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되는 나
'시크릿'보다, '긍정의 힘'보다 더 좋다. ^^
아 물론,
기독교에 알러지 반응 있으신 분들은 이 책을 읽는 것을 신중히 결정하시기 바란다.
본인의 종교가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기독교에 알러지가 없거나 그 알러지가 단순 소양증 정도에 그치는 분이라면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우주'로 치환해 가면서 읽어보실만 하다.
시크릿이나 긍정의 힘보다 '붕 뜬' 느낌이 좀 덜 하고, 문장이 정말 쉽다.
(번역자 정성묵 씨에게도 박수를!!!)
차동엽신부님의 '무지개원리'와 이 책의 목차를 비교해 보면
이 두 책도 역시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솔직히 말해 조엘 오스틴의 이빨이 좀더 매끄럽다는 데 한 표. ^^
론다 번이 '시크릿'을 제작하게 된 계기는
20세기 초에 출판된 '부자되는 법'에 관한 책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우울증에 빠지고,
그걸 필두로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수많은 어려움이 한꺼번에 들이닥쳐 힘들어할 때,
딸이 '이걸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며 건네준 책이었다.
재미있지 않은가?
외할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엄마의 심적인 고통을 보며
딸은 '부자되는 법'에 관한 책을 치료법으로 내밀었고
엄마는 그 책을 읽더니 인생을 행복하고 의미있게 사는 법에 대한 다큐와 책을 만들었다.
론다 번이 '시크릿'을 제작하기 위해 만난 사람들 중에는
사람들에게 부자되는 법을 강의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애(自己愛)와 자기경영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영성센터(사실상 교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를 운영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성공이란, 그리고 인생이란, 어느 분야에서나 같은 법칙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큰 교회를 이끌고 있다는 조엘 오스틴 역시 그 법칙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고
그의 종교적, 직업적 바탕으로 인해 그는 이 법칙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됐든, '시크릿'이 됐든, '대자연'이나 '우주'가 됐든,
많은 사람들은 그 내용이 터무니없이 낙천적이고
아동적이고 허황되고 보통 사람에게 해당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지만 이들 내용 중 상당부분은 인지과학적으로 설명가능하다.
당연하다. 과학은 어디서 나왔겠는가? 동떨어진 다른 법칙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조만간 인지과학적인 글을 써 보려 하나
언제 쓸지 기약은 없다. ^^
어쨌든 이 책은 매우 강추.
영어판 오디오북도 주문했다. ^^
음, 나는 개신교 신자가 아니지만
언젠가 미국에 가게 된다면, 조엘 오스틴의 교회에 예배에 한 번 가 보고 싶다.
20-21
한번은 7대째 서커스를 하고 있는 유명한 줄꾼에게 비결을 물었다.
“당신이 줄을 타면 왜 그렇게 쉬워 보이죠?”
“비결은 간단해요. 오로지 목적지에만 시선을 고정하면 됩니다. 밑을 보면 절대 안 돼요. 머리가 가면 몸도 따라가거든요. 아래를 보면 떨어지기 딱 좋아요. 항상, 가려는 곳만 봐야 합니다.”
인생살이의 비결도 똑같다. 뒤를 보면서 상처와 고통만 떠올리는 사람. 아래를 보면서 인생이 불공평하다며 불평하는 사람. 그래서는 높이 오를 수 없다. 높이 비상하려면 목적지만 바라봐야 한다. 우리의 꿈은 언제나 거창해야 한다! 현재의 자신을 보지 말고, 긍정적인 비전을 품어야 한다. 목표와 소명을 온전히 이룬 자신을 상상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각자의 세상에 맞게 창조하셨다. 왠지 꿈을 이루지 못할 것만 같은가? 의심의 구름을 넘어 중요한 사실을 하나 기억하면 새로운 힘이 솟을 것이다.
“내 안에 전능하신 하느님의 씨앗이 있어!”
30-31
그런데도 우리는 좀처럼 과거를 떨쳐내지 못한다. 상처를 준 사람이나 억울한 일만 떠올리며 신세타령만 해댄다.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러는 사이에 우리의 꿈과 재능은 한없이 짓눌린다. 엄청난 잠재력이 잠에서 깨어날 줄 모른다.
어떻게 해야 과거를 떨쳐낼 수 있을까? 무엇보다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게 우선이다. 지난 일을 계속 꺼내서는 안 된다. 부정적인 경험은 이제 그만 떠올려야 한다.
쓰디 쓴 실패를 맛보았는가? 꿈이 날아가버렸는가? 그렇다면 잠시 슬퍼해도 좋다. 하지만 때가 되면 툴툴 털고 일어나 새로운 희망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실망감 속에서 뒹굴 수는 없다. 슬퍼한다고 과거가 조금이라도 바뀌는가? 하나님은 벌써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계신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가 묵은 고통을 날려버려야 한다. 뒤쪽 문은 완전히 닫고 성큼 발을 내딛어야 앞쪽 문이 활짝 열린다.
31
잠재력을 끝까지 다 발휘하려면 씨앗이 자랄 만한 환경도 중요하다. 잠재력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풍부한데 어리석은 부류와 어울리는 바람에 삶을 망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게으르고 무절제한 사람이나 꿈이 변변치 않은 사람, 혹은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과 가까이 어울리면 그런 성향에 쉽게 전염된다. 나쁜 환경에 몸을 담으면 높이 비상할 수 없다. 부정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긍정적인 삶은 기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절망과 낙심으로 꿈을 내던진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부류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솔직히 그런 친구들을 끌어올리기는 지극히 어렵다. 그들과 자주 어울리면 덩달아 밑바닥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친구들을 사랑하는가?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 중인가? 하지만 때로는 부정적인 친구들과 관계를 끊고 건전하고 긍정적이고 믿음 충만한 환경으로 옮겨가는 것이 최선이다. 단호할 때는 단호해야 한다. 씨앗이 가진 잠재력이 아무리 위대해도 좋은 땅에 심지 않으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72
뛰어난 사냥개에 관해 생각해보자. 사냥개에게는 사냥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없다. 갑갑한 트럭 화물칸에 가둬두면 사냥개는 종일 드러누워 게으름을 피운다. 아무런 의욕도 열정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주인이 화물칸의 문을 활짝 열면 사냥개는 곧바로 본능을 발휘한다. 짖고 달리며 사냥감을 찾아다니는 모습에서 무한한 활기와 열정이 묻어나온다. 문을 열기 전과 후 이 개의 모습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왜일까? 사냥개가 할 일은 사냥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냥게에 사냥의 열정을 넣어두셨다. 따라서 사냥개가 사냥을 할 때만큼 열정적인 순간은 없다. 억지로 의욕을 불러일으킬 필요도 없다. 사냥하러 갈 시간이 다가오면 사냥개의 내면에서 저절로 열정이 솟아난다. 사냥게 안에는 우주의 창조주께서 심어놓으신 사냥의 열정이 있다.
73
잘하는 일이 하나님이 주신 일이다.
106
미래에 되고 싶은 모습을 말하라
우리는 말로 자신의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 하루에 딱 5분만 떼서 자기 삶을 향해 복을 선포해보라. 놀라운 일이 벌어질 테니. 원한다면 글로 써도 좋다. 하박국은 비전을 글로 쓰라고 말한다. 꿈과 목표와 포부뿐 아니라 바꾸고 싶은 부분들도 빠짐없이 써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말을 지원사격해야 한다. 하나님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낸 후 매일 몇 분씩 자기 삶을 향해 복을 선포하면 정말로 그 복을 받는다. 복에 관해 읽거나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말로 해야 초자연적인 일이 벌어진다. 말이 믿음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124
체로키 부족에게는 손자에게 인생의 원칙을 가르쳐주는 지혜로운 할아버지에 관한 이갸기가 전해 내려온다. 할아버지가 손자를 앉혀놓고 말한다. “얘야, 모든 사람 안에서는 늑대 두 마리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단다. 한 늑대는 악하지. 이 늑대는 분노와 질투, 용서하지 않는 마음, 교만, 게으름으로 똘똘 뭉쳐있어. 반면 다른 늑대는 착하단다. 이 늑대의 특징은 사랑과 친절, 겸손과 절제란다. 이 두 마리 늑대가 우리 안에서 늘 싸우고 있어.”
어린 손자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연다. “할아버지, 그럼 어떤 늑대가 이길까요?”
할아버지가 빙긋 웃으며 말한다. “그야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지.”
용서하지 않는 마음과 성급함, 낮은 자존감 같은 악한 늑대에게 먹이를 주면 그런 부정적인 특성만 점점 강해진다. 직장에 관해 자주 불평하는가? 늘 사장 욕을 하는가? 회사가 대우를 제대로 안 해준다거나 일을 너무 많이 시킨다며 신세타령만 늘어놓는가? 불평하면 일시적인 해방감은 느낄지 몰라도 한번 피 맛을 본 늑대는 점점 더 많은 피를 원하는 법이다.
133
빌리보서 2장 말씀대로 우리는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 안에 좋은 것들이 전부 들어있지만 그것들이 삶 속에서 열매를 맺으려면 우리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우리 안에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씨앗이 있다. 하느님은 이미 우리 안에 자제심, 친절, 용서, 인내력 등을 전부 넣어두셨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 안에는 이미 이런 성품들이 꿈틀대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을 이루는 것은 우리 몫이다. 좋은 삶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좋은 선택을 내릴 때만 복이 찾아온다. 가끔 한번씩이 아니라 꾸준히 좋은 선택을 해야 한다.
155
내 장점 가운데 하나는 집중력이다. 나는 사람들이 뭐라 말해도 한눈을 팔지 않는다. 모두가 나를 이해해주리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렇더고 일일이 해명하며 돌아다닐 시간도 없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소망의 씨앗을 뿌리라는 소명을 받았다. 성경의 사소한 측면이나 난해한 신학적 교리를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하는 건 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의 실제 삶과 상관없는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는 않다. 내 재능은 격려하고 자극하는 일에 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판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전혀 무익하다. 세상을 좋게 바꾸려다가 비난을 받았다면 오히려 축하할 일이다. 예수님을 닮은 삶이니 말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선을 행하셨으나 끊임없이 비판을 받으셨다. 심지어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한 일로도 손가락질을 받으셨다. 세리들과 저녁식사를 나눈 후에는 죄인들의 친구라는 비난을 받으셨다. 돌팔매질을 당하기 직전에 놓인 여인을 구하셨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틀에 자신을 맞추려는 헛된 노력을 하지 않으셨다. 일일이 해명하지도 않으셨다. 그저 묵묵히 한길로 가며 자신의 소명을 이루셨을 뿐이다.
나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자유를 발견했다. 나도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애썼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부정적인 말을 한마디라도 들으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저런, 실패했어. 내가 뭘 잘못했을까? 어떤 점을 바꿔야 할까?”
그러던 어느날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 내 메시지나 의도를 막무가내로 곡해하면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나는 비판의 소리에 분노하거나 기쁨을 빼앗기지 않는다. 십중팔구 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장점이 사람들의 질투심을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294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옳은 행동으로 믿음을 뒷받침해야 한다.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대해야 한다. 하나님의 복을 기대하면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기도한 대로 정말 이루어질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과감히 발걸음을 떼야 실제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마음에 꿈을 심어주셨다. 건강을 되찾았으면, 빚에서 벗어났으면, 오랜 꿈을 이루었으면 하는 누구나 믿고 바라는 일이 있다. 문제는 믿는 데서 그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믿음을 넘어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니다. 몸이 아프면 낫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살림이 쪼들리는 사람은 번영을 계획해야 마땅하다. 가정이 언제 깨질지 모르게 위태위태한가? 그렇다면 관계 회목을 계획하는 것이 답이다. 정말 믿는다면 자신의 전부를 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행동을 정반대로 할 때가 많다. 명심하라. 믿음을 좋은 쪽뿐 아니라 나쁜 쪽으로도 그대로 이루어진다.
300
중요한 것은 이 과부가 가져온 단시 수만큼만, 딱 그만큼만 찼다는 것이다. 단지를 좀더 많이 가져왔더라면 더 많은 기름을 얻을 수 있었겠지만, 과부가 준비한 것은 그게 전부였다. 바로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을 제한하지만 사실 그분의 자원은 무한하다. 우리가 상황에 상관없이 더 많은 복을 믿으면 그분이 기적을 동원해서라도 채워주신다! 우리는 어마어마한 꿈을 꾸어야 한다. 풍성한 복을 충분히 담을 만큼 큰 그릇을 준비해야 한다.
혹시 패배나 보잘것없는 삶이나 질병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부터는 복을 준비하라. 성공과 풍요와 승리를 계획하라. 옳은 믿음을 품으라. 복과 번영, 건강과 기쁨, 풍요로운 삶은 계획하라. 그러면 우리가 요구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은 풍성한 복이 찾아올 것이다. 하나님의 복과 은혜가 쏟아지고 우리는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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