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aus kommt heraus

7월 12일 일요일.
병인학회 학생 캠프에 갔다가 서울역에서 해산한 게 1시
대전에서 엄마 올라오시고
오빠네가 별이 데리고 나와서
오랜만에 가족끼리 맛있는 걸 먹었다.
별은 어린이날 선물로 엄마랑 내가 골라준 노랑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자기가 직접 골랐다는 분홍색 곰돌이장화를 신고 나왔다.
완전히 어린이가 된 우리 별!
기말고사 치고 하느라고
두 달도 넘어서 본 것 같은데
여전히 나를 잘 따라서 고맙다. ^^

오빠 말로는 매일 보는 타인보다 가끔 보는 가족을 더 좋아한단다.
지 삼촌도, 가까이 살지만 늘 바빠서 나 보는 정도로 뜸하게 보지만
삼촌만 보면 그렇게 좋아한단다.


* "고모 오늘 생일이잖아요!"
상냥한 말투로 이렇게 말하는데, 녹는다 녹아. ^^
지난 주에 전화했을 때
"얘는 뽀로로고, 얘는 백곰이고, 얘는 패티고.. 고모 다음주에 생일이잖아요."
하고 정신없이 지얘기 하다 말고 고모 생일을 챙겼는데
생일축하하고 싶어서 나 오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근데 사실 내 진짜 생일은 12일은 아니다..)

별이 연필 잡고 아빠가 별의 손을 잡고
고모 생일 축하 카드도 써 줬다.
별의 아빠는 별이 쓴 거라고 추켜 주는데
지가 썼다고 우기지 않고 "아빠가 써 줬어요"라고 순순히 고백한다.
서울역 중식당에서 오빠네를 만났는데
오빠네가 오면서 케익을 사오려 했더니 별이
"고모가 어떤 케익 좋아해요?" 하고 묻더란다.
그래서 고모보고 고르라고 하려고 안 사왔단다.
아이구 이쁜 녀석.
배려할 줄도 알고.
여러 번 고맙다고 말해 줬다.
별이가 고모 생일 기억해 줘서 고맙고
배려해 줘서 고맙고, 축하해 줘서 고맙다고. ^^

식사를 마치고 오빠네가 케익 사주겠다고 해서 서울역내에 있는 파리크라상에 갔더니
케익이 종류도 몇 개 없고 엄청 비싸다.
내가 생각했던 가격대보다 10000원 정도 비싸서 못 고르고 우물대고 있는데
"고모 어떤 케익 좋아해요? 나는 초콜렛 있는 거. 이런 거."
하고 찍는다.
거기 초콜렛이 올라있는 케익은 단 한 종류다.
있는 케익 중에서도 제일 비싸서 그거 안 고르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다. 별은 내 딸도 아니고 오빠네 딸이니 오빠네가 비싼 케익 사야지 뭐. ^^

집에 가서 케익에 촛불 켜는데
초가 많다.
큰 거 셋, 작은 거 둘.
"뭐가 이렇게 많아?"
은근슬쩍 좀 뺄까 했더니 오빠가
"별아 고모 몇 살이야?"
"서른두 살!"
...
할 말 없다. 꼼찍없이 서른 두 개 다 꽂아버렸다.
불끄고 생일축하 노래 부르고 별과 같이 촛불 끄고...
별이 엄청 좋아한다.
사실 쪼그만 녀석이 생일이 무슨 의미인지 뭘 알겠나.
촛불 붙이고 노래부르고 불끄고 케익 먹고,
그것 자체가 좋은 거다.
그래서 고모 생일을 그렇게 기다렸겠지. ^^


* "별아 엄마는 몇 살이야?"
"서른 네 살!"
"아빠는 몇 살이야?"
"서른 네 살!"
"고모는 몇 살이야?"
"서른 두 살!"
"별은 몇 살이야?"
"그냥 네 살!"
그냥 네 살이다 별은.
ㅋㅋ

나이를 곧잘 말하길래 내가 한 번 거꾸로 물어봤다.
"별아 서른두 살은 누구야?"
"고모랑 삼촌."
아, 그래 별의 외삼촌이 나랑 동갑이다. ^^
"서른네 살은 누구야?"
"아빠랑 엄마!"

이렇게 나이를 먼저 물어도 대답하니까
언니가 신기해 했다.
전에는 이렇게 물어본 적은 없었다고.


* "들켰다~!"
라는 말이 재미있는 모양.
엄마 등 뒤에 숨었다가 고모가 찾아내면 '들켰다~' 하고
고모 숨으라고 했다가 지가 찾아내면 '들켰다~' 하고
어떨 때는 밥먹다 말고 엄마나 함머니한테 "들켰~다 해 봐!" 한다.
들켰~다! 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나 보다.
요즘 지 엄마아빠랑 맨날 숨바꼭질 한다고.


* 긴 부정문을 주로 사용한다.
"똑같지 않아요." "맞지 않아요" "맛있지 않아요"라고 하지
"안 똑같아" "안 맞아요"라고 하지 않는다.


* 별 잠재우기는 언제나 길고 험난한 과정이다.
별이 방에서 엄마랑 나랑 별이랑 누워서 별을 재워보려 했는데
나는 "옛날옛날에.."를 몇 개나 해 주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고 말았다.
전에 무한반복 '떡 하나 주면'이 효과를 못 봤기 때문에
이번엔 그런 꼼수 안 쓰고 그냥 힘 닿는 데까지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 줬다.
어려서 들은 전래동화들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시작하다 보면
꼭 생각 안 나는 데가 있었다.
아 이래서 구전문학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구나, 하며
지어서 말하고 축약해서 말하고...
성경의 에사우와 야곱 이야기도 해 주고...

그러다 잠들었는데 별이 밖에서 앙 울어버려서 깼다.
얼른 뛰어나가 별을 안고 왜 우냐고 물으니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은데
엄마 아빠는 나오지 않고 (역시 긴 부정문)
대전 함머니는 잠자고... 으앙~!"

(다음날 아침 엄마께 들으니, 내가 잠들고 나서
엄마아빠 보러 가자는 별에게 엄마가 '엄마아빠 회사가야 돼서 잔다, 별도 자라'고 하자

"대전 함머니 별이 말 안 들어서 미워!"

그러고 나가버렸단다.
별이 나가자 엄마는 곧 잠드시고
별은 어둠 속에서 분해 가지고 앙 울고 말았던 것.)

울지 말라고, 언니 오빠가 자고 있는 안방문을 슬쩍 열고 별을 들여보냈다.

잠시 후
덜컥~ 안방 문 열리는 소리,
촉촉촉~ 별의 발소리,
챙~ 하며 스텐레스 쓰레기통 열리는 소리,
콩~ 별이 도로 들어가 안방문 닫는 소리가 들린다.
뭐야 이 녀석.

잠들락 말락 할 때 다시 덜컥, 촉촉촉, 챙, 콩.
뭐지 요 녀석?

그러더니 다시 덜컥, 촉촉촉,
이번엔 고모한테 오더니
기저귀를 채워 달란다.

별은 이제 낮동안에는 완전히 대소변을 가리는데
잘 때는 실수를 하기 때문에 잘 때만 기저귀를 채운다.
하지만 잠들기 전에는 기저귀 차기를 싫어해서
잠든 것을 확인한 후 기저귀로 갈아입힌다.
그런데 웬일로 자발적으로 기저귀를?

그래서 입었던 옷을 벗기고 팬티형 기저귀로 갈아입히고 가서 자라고 했다.
"그런데요 내가 밑에 옷을 안 입었거든요."
어둠 속에서 별의 살림을 뒤져 바지 찾아내기가 귀찮아서
그냥 자라고 했더니

"그런데요, 엄마는 치마 입었고 아빠는 바지 입었거든요!"

에고 알았어.
다행히 별의 반바지가 하나 나와 있어서 입혔다.
촉촉촉, 콩.
별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 13일 월요일 아침 오빠네 부부는 다 출근하고
나랑 엄마랑 별이 밥먹이고 어린이집에 보냈다.
이 과정이 무척 길었다.
별이 오랜만에 만난 고모랑 대전함머니랑 놀려고 하지
어린이집 가려는 생각은 안 했기 때문이다.

한참 밥먹이느라고 온갖 역할놀이와 회유와 칭찬과 기타등등을 하던 중
엄마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찍힌 번호를 보며 "별이 엄마네." 하고 전화를 받으셨더니

"내 엄마다~! 내 엄마~! 엄마~~! 엄마~~!"

아이고 참.
'엄마~'하고 부르는 건 또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게 부르는지.
정작 엄마가 전화를 바꿔주시니까 딴청한다.


* 별 밥먹이는 테크닉 소개.

(1) 역할놀이
--1: 별에게 어서 **를 먹어야 튼튼해져서 해적선장님이 왔을 때 물리칠 수 있다고 말해 준다.
     해적선장님대신 마귀할머니, 호랑이, 기타등등으로 변용해도 된다.
--2: 해적선장님이 등장한다. "나는 해적선장님이다~!"
     때로는 별이 먼저 등장을 요구한다. "아빠는 누구야?"/ "나는 해적선장님이다!"
--3: 별이 급히 **를 먹는다.
     해적선장님, 별이 **를 먹어서 튼튼하게 된 것을 보고 알아서 도망간다.
     "힉~ 별이 **를 먹었다. 아이 무서워! 도망가자~!"
--4: 평화가 돌아오고 아빠(고모, 엄마, 함머니 등등..)가 재등장한다.
     "해적선장님 도망갔어. 난 이제 아빠야."

1단계에서 **를 먹어야 한다는 것이 미리 지정되지 않은 경우에 
2단계와 3단계 사이에서 별이 질문하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 도망가?"
  "별이가 **를 먹고 튼튼해지면 도망가지."
그럼 별이 얼른 **를 먹는다.

'해적선장' '마귀할멈'이 아니라 '해적선장님' '마귀할머니'가 등장하는 예의바른 놀이이다.
별은 가끔씩 이런 역할놀이를 하다가 무섭다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기도 한단다.
놀라운 집중력이다.
^^

(2) 고모가 먹기
더 아기 때부터 쓰던 방법이다.
밥먹다 말고 딴 데로 주의가 옮아가 있을 때 밥 한 숟갈에 반찬까지 이쁘게 올려놓고
"별이 밥이랑 김은 누가 먹지? 고모가 먹을까?"
하면 달려와서 먹는다.
가끔은 우습게 보고 안 먹으려고 해서 숟가락이 내 입으로 거의 들어가기도 한다.
진짜 배가 부를 땐 이것도 안 통하지만
웬만하면 잘 통한다.
별이 엄마아빠는 이 방법을 쓸 때 진짜로 먹지는 않을 게 뻔히 보이는데
나는 가끔은 정말로 먹어버리기도 한다. -_-;;
부모와 고모의 차이.
그래선지 내가 협박할 때가 더 잘 먹히는 듯...
아.. 그러고 보니...
이것도 내가 참 싫어하는 협박에 속하는 방법이었군...
재고해 봐야겠다.
근데 이 방법 안 쓰면 밥먹이기가 너무 어렵단 말이지...

(3) 언니라고, 어린이라고 칭찬하기.
요것도 최근에 생긴 방법이다.
어린이집에서 스스로 밥먹는 것을 배웠다 한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면담하면서 오빠네가 애 밥 떠먹여준다고 혼냈단다.
별은 처음에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밥 먹여주다가 안 먹여주니까
"선생님은 별이를 사랑하지 않아!"
하고 소리치며 당황해 했다는데
지금은 제법 혼자서도 잘 먹는다.
그러나, 간만에 만난 고모랑 대전함무니 앞에서 자발적으로 잘 먹고 싶지는 않은 모양.
어쨌든, 별이 식탁에 앉아있고 비교적 충실히 먹고 있을 때는
때때로 혼자서 먹기도 하고,
이 때 '역시 어린이라서, 언니라서 잘 한다'고 칭찬해 주면
더 잘 먹는다.

잠시 주제를 이탈해서 말하자면...
"선생님은 별이를 사랑하지 않아!" => 역시 긴 부정문이다.
그리고, 밥 떠먹여주는 것과 사랑을 동일시했다는 점에서
별의 제2의 사랑의 언어가 '봉사'일 가능성이 보인다.


아무튼 별에게 밥을 먹이려면 세 가지 기본 테크닉을 다 열심히 활용해야 한다.
그것도 지네 엄마아빠도 없고 지네함머니(키워주시는 외함머니)도 없고
간만에 본 고모랑 대전함머니만 있는 아침상에서는
밥먹는 게 아주 길고 흥미진진한(별의 입장에서..) 여정이었다.


* 별은 옷을 참 잘 골라입는다.
지 싫은 거 엄마가 아무리 입히려 해도 안 입는다던데
상하의 색깔 맞추는 거라든가,
기본적인 감각이 뛰어난 걸 확인했다.

우리 이모가 만들어주신 면 캉캉치마가 있다.
잔꽃무늬와 기하학 무늬가 찍힌 주황색과 분홍색의 중간쯤 되는 색 천을
맨 윗단과 맨 아랫단으로 하고
비슷한 무늬의 초록색 천을 중간단으로 넣어 만들고
허리 고무줄을 넣은 건데
똑같은 치마가 나한테도 있고 엄마한테도 있고 별에게도 있다. ^^
마침 서울 갈 때 나와 엄마가 모두 그 치마를 가져갔는데
별이 엄마 치마를 보더니
자기도 그 치마 있다고 꺼내와서 입고 엄청 좋아한다.
그래서 고모도 있다고 나도 꺼내다 입었다.
셋이 똑같은 치마라고 너무너무 좋아하며 웃는다.
양손으로 치마폭을 펼치면서 아랫배를 쑥 내밀어
내 치마에 갖다대고 엄마 치마에 갖다대고 하며 좋아한다.

내가 일요일 저녁 지나가는 말처럼 '우리 셋이 똑같은 치마 입고 어린이집 갈까?" 했는데
실제로 월요일에 어린이집 갈 시간에
언니가 별이 옷으로 골라놓은 원피스를 들고 왔더니 싫단다.
똑같은 치마 입고 가야겠단다.
그래서 집에서 뒹굴고 밥풀 묻힌 티셔츠만 갈아입혀 보내기로 했다.
내가 평소에 이 치마를 분홍색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별이 옷장을 열고 분홍색 티셔츠를 꺼내다 주며 "별이 분홍색 티셔츠 입을까?" 했더니
"똑같지 않아요. 오히려 초록색이 필요해요."
헉, 이건 기가 막힌다.
그래서 초록 티셔츠 찾으러 가자고 같이 데려가니
단숨에 초록 티셔츠를 집어낸다.
너무 남자애 츄리닝같이 생긴 티셔츠라고 생각했는데
지가 집어드니 입혔다.
근데 정말로 예뻤다.
분홍도 그냥 분홍이 아니라 노리끼리한 주황색 톤이 섞인 분홍인 데다가
연주황 초록 연주황 초록이 층층을 이뤄서
정말 예뻤다.
그걸 그렇게 본능적으로 척 하고 집어내는 별의 감각도 놀랍고
오히려 초록색이 필요하다는 그 수준높은 언어구사도 놀랍다.


* 별은 아빠랑 결혼하겠다고 한단다.
엄마랑 아빠가 둘만 손잡으면 와서 끊고,
질투가 보통이 아니란다.
(프로이트가 영 헛소리 한 것만은 아닌가 벼..)
엄마가 아무리 엄마랑 결혼하자고 해도 싫다고 한단다.

근데 생일케익 먹고 어쩌고 놀다가
"별아 고모랑 결혼할래?"
"그래!"
꺄하하.
그래서
별이 엄마의 엄청난 질투를 뒤로 하고
별과 나는 여보가 되었다.
여보랑 소풍놀이도 했다.
지난 주에 오빠가 남산에 데려갔다 왔더니
계속 소풍가자고 하고
집에서도 '뽀로로 카트'에 신문지와 지 살림살이를 양껏 싣고
거실에서 지 방으로, 지 방에서 거실로 소풍을 다닌다. ^^
소풍 가면 신문지 돗자리를 깔고 앉아야 한다.

살림살이 중에는
은행 atm전표, 신용카드 영수증 등등을 잔뜩 모은 상자가 있는데
꺼내서 이거 뭐라고 쓰여 있는지 열심히 묻는다.
아기 때부터 책을 좋아라 하더니 이젠 글씨에 흥미가 생기는 모양이다.
한 글자씩 짚으면서 또박또박 읽어줬다.
이러다 갑자기 글자를 읽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오빠가 그랬다니까..
근데 나는 별보다 훨씬 나이 든 7살 때까지도 글을 스스로는 못 깨쳤다.
그림책.. 좋아하는 그림책은 외워서 페이지 넘기는 속도에 맞춰 낭독은 할 지언정
글자는 몰랐다. 흠흠.

아무튼 그렇게 읽다가 하나은행 ATM종이에서 '하나은행'을 읽어주니까
'하나'(애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호비'의 동생...)라고 좋아한다. ^^

하나와 호비는 학습지처럼 매달 배달되어오는 장난감의 캐릭터이다.
호랑이 가족이 주인공인데
처음엔 호비만 있었고
엄마가 임신해서 매월 새로 오는 엄마의 배가 점점 커지더니
하나가 나왔다고 한다.
하나 인형에게 기저귀 채우는 놀이세트도 왔다고 한다.
별의 엄마(울 언니^^)도 배가 커지고 있는데 ^^
때마침 별에게 좋은 예행연습이 되고 있다고 한다.


* 월요일 아침, 어찌어찌 밥을 다 먹이고
옷도 갈아입혔으나
별이 어린이집을 가려고 하나...

"고모 돈 있어요?"
"아니! 없는데. 왜?"
"돈이 있으면 먹을 것도 살 수 있어요."

사실 나 돈 있다. 적어도 별이 과자 한 봉지 사먹일 돈이 왜 없겠나.
하지만 전에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없다 한 거다.

언니가 입덧이 심할 적에
울엄마가 주말에 별과 언니를 보살펴주러 몇 번 올라오셨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별을 어린이집에 보내주는 것까지 하고 내려오셨는데
어린이집 가자고 하면 별이
방에서 놀자, 그림책 보고 놀자 하고 딴전을 부리더란다.
그러다가

"대전함머니 돈 있어?"
"응. 왜?"
"이마트 가서 별과자 사 줘."
(울 조카의 태명 '별'과는 아무 상관없는 '별과자'가 있단다...)

울엄마는 나갈 준비하면서 그 대화 자체를 금방 잊어버리셨다는데
웬일로 나가자는 말에 순순히 따라나선 별이
어린이집앞에 도착하자 자기는 어린이집이 아니라 이마트 가는 거라고 하더란다.

"할머니 차 없어서 못 가."
"차 없어도 갈 수 있어."
"그래? 그러면 할머니는 이마트가 어디 있는지 모르니까, 선생님한테 가서 물어보자."
그렇게 어린이집으로 유인해서는 선생님에게
'별이함머니(평소에 키워주시는 외할머니)는 이마트가 어디 있는지 아는데 대전 함머니는 어디있는지 모르니까 별이함머니한테 전화걸어서 물어봐 달라'고 해서 선생님이 '그래? 그러면 들어가서 전화해볼까?'하고 데리고 들어가셨단다.

이제는 돈이 뭔지도 대강 이해하고 있는 별.
그러니까, 아기가 아니라 어린이다 이젠. ^^


* "여보 어제 소풍놀이 한 거 기억나?"
"응 기억나."
"그게 꿈이었어. 소풍놀이 한 게 꿈이었어."

"xxxx했는데 그게 꿈이었어."라는 구조의 이야기가 재미있나 보다.

나는 어릴 때의 기억이 상당히 또렷한 편인데
어릴 때 특정한 문형이나 문장 구조를 말하고 싶어서
일부러 그것에 꿰어 맞춰 이야기하다가 말이 꼬이기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대답으로 나오기를 바라며 일부러 딴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몇 개 남아 있다.
별이 종알종알거리는 것을 보면 그런 내 기억과 겹쳐서
참 귀엽고 재미있다.


* 우리 여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세수하자고 꼬셔도 안 오고 이닦자고 꼬셔도 안 오고
세수는 내 손에다 물 묻혀다가 쓱쓱 고양이 세수 시키고
이닦기는 포기하고 그냥 보내기로 했다.

"고모가 먹을까?" 전략처럼
"별이친구 태희랑 고모가 놀까?"
"별이 유치원(유치원이라고 한다) 가방 고모가 매고 가서 태희랑 놀아야지!"
전략을 구사하여
별이 어린이집 가방을 매고 우산을 집어들도록 만들었다.
그랬더니 별이
"이빨 안 닦았는데."

아 이런 기특할 데가.
지난번 봤을 땐 내가 고양이 세수 시킨다고 화가 나서 데굴데굴 구르고
이닦이려 하면 달콤한 아기용 치약만 쪽쪽 빨아먹고는
칫솔 팽개치고 도망가 이 꽉 물고 안 벌렸는데
어린이집 가려니까 이를 닦아야겠다는 거다!!
그래서 엄마랑 같이 이를 닦아줬다.
두 달여만에 봤더니 그사이 이닦는 태도도 많이 향상돼 있었다.
칫솔을 위아래 방향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이렇게 하면 벌레가 빠진대."
"누가 그랬어? 유치원에서 가르쳐주셨어?"
"아니, 아빠가!"
아하..
역시 아이들은 금방 자라고 변하는구나.


* 어린이집 보내는 게 습관을 바로잡는 데 큰 기여를 하는 것 같다.
이도 지가 자발적으로 닦겠다고 하고...
존대말도 어린이집 다니면서 배운 것 같고.


* 오후에 비가 올 예정이라 하여
별의 손에 파란색 우산을 들리고
나는 내 노랑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고모 이따가 비온대요."
"응. 비 올 거야. 비가 와도 괜찮아. 별이는 이쁜 장화도 있고 파란 우산도 있으니까."
"고모도 노란 우산이 있잖아요."

요러고 가다가 내가 아주 노래를 지어 불러줬다.

"비가 와도 괜찮아~
비가 와도 괜찮아~
왜? 왜? 왜?
별이는 파란 우산이 있으니까~!"

별 아주 좋아한다.
같이 두 번 정도 부르고 나서
"비가 와도 괜찮아~" 내가 첫 소절을 부르니까
"비가 와도 괜찮아~!" 저는 둘째 소절 음정으로 부른다.

포동해서 손에 가득 쥐이는 별의 손을 잡고
단지 안에 있는 어린이집에 갔다.
현관에서 선생님이 별을 반겨주시며 내가 누군지 물으신다.
고모라고 말씀드리고
별과의 이별.
선생님 앞에서도 똑같은 치마라고 배치기 한 번 더 하고
"비가 와도 괜찮아~! 파란 우산이 있으니까~!" 한 번 더 해 주고
(노래론 차마 못하고 말로 했다...)

빠이빠이 별.
사랑해!
정말 사랑해!!


* 조카보다 자식을 먼저 본 사람은
조카가 이만큼 이뻐 보이지 않겠지?
그러니까 조카보다 딸 먼저 생긴 오빠네보다
딸보다 조카 먼저 본 내가 이득이다.
내가 더 이쁜 걸 많이 보는 셈이니까. ^^


* 별은 누구 보고 따라하는지 '아이고~'라는 감탄사를 종종 내뱉는다.
아기 입에서 이 말이 나오면..
솔직히 안 웃을 수가 없다.


* 지금도 그런지 확실히는 모르겠는제
별은 전화를 해도 자기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지난 중간고사 무렵 전화했을 때도 '고모한테 우주선 보여줘야 한다'고 한 적이 있고
기말고사 때 별이 너무너무 보고싶어 전화했더니

"고모~ 내가  xx기 보여줄게!"

하고 전화기를 팽개치고 가더니 잠시 후에

"고모 이것 봐!"
"그게 뭐야? 물고기야?"
"아니, 모자. 호루라기."

모자모양 호루라기가 생겼다고 내게 자랑하는 것이었다.
차마 전화론 안 보인다고 말은 못하고
다음에 고모 놀러 가면 다시 보여달라고 했는데
이번에 가서 못 봤다.

"고모 다음 주에 생일이잖아요" 하던 날도
마치 우리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듯이

"이건 이렇게 하는 거에요.
이건 이렇게 하는 거에요.
이건 뽀로로고, 이건 패티고..."

이거는 뭐고 이렇게가 뭐랴... ㅋ


* 남들이 보면 다소 지루하리만큼 자세히 길게 이 기록을 다 남겨놓는 건
나중에 추억이 되고 별에게 선물도 될 것 같아서다.
사실 별이 말을 너무 잘하게 된 후로는
이 기록이 별로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 몇 번 거르기도 했는데
이번에 오빠네랑 이야기하다가
"작년 고맘때 별이 말 얼마정도 했었지?"
하는데
내가 기억해서 그 때 별이 했던 말을 몇 개 했더니
언니 오빠가 다 기뻐했다.
나는 천성적으로 언어적인 적성이 발달한 데다가
소시적에 언어학 공부도 조금 해 봤던 터라
아이들 언어발달 관찰하는 게 재미있고
남들보다 예리하게 파악하고 더 잘 기억하는 것 같다.
이렇게 기록해 놓으면
나중에 찾아보며 같이 재미있어할 수 있을 거다.
사진 잘 찍는 고모라면 사진을 찍어 남겨주고
그림 잘 그리는 고모라면 그림을 그려줄 수도 있지만
이빨로 때우는 고모는 이렇게 블로그 포스팅을 남겨줄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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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arl 2009/07/18 18:09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광서성의 더위를 한방에 날려주는 너무나 귀엽고 깜찍하고 똑똑한 별이 이야기--재밌게 잘 읽었어~~"그냥 네 살" ㅋㅋ 그런 말도 하다니 참 신기하네. 나도 우리 사촌 오빠네 딸 태어났을 때는 학교 마치자마자 집으로 직행해서 서연이 보러 갔잖어. 친구도 뭐도 다 싫고 서연이랑 노는 게 제일 좋았더랬지~~그래서 네 맘 알 듯! 그러던 서연이가 벌써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 아쉬워. 여전히 이쁘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 어렸을 때가 그립더라~~별이랑 좋은 추억 많이많이 남기길!

    • BlogIcon Heraus 2009/07/19 11:35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애기들의 힘은 진짜 대단하지. 너무 사랑스럽고 신기한 게 많아. 나도 오빠네랑 가까이 살았으면 네가 서연이 보러 다닌 것처럼 더 자주 다녔을 거야.^^

      학교 언니 한 명은 애들이 8살 5살인데 '사실 자식은 작을 수록 예뻐서 막내가 다 커버린 게 좀 아쉽다' 이런 말도 하더라구. ^^ 좀 크면 우리 별이도 고모랑 이렇게 재미있게 놀지 않고 자기 세계에 머물려고 하겠지. 언젠가는 정말 궁할 때 아니면 고모랑 놀지 않게 될 거고. 그래서 그 때 그 때에 맞춰 많이 사랑하고 추억을 만들어 둬야 할 것 같아. ^^

  2. 김명곤 2009/07/18 22:09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별이는 행복하겠다.
    저렇게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고모가
    저렇게 길고 긴 얘기를 써주었으니...
    별이가 오래오래 고모랑 다정하게 지내길 빕니다.

    • BlogIcon Heraus 2009/07/19 11:37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선생님, 역할놀이 잘 하는 우리 별이 배우로 키워도 될까요? ^^

      긴 글 읽어주시고 축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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