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자살하려고 고층건물의 난간 위에 올라 보거나,
당신 팔에 주사기를 꽂아보거나,
수면제 한 줌을 삼켜보지 않았다면,
자살에 대해 함부로 논하지 마라.
당신이 정말 사랑하는, 당신 삶에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당신이 손 쓸 수 없는 사이 제 손으로, 제 발로 죽어버린 적이 없다면
자살에 대해 함부로 논하지 마라.
자살은 사춘기 문학소녀가 앞뒤 안 맞는 습작소설에 등장시키는 낭만적인 사건이 아니다.
문학작품 속의 낭만적인 가난이 실제의 가난이 아니듯,
가난하지 않은 당신이 상상하는 가난하지만 풍요롭고 낭만적인 가난은 존재하지 않듯
'죽을 용기로 차라리 살아갈' 수 있는 진취적이고 낭만적인 자살은 없다.
그야말로 개똥밭에 구르는, 저승보다 나을 것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도
차를타고 가다가 깜빡 사고가 날 뻔하거나 눈앞에 벼락이라도 떨어지면 움찔한다.
그 움찔하는 순간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건
고등 척추동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고등한 대뇌가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기본적인 본능이고, 당신의 고등한 대뇌가 관장하는 思考 이전의 일이다.
의자에 앉아 고무 망치로 무릎을 두드리면 발이 펄쩍 들려 올라가는 것처럼
죽음 앞에서 움찔, 하는 것은 생물적인 반사 반응이다.
정말로 자살하는 사람은 그 지극히 기본적인 반사반응이 작동하지 않을 만큼 아픈 사람들이다.
누군가 자살했다면 그가 드러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그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라.
죽을 용기로 살라는 말 따위 하고 싶거든 닥치고 당신 삶이나 용기있게 살아라.
나도 죽고싶었던 적 있다고 말하려거든 닥치고 감사기도나 해라.
당신이 죽고싶었다는 것은 '이렇게 말고, 다르게 살고 싶다'는 고등한 대뇌의 작용에 그쳤을 뿐
당신의 본능은 죽음 앞에서 움찔, 제대로 반사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혹은 당신은 다행하게도 누군가의 유형, 무형의 도움과 돌봄에 의해 목숨을 건진 것이다.
당신은 살아있고, 아마도 여러가지 어려움들을 이겨왔고 이기고 있을 것이다.
그 점에 대해 당신 자신을 자랑스러이 여겨도 좋다.
하지만 기억해라.
당신은 정말로 죽어버린 사람에 비해 운이 좋기도 했다.
당신은 어쨌든 그들보다 덜 아팠던 것이고,
그들만큼 아팠다면 어디선가 그 결정적 순간에 도움을 받을 곳이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에 찾아온 사람 같은 물리적인 것이든, 그 순간 당신의 삶의 본능을 일깨운 어떤 기억이나 에너지 같은 무형의 것이든.
그것은 당신을 위해 참으로 잘 된 일이고,
당신은 그것에 대해 충분히 자부심 가져도 좋고 기뻐해도 좋지만,
그래서 그것들을 가지지 못했던 타인들을 당신 멋대로 재단하고 판단할 권리는
당신에게 없다.
그러니 죽은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라.
닥치고 당신 삶이나 챙겨라.
이렇게가 아니라, 먼 훗날 자연스럽게 맞았어도 한없이 애달프고 아까울 사람의 죽음인데
멋대로 입놀려 더럽히지 마라.
자살하려고 고층건물의 난간 위에 올라 보거나,
당신 팔에 주사기를 꽂아보거나,
수면제 한 줌을 삼켜보지 않았다면,
자살에 대해 함부로 논하지 마라.
당신이 정말 사랑하는, 당신 삶에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당신이 손 쓸 수 없는 사이 제 손으로, 제 발로 죽어버린 적이 없다면
자살에 대해 함부로 논하지 마라.
자살은 사춘기 문학소녀가 앞뒤 안 맞는 습작소설에 등장시키는 낭만적인 사건이 아니다.
문학작품 속의 낭만적인 가난이 실제의 가난이 아니듯,
가난하지 않은 당신이 상상하는 가난하지만 풍요롭고 낭만적인 가난은 존재하지 않듯
'죽을 용기로 차라리 살아갈' 수 있는 진취적이고 낭만적인 자살은 없다.
그야말로 개똥밭에 구르는, 저승보다 나을 것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도
차를타고 가다가 깜빡 사고가 날 뻔하거나 눈앞에 벼락이라도 떨어지면 움찔한다.
그 움찔하는 순간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건
고등 척추동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고등한 대뇌가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기본적인 본능이고, 당신의 고등한 대뇌가 관장하는 思考 이전의 일이다.
의자에 앉아 고무 망치로 무릎을 두드리면 발이 펄쩍 들려 올라가는 것처럼
죽음 앞에서 움찔, 하는 것은 생물적인 반사 반응이다.
정말로 자살하는 사람은 그 지극히 기본적인 반사반응이 작동하지 않을 만큼 아픈 사람들이다.
누군가 자살했다면 그가 드러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그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라.
죽을 용기로 살라는 말 따위 하고 싶거든 닥치고 당신 삶이나 용기있게 살아라.
나도 죽고싶었던 적 있다고 말하려거든 닥치고 감사기도나 해라.
당신이 죽고싶었다는 것은 '이렇게 말고, 다르게 살고 싶다'는 고등한 대뇌의 작용에 그쳤을 뿐
당신의 본능은 죽음 앞에서 움찔, 제대로 반사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혹은 당신은 다행하게도 누군가의 유형, 무형의 도움과 돌봄에 의해 목숨을 건진 것이다.
당신은 살아있고, 아마도 여러가지 어려움들을 이겨왔고 이기고 있을 것이다.
그 점에 대해 당신 자신을 자랑스러이 여겨도 좋다.
하지만 기억해라.
당신은 정말로 죽어버린 사람에 비해 운이 좋기도 했다.
당신은 어쨌든 그들보다 덜 아팠던 것이고,
그들만큼 아팠다면 어디선가 그 결정적 순간에 도움을 받을 곳이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에 찾아온 사람 같은 물리적인 것이든, 그 순간 당신의 삶의 본능을 일깨운 어떤 기억이나 에너지 같은 무형의 것이든.
그것은 당신을 위해 참으로 잘 된 일이고,
당신은 그것에 대해 충분히 자부심 가져도 좋고 기뻐해도 좋지만,
그래서 그것들을 가지지 못했던 타인들을 당신 멋대로 재단하고 판단할 권리는
당신에게 없다.
그러니 죽은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라.
닥치고 당신 삶이나 챙겨라.
이렇게가 아니라, 먼 훗날 자연스럽게 맞았어도 한없이 애달프고 아까울 사람의 죽음인데
멋대로 입놀려 더럽히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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