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aus kommt heraus

1. 이번 서당살이는 특별히 즐겁고 아름다웠다.
같은 방을 쓴 사람은 나를 포함 네 명의 한의대 여학생들이었는데
내가 퍼뜨린 'dona nobis pacem'이라는 노래를 넷이 같이 흥얼거리며 지냈다.
아주 단순하고 짧은 노래인데
처음에는 단선율로 부르다가
나중엔 4성부까지 갈라져서 불렀다.
점심먹고 나서 한 시간동안 계속 이 노래를 부른 적도 있었다.

22일 목요일, 서당을 나오던 날, 세명대 여학생 두 명이 먼저 출발했는데
주차장에서 세명대 남학생들이 짐을 싣고 차를 빼는 짧은 틈에도
넷이서 이 노래로 화음을 맞췄다.
단선율로 시작해서, 화음으로 두 번 반복하고, 다시 단선율로 돌아오고
아쉬운 포옹을 나누고 헤어졌다.
정말 아름다운 시간이었고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2. 그렇게 노래를 불러대다가
중학교 때 꽤 빡센 미션스쿨의 합창단에 몸담았었던 내 후배가
언니 성악과 가지 그랬느냐고 묻기도 했다.

글쎄다, 학업 성적이 좋았으니 가려고 마음 먹었으면 좋은 대학은 못가도 갈 수는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 데 가서 졸업했으면 적당한 합창단 같은 데 이름 걸어놓고 벌써 시집가서 애도 낳고 동네 성당에서 어린이 성가대나 하나 지휘하면서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2004년 수능준비할 때 예술계통으로 진학하고 싶은 마음도 강하게 들었다. 회사를 그만둘 때는 사직서에 퇴직사유를 '한의대 진학을 위한 수능응시 준비'라고 쓸 정도로 마음이 굳었지만,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108번뇌가 시작되었고, 한의사가 되기 싫었다. 수능 성적만 나오면 미대에도 원서를 넣을 수 있고 음대에도 넣을 수 있다고 나를 꼬셨고, 그렇게까지 동네방네 소문내고 나와서 수능준비를 중간에 그만두면 우스워지니까 그게 싫어서 버텼다.

그러다 수능성적이 나왔다. 상위권이긴 했지만 한의대에 붙을 거라고 기대하긴 조금 어려운 점수였다. 그렇게 되고 나니 '내가 미쳤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쳤었지. 내가 어떻게 음대나 미대를 간다고. 한의대 말고 갈 곳이 어디 있다고. 그리고 가나다군 모두 한의대에 원서를 넣었다. 흐. 그리고 3차 추가로 붙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창작이나 예술의 꿈에 늘 매료되었으나 그것을 자신있게 택하지는 못했다. 내가 과연 재능이 있는가, 해 보지도 않고 주눅이 들었다. 뭐 천재적인 예술가들은 어려서부터 누가 뭐래지 않아도 저 혼자 싹을 보인다던데, 그러지 않은 거 보면 별 재능이 없는 게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공부로 승부보는 건 쉬워 보였다. 그건 따로 재능 같은 게 없어도 열심히 하면 될 것 같고,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공부를 잘 했고 공부머리가 좋았으니까.

지금 나는 내가 더이상 공부머리 굴리기를 즐기지 않고 있다는 점이 당황스럽고 고통스럽다. -_-;; 엄청난 암기가 필요한 이놈의 공부를 하려면 피마르는 느낌이고 정말 하기 싫을 때가 많다. 설상가상으로 한의사도 공부머리만으로 승부보는 것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자꾸 들고 있다. 그래서 서당에서 그렇게 화음에 푹 빠져들고, 성악과 가지 그랬냐는 말까지 들었을 때, '다시?'라는 생각이 진지하게 들었다. 음악하는 사람에게 서른둘에 시작해서 성악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고 물어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이 나이에 '음대나온 빨'로 시집을 갈 수도 없고, 마흔이 다 되어 뭔 합창단에 들어갈 수도 없을 거고, 이제야 대학에 가서 성악을 한다면 어느정도 급의 '예술가'가 되어야 할 게 아닌가 말이다. 그렇지만 늘 그랬듯이 나는 고민만 하다가 선택하지 않고 아쉬운 입맛만 다시며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늘 그래 왔듯이.


3. 초등 4학년 때 난 왕따였다.

그 때 봄에, 학교로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원 모집 안내가 왔었다.
담임 선생님이 선명회 합창단이 어떤 덴지, 거기 활동을 하면 어떤지 설명을 해 주시면서 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셨다. 나는 3학년 때부터 그 합창단 이야기를 들었고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손을 들었다. 왠지 부끄러워서 크게는 못 들고 낮게, 하지만 선생님이 나를 본다면 분명히 알아챌 수는 있는 높이로 손을 들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를 못 보셨다. 계속 설명하면서 '하고 싶은 사람 없냐'고 물었다. 나는 오랫동안 손을 들고 있어도 선생님이 못 보시길래 손을 번쩍 들었다. 하필 그 순간이 그 합창단을 하면 외국으로 공연을 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씀하시는 순간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주위 아이들이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외국 얘기 나오니까 갑자기 손든다고. 그게 왜 비아냥댈 거리이며 그렇게 비아냥댄다고 내가 왜 상처받고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지 지금 생각하면 모르겠지만, 그 때 왕따였던 열한 살의 나는 그 말에 움찔해서 손을 내리고 울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소동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끝까지 내가 손을 들었다는 것을 모른 채(혹은 무시한 채) 우리반은 아무도 없구나,로 선명회 합창단 모집을 마무리지었다.

그 때 담임선생님이 지원자 명단에 내 이름을 올려주셨다고 해서 내가 그 합창단 오디션에 붙었을지도 알 수 없고, 그 활동을 했다고 내가 음악을 전공했을지도 알 수 없지만, 시간이 20년이나 지난 지금 생각해도 왕따로 상처받은 그 때의 내가 애처럽고, (나는 나니까. ^^) 합창단 문턱에도 못 가본 것이 아쉽다. 합창단 활동을 해본다는 건 그 자체로 참 좋은 경험이 되었을 텐데.


4. 나는 6살때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요즘 기준으로도 빠르다면 빠른 나이일 것이다.
그 때 우리집은 복도가 유난히 긴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는데
친하게 지내던 옆집 애가 피아노를 배웠다.
그것도 피아노만 가르치는 학원이 아니라
유아들 대상으로 유치원 같은 프로그램을 같이 운영하던 곳이었다.
당연히 부러웠지. 피아노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래서 나도 배우고싶다고 졸랐고
엄마는 덜컥 학원도 등록해 주고 피아노도 바로 며칠 사이에 사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놀랍다.
피아노란 놈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닌데.

나중에 대학교 때 음악에 관련된 교양수업을 들었는데 교수가 그랬다.
80년대 한국에서 '30평대 아파트 거실에 놓인 피아노'는 중산층의 꿈이었다고.
국악하는 사람들이 가야금을 피아노처럼 보급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피아노는 '가구'의 속성을 가진 악기이고
그걸 뛰어넘을 수 있는 악기는 없다고.

그러니까, 내가 6살 때면 엄마아빠가 '30평대 아파트'에 입성한지 3년차였을 거고
피아노는 거기에 참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었던 것이다.
조기교육 개념이 마구 피어나기 시작하던 시기에
유치원 기능을 겸한 피아노학원도 참 적절한 아이템이었을 거고.

그 피아노는 아직도 우리집에 있다.
레슨은 중3때까지 받았으니, 전공자도 아니면서 꽤 오래 배운 셈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하는 말인데, 그 때 엄마가 피아노를 덜컥 사주지 않았으면
나는 오히려 더 즐거운 방향으로 음악적 탐색을 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지금도 가끔 피아노를 치기는 하지만
나에게 피아노는 음악이라서 즐겁지 피아노라서 즐겁지는 않은 것 같다.
무엇이 되었든 아무튼 악기를 그만큼 배워봤다는 사실 자체는 감사하다.
하지만 그것이 피아노가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부모님은 다른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내 요청내지 소망을 철저히 무시하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이해 간다.
피아노가 한두 푼 하는 물건도 아닌데.
그러니 그 때 6살 때 엄마가 그렇게 덜컥 피아노를 사주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말이다.


5. 어제 엄마랑 주일 미사에 가서
엄마가 갖고 계신 '매일 미사' 책 뒷면의 후원 안내광고를 보았다.

관련페이지
http://caritas.or.kr/oad_2009/




책에 실린 광고에는 약간의 사연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위 사진 속의 소년은 내전으로 사정이 어려운 수단의 난민촌에서 빵을 굽고 있는 거란다.

그걸 읽다가 생각했다.
난민촌의 어린이들에게 빵을 주는 것도 중요하고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그저 선진국 사람들의 지원으로 근근히 물을 마시고 빵을 먹으며 하루하루 생존만 하게 하면
그들은 희망이 무엇인지,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어른이 될 거고
역시 희망도 기쁨도 모르는 채
하루하루 근근히 먹고 근근히 마시며 생존만 하며 자라는 아이들을 낳을 것이다.
그렇게 절망과 무력감이 대물림된다면 그건 너무나 곤란한 일이다.
결국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선진국 사람들의 빵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빵을 먹고 그들이 힘을 내어 자기 나라를 일으키고 자기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게 하는 것인데.

이어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난민촌의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연습시켜서
그 아이들과 함께 콘서트도 열고 음반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노래하는 것 자체의 기쁨을 알고
또 자기들이 노래를 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경우에 따라 돈까지 벌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아이들은 당장의 빵이 궁한 상황에서도 기쁨과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안 될 일일 것이다.
음악이랑 별 상관없는 삶을 사는 나는 더더욱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난민촌의 아이들이 콘서트를 열 만큼 노래를 할 수 있을지도 가르쳐 보기 전에는 알 수 없고.
하지만 내가 이렇게 아이디어를 내어 블로그에 걸어 공개해 놓으면
누군가는 그 비슷한 일을 실제로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긴급구호활동가로 일하는 한비야씨가 쓴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 있다.
난민촌의 어떤 여자어린이가 한비야씨에게 다가와 빵을 건네주더라는 것이다.
그 빵을 한비야가 먹으면 어린이는 한 끼를 굶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다음 끼니가 주어질지도 확실히 알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고민하다가 한비야씨는 그 빵을 받아 먹었단다.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오르고, 주변의 아이들이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그런 극한 상황에 스스로 처해본 적은 없지만
내가 읽은 많은 글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한다.
당장의 끼니가 걱정이고, 언제 굶어죽을지 모를 기아상황에서도
때론 입으로 들어갈 음식 한 덩어리보다도
기쁨이나 희망이 더 절실하다고.

내가 예술이나 인문학 쪽의 진로에 매료되었으면서도 선택하지 못했던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굶주린 이의 입에 밥 한 술 넣어줄 수 없고, 병든 이들을 일으킬 수도 없는 무력함이 싫었다는 것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오히려 無用한 그 예술이 무너져가는 인간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하는 사람이 꼭 나일 필요는 없지.
주님의 뜻이라면, 누군가의 손을 통해, 주님이 이루시리라.


6. 나는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전하고,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일어서기 힘든 사람들에게 일어설 힘을 보태주고
절망과 분노와 무력감에 싸인 사람이 진정한 자기애를 발견하도록 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러자면 일단은 내가 뭐라도 생산해낼 수 있어야 한다.
거창한 꿈에 대한 이야기만 주워섬기면서 평생 제 앞가림 못하는 학생이라면 그처럼 쪽팔린 인생 어디 있겠나. 그러니 일단 삽을 잡았으면 물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자. 이제 한 4년 팠으니 6년쯤 더 파면 어쨌든 샘이 터지겠지. 노래는, 삽질을 하면서도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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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대한이 2009/01/31 00:34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앗! 오래간만의 글이네요.. ^^
    대학교를 갈까? 학원을 갈까.. 고민하다가 학원을 가게 됬어요..;;
    학원에 다니니 여러가지 짜증나는 문제가 참 많은거 같기도 하고..
    그래도 버티면서 4주째 다니고 있습니다,, (6주선행반과정)
    저는 참 많은걸 느꼈어요..;;
    나이도 22살로 제일 많고... 어린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려니 좀 힘든감도 있고..
    그러다 보니 선생님과 상담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서울대 나오신 수학선생님께.. 선생님은 어떻게 문제를 딱 보시면 바로 풀어내세요?
    라는 어처구니 없는 질문도 가끔하구요..^^::

    결국엔 오랫동안 집중해서 꾸준하게 공부하는게 공부잘하는 지름길이라는걸 느끼고있어요..

    이건 다른이야긴데.. 성당에 가면 제가 제일 막내에요.. 성당에선 오히려 높힘말을 쓰죠.. 학원에선 높힘말을 듣고요..ㅋ

    • BlogIcon Heraus 2009/02/01 00:23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나이 먹어서, 또래들이 주로 있지 않은 공간에 몸 담으려면, 감수해야 할 게 많은 법이지요. 선택하셨으니 최선을 다하시기를. ^^

      기회가 되면 과외를 좀 해 보세요. 학생으로 말고 선생으로요. 남에게 가르치고 설명하는 입장이 되어서 바라보면 수학을 조망하는 눈높이가 달라짐을 느끼실 거에요.

      화이팅!!

  2. 대한이 2009/02/01 13:53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이웃신청환영입니다..!!
    블로그를 그런데 제가 잘 하질 않아요.. 그나마 주말에만 거의 하구....ㅋ
    아. 그런데 www.cyworld.com/_gug 여기도 있어요..ㅋ
    성당에서 청년회가입도 할겸해서 만들었지요..ㅋㅋ

    그런데요..학원 딴데로 옴기기로 했어요..ㅋ 학원안다니고 할려고도 했는데..
    자기관리하는게 너무 힘드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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