로 검색하면 70년대생은 매우 뜨문뜨문
연도별로 없거나 하나 있거나 둘 있다.
그런데 80년대생으로 가면 제법 많다. 10명 가까이 나오는 해도 있었던 걸로 기억.
그러나 89년이 되면 줄어들고
90년이 되면 뚝 끊긴다.
80년대에 한글이름 짓는 것이 유행을 타다가 90년대부터 다시 뚝 끊겼다더니
딱 그렇다.
* 선생님께서 아주 상반된 스타일의 두 원장님 이야기를 해 주신 적이 있다.
한꺼번에 같이 해 주신 것은 아니고..
예과 때 들은 어느 여자원장님 이야기...
원장님들끼리 의사를 힘들게 하는 환자들 이야기를 하고 계셨나보다.
항상 웃는 인상의 그 여자원장님께 누군가 그런 환자들 있지 않냐고 물었다.
"있죠."
어떻게 하세요?
"잘 해 줘요."
잘 해 줘도 안 되는 환자들 있잖아요.
"있죠."
그럼 어떻게 하세요?
"더 잘 해 줘요."
그래도 안 되는 환자들 있잖아요.
"있죠."
그럼 어떻게 하세요?
"더 잘 해 줘요."
와 이건, 그 물어보는 사람이 성질 급한 사람이었으면 답답해 확 죽어버렸을 지도.
그런 반면에 최근에 이야기 들은 어떤 남자 원장님은
절대 필요이상의 친절을 베풀지 않고
툭툭 잘라버리신단다.
한 하루이틀 침맞으러 와 놓고선 "이거 왜 이렇게 안 나아요?" 하면
"삼천원 짜리 침 맞으면서 되게 그러네. 수십년 된 병을 한 번 침 놔서 나을 것 같으면 내가 지금 청와대에 있지 여기서 침 놓고 있겠어요?" 뭐 이런 식으로.
직접 뵙거나 직접 그 말씀을 들은 것은 아니므로 정확하게 어떤 뉘앙스와 어떤 말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원장님 주의는 이거란다. 내가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선까지만 하고 잘라야지 무조건 친절하게 할 수는 없다. 친절하게 하려다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면 오히려 환자를 진심으로 대할 수 없어서 진료에 차질 생긴다.
희한한 건, 그렇게 툭툭 쳐내고 잘라내는데도 환자들이 또 와서 나을 때까지 치료 잘 받고 간단다.
8월 집단상담 다녀와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제대로 후기를 못 썼었는데..
그 집단상담의 기조는 이런 것이었다.
상담이란 사람들이 자기 문제를 해결해서 사람 구실을 하고 살도록 해 줘야 하는 건데
지금 학계에 만연한 풍토처럼 무조건적으로 지지 이해 공감 해 줘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 때 변화한다.
그러니까, 저번에 썼던 글에서처럼
울면 운다고 뭐라 하고, 핑계대고 회피하면 숨지 말라고 갈구고,
잘못하는 얘기 하면 잘못하는 거라고 부끄러운 줄은 아냐고 아주 현실적인 잣대로 일러주는 것이
다 그런 기조에서 나온 상담방식인 거다.
그러니 내담자들은 처음 도마위에 오르면 당황하고 화도 내고 두고두고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기 문제를 직시하고 리더에게 감사하게 된다.
그 갈굼과 직설적인 충고가 모두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나온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집단상담 들어가 있으면서 위의 두번째 원장님 생각이 났다.
계속 온다는 환자들도 이해가 갔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랑받고, 인정받고, 감사받고 싶어하지만
그 수단이 꼭 친절하게 다 받아주는 것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비행청소년 출신 명사들의 자서전에 늘 나오는 이야기처럼,
누가 내게 따끔하게 일러주고, 나를 강력하게 끌어주는 것,
그것 또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갈구하는 것인 듯 하다.
언젠가 선생님이랑 이런 얘길 한 적 있는데 침에도 '보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시더만..
한의사 될 사람으로서 나는 되도록이면 따뜻하고 친절한 한의사가 되고싶다.
품어주고 보듬어주고 북돋아주는 것이 의사의 기본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적인 것, 말로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료활동의 본질이 그것이라고 생각함)
그러나 한의사가 환자에게 치료비 받아 생계 유지하면서
환자에게 갚아야 할 것은 본질적으로 친절이나 미소는 아니다.
친절이나 미소가 목적이라면 호텔 프런트 직원이 낫고,
따뜻한 인간적 교류가 목적이라면 단골 술집 사장님이 낫다.
기본적으로 의사는 환자의 삶의 질을 바꿔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생각하듯 물리적인 몸의 질병을 치유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병이 오게 만든 그사람의 생 자체,
병이 올 수밖에 없는 생을 그대로 부여잡고 있는 그 사람의 마음의 습을 바꿔
삶의 질을 바꿔줘야 밥값 하는 의사라고 생각한다.
친절이 그 수단이 될 때는 친절해야겠지만
때론 친절이 좋은 수단이 못 될 때도 있다.
그럴 때와, 그럴 때에 사용해야 할 바른 수단을 잘 판단하고 활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특히..
처음 보는..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게, 무조건 친절하게 네네 하는 보법은 무척 잘 구사하는데 반해, 나쁜 감정이나 부정적인 사건들을 소화하는 사법에는 아직 근육이 더 붙어야 하는 사람이므로... 항상 기억해야 한다. 친절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 나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친절하고 싶을 뿐 친절하기 위해 좋은 의사가 되고싶은 건 아니라는 것!!
아 이건 써놓고 보니 맨 첟음 말한 친절한 원장님을 바보 만든 것 같이 느껴지는데
그런 건 아니다.
그 원장님은 그 원장님이 처한 맥락에서, 원장님이 만나는 환자들에 맞춰 補瀉를 구사하고 계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자기 품이 넉넉해서 한정없이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많이 받아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선배들 사암침 쓰는 것 보니, 사할 때는 보법에 더 신경쓰더라. 내가 갔던 집단상담 리더 선생님도, 시간제한이 많은 집단상담 땐 주로 '치는' 역할만 하시지만 개인상담 땐 좀 다르시단다.
혼인관계에 있는 편이, 비혼인 것보다 여러모로 처신에 편리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재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별로 연애나 결혼을 '지금' 하고싶은 '생각'은 없으나 외롭기는 하였던 참에
잠시간, 기를 쓰고라도 빨랑 해야 하나 헷갈렸으나
제정신 차리자.
품위있게 살자.
처신이 편리하면(기혼) 어쩔 거고 생활이 편리하면(비혼) 어쩔 건가.
품위있게 살자. 그거면 족하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둬달만에 결혼할 결심을 하냐.
평생 어떻게 감당하겠다고.
괜히 기를 쓰지 말고,
'나는 외로워요'라는 에너지를 세상에 쏴보내지도 말고
남들 앞에서 남자 소개해달라는 소리도 그만두자.
품위없어보인다.
처신 불편한 30대 비혼 무직 여성이
품위까지 잃으면 그건 인생 막장이다. -_-;;
나는 아름답고 품위있는 사람이다!!
나는 독립적이면서도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
* 나와 같은 학교 다니다가 고2때 뉴질랜드로 떠난 후배가
뉴질랜드에서 변호사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 녀석 97년에 갔으니 올해로 벌써 만10년을 넘기는구나.
그렇게 넉넉한 형편으로 간 케이스는 아니었기에 학생 때 방학마다 들어온다든가 할 형편은 아니었고
일을 시작한 후로는 바쁘니까 자주 올 수가 없었고..
그러니, 서로 가진 마음은 애틋하면서도
연락이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이어지곤 했다.
(실은 다 내 게으름 탓이다...)
그렇게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이어질 때는 꼭 녀석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알럽스쿨에서, 싸이월드에서, 78년생 Heraus를 검색하면 되니까.
여기 오시는 분 중에서 아시는 분은 아시는 내 이름은 한글이름이어서 그렇게 흔하진 않다.
성도 김/이/박/최/강씨가 아니니 그렇게 흔치는 않고..
알럽스쿨시절엔 학교로 검색할 수 있었으니 정말 나 하나 나왔을 거고
싸이월드에서 연도와 이름으로 검색하면 같은 이름인 사람이 나말고 하나 더 있다.
알럽스쿨에서 한 번, 싸이월드에서 또 한 번 나를 찾아내서 연락해온 요 녀석은 이름이 김지연이다.
(지금 내 폰에 저장된 김지연만 두 사람이다.)
녀석이 한 번은 그러더라.
언니 이름이 그러니까 찾았지 언니도 자기 이름 같았으면 어쩔 뻔했냐구.
정말이다.
흔치 않은 이름 지어주신 울 어무이아부지 감사감사.
완전 사족이지만..
싸이에서 내 이름으로 검색하면 70년대생은 매우 뜨문뜨문
연도별로 없거나 하나 있거나 둘 있다.
그런데 80년대생으로 가면 제법 많다. 10명 가까이 나오는 해도 있었던 걸로 기억.
그러나 89년이 되면 줄어들고
90년이 되면 뚝 끊긴다.
80년대에 한글이름 짓는 것이 유행을 타다가 90년대부터 다시 뚝 끊겼다더니
딱 그렇다.
* 선생님께서 아주 상반된 스타일의 두 원장님 이야기를 해 주신 적이 있다.
한꺼번에 같이 해 주신 것은 아니고..
예과 때 들은 어느 여자원장님 이야기...
원장님들끼리 의사를 힘들게 하는 환자들 이야기를 하고 계셨나보다.
항상 웃는 인상의 그 여자원장님께 누군가 그런 환자들 있지 않냐고 물었다.
"있죠."
어떻게 하세요?
"잘 해 줘요."
잘 해 줘도 안 되는 환자들 있잖아요.
"있죠."
그럼 어떻게 하세요?
"더 잘 해 줘요."
그래도 안 되는 환자들 있잖아요.
"있죠."
그럼 어떻게 하세요?
"더 잘 해 줘요."
와 이건, 그 물어보는 사람이 성질 급한 사람이었으면 답답해 확 죽어버렸을 지도.
그런 반면에 최근에 이야기 들은 어떤 남자 원장님은
절대 필요이상의 친절을 베풀지 않고
툭툭 잘라버리신단다.
한 하루이틀 침맞으러 와 놓고선 "이거 왜 이렇게 안 나아요?" 하면
"삼천원 짜리 침 맞으면서 되게 그러네. 수십년 된 병을 한 번 침 놔서 나을 것 같으면 내가 지금 청와대에 있지 여기서 침 놓고 있겠어요?" 뭐 이런 식으로.
직접 뵙거나 직접 그 말씀을 들은 것은 아니므로 정확하게 어떤 뉘앙스와 어떤 말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원장님 주의는 이거란다. 내가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선까지만 하고 잘라야지 무조건 친절하게 할 수는 없다. 친절하게 하려다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면 오히려 환자를 진심으로 대할 수 없어서 진료에 차질 생긴다.
희한한 건, 그렇게 툭툭 쳐내고 잘라내는데도 환자들이 또 와서 나을 때까지 치료 잘 받고 간단다.
8월 집단상담 다녀와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제대로 후기를 못 썼었는데..
그 집단상담의 기조는 이런 것이었다.
상담이란 사람들이 자기 문제를 해결해서 사람 구실을 하고 살도록 해 줘야 하는 건데
지금 학계에 만연한 풍토처럼 무조건적으로 지지 이해 공감 해 줘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 때 변화한다.
그러니까, 저번에 썼던 글에서처럼
울면 운다고 뭐라 하고, 핑계대고 회피하면 숨지 말라고 갈구고,
잘못하는 얘기 하면 잘못하는 거라고 부끄러운 줄은 아냐고 아주 현실적인 잣대로 일러주는 것이
다 그런 기조에서 나온 상담방식인 거다.
그러니 내담자들은 처음 도마위에 오르면 당황하고 화도 내고 두고두고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기 문제를 직시하고 리더에게 감사하게 된다.
그 갈굼과 직설적인 충고가 모두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나온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집단상담 들어가 있으면서 위의 두번째 원장님 생각이 났다.
계속 온다는 환자들도 이해가 갔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랑받고, 인정받고, 감사받고 싶어하지만
그 수단이 꼭 친절하게 다 받아주는 것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비행청소년 출신 명사들의 자서전에 늘 나오는 이야기처럼,
누가 내게 따끔하게 일러주고, 나를 강력하게 끌어주는 것,
그것 또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갈구하는 것인 듯 하다.
언젠가 선생님이랑 이런 얘길 한 적 있는데 침에도 '보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시더만..
한의사 될 사람으로서 나는 되도록이면 따뜻하고 친절한 한의사가 되고싶다.
품어주고 보듬어주고 북돋아주는 것이 의사의 기본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적인 것, 말로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료활동의 본질이 그것이라고 생각함)
그러나 한의사가 환자에게 치료비 받아 생계 유지하면서
환자에게 갚아야 할 것은 본질적으로 친절이나 미소는 아니다.
친절이나 미소가 목적이라면 호텔 프런트 직원이 낫고,
따뜻한 인간적 교류가 목적이라면 단골 술집 사장님이 낫다.
기본적으로 의사는 환자의 삶의 질을 바꿔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생각하듯 물리적인 몸의 질병을 치유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병이 오게 만든 그사람의 생 자체,
병이 올 수밖에 없는 생을 그대로 부여잡고 있는 그 사람의 마음의 습을 바꿔
삶의 질을 바꿔줘야 밥값 하는 의사라고 생각한다.
친절이 그 수단이 될 때는 친절해야겠지만
때론 친절이 좋은 수단이 못 될 때도 있다.
그럴 때와, 그럴 때에 사용해야 할 바른 수단을 잘 판단하고 활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특히..
처음 보는..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게, 무조건 친절하게 네네 하는 보법은 무척 잘 구사하는데 반해, 나쁜 감정이나 부정적인 사건들을 소화하는 사법에는 아직 근육이 더 붙어야 하는 사람이므로... 항상 기억해야 한다. 친절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 나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친절하고 싶을 뿐 친절하기 위해 좋은 의사가 되고싶은 건 아니라는 것!!
아 이건 써놓고 보니 맨 첟음 말한 친절한 원장님을 바보 만든 것 같이 느껴지는데
그런 건 아니다.
그 원장님은 그 원장님이 처한 맥락에서, 원장님이 만나는 환자들에 맞춰 補瀉를 구사하고 계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자기 품이 넉넉해서 한정없이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많이 받아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선배들 사암침 쓰는 것 보니, 사할 때는 보법에 더 신경쓰더라. 내가 갔던 집단상담 리더 선생님도, 시간제한이 많은 집단상담 땐 주로 '치는' 역할만 하시지만 개인상담 땐 좀 다르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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