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한비야 선생님이 대전에서 강연을 하셨다.
계룡문고에서 기획한 새 책 '그건 사랑이었네' 출간기념 독자와의 대화 행사였다.

(사진 출처: 인터넷 서점 알라딘)
한밭도서관 대강당,
행사 시작 한 시간 전부터 가서 줄을 서고,
온갖가지 식전행사까지 다 보며 기다리고
마침내 그 분이 무대 위에 올랐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고,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전해오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한비야 선생님이 입을 열었을 때 깜짝 놀랐다.
58년생, 쉰두 살 선생님의 나이가 믿기지 않도록 앳된 목소리!
강의 주제는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였다.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그것을 찾아 그것을 해라.
100% 몰두할 수 있는 것을 찾아라.
물은 99도에서는 끓지 않는다.
100도로 끓을 수 있는 것을 찾아라.
선생님이 처음 긴급구호를 시작하실 적에..
전부터 하고 싶은 일이었고 월드비전쪽에서 먼저 제안이 왔으나
자신이 단순히 호기심에 하고 싶은 것인지 정말 하고 싶은 것인지 확실치 않으셨단다.
다른 사람들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어서
한 번 현장을 체험해 보고 결정하게 해 달라고 하셨단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현장으로 가셨다.
체험해 보고 진짜 이 일이라는 결론이 나면 월드비전 일을 시작하고
그게 아니라면 한 번 체험에 대한 글을 언론에 기고하고 끝내기로 하셨다고.
현장에는 '아산떼'라는 이름의 현지 의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그 나라(어느 나라인지 안 적어놨다. -_-;;)에 대통령도 이 사람에게 진료받고 싶어하지만 쉽게 만날 수 없는 유명한 의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의사가,
악수하기조차 겁나도록 끔찍한 부스럼이 난 난민들을 돌보고 있었단다.
어느 저녁, 그 의사에게 왜 여기서 돈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냐고 물으셨단다.
아산떼 曰
"내 재능과 기술을 돈 버는 데만 쓰긴 아깝잖아?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해!"
그 말이 선생님의 가슴에 불화살을 쏘았단다.
그리고 선생님은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 전문가로 일하기 시작하셨다.
음.
시간이 꽤 지났고
필기를 충실히 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강의내용을 체계적으로 전달하기는 곤란하겠고
내 가슴에 화살처럼 박힌 말들 위주로 적어봐야겠다.
*
"(너무 좋아서 그 일을) 하다가 죽어도 좋은 일을 찾는다면
그 일을 하닥 죽어도 후회가 없지 않겠는가."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말 많이 한다.
특히 나한테 편지 많이 하는 대학 3,4학년들! 여학생들 기껏해야 스물넷다섯,
남학생들 군대갔다 오고 어째도 많아야 서른!
너희들 결코 나이 많지 않다.
나도 마흔두 살까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지 몰랐다.
물론 세계여행을 다니고 할 때도 가슴이 뛰긴 했지만...
얼마 전에 월드비전에 마지막 출근을 해서 짐을 가지러 가던 날,
그 날도 나는 월드비전 건물에 들어서자 가슴이 뛰었다.
9년을 한결같이 가슴이 뛰는 일을 하다니 나느 정말 땡잡은(!) 사람이다.
그런데 나도 이것을 42살에야 발견했다!"
*
"두드려라! 열릴 때까지!"
"비야 언니는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것 같아요" 이런 말 많이 든는다.
아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내 힘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아픈데도 아픈 것을 숨기고 현장에 갔다 오고
돌아와서 바로 입원한 적도 있다.
여러가지 제한이 있고 발목을 잡는 것이 많다고 하소연하는 편지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나라고 발목을 잡는 끈이 없었겠는가?
여러분이 가진 끈, 그거 나도 다 있다.
그런데 그 끈이 정말로 못 끊을 건가?
그거는 해 봐야 한다!
흔들리고 비틀거려야 성장한다.
나라고 왜 힘들 때가 없고 나라고 왜 그만두고 싶을 때가 없었겠는가?
*
질문: 두 딸을 둔 40대 엄마다. 나는 아직도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찾아야 하나?
답변: 하여간 열심히 찾아보시라. 무엇을 할 때 내가 기분이 좋았는가, 언제 마지막으로 가슴이 뛰었는가, 생각해 보시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질문: 우리 딸이 선생님하고 비슷한 점이 있다. 말이 빠른 것하고 성격이 바르르 하는 것이다. 나는 그 바르르 하는 성격을 단점이라 생각해서 고치기를 바랐었는데 선생님 자신의 바르르 하는 성격을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답변:
1. 말이 빠른 것. 말이 빨라도 발음만 정확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아침마다 시 두 편을 정확한 발음으로 낭독하는 연습을 한다. 말이 빠르면 흔히 ㄹ이나 ㄴ 발음 등이 새곤 하는데, 그것만 잘 고치면 말 빨리 하는 것 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해진 시간에 말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은 점도 많다. 말 빨리하는 자녀 두신 분들,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란다.
2. 바르르 하는 성격은 나도 좀 고쳐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 앞에서 누가 바르르 하면 참 꼴보기 싫기 때문이다. 내가 바르르 화내면 남들도 나 보고 그렇게 생각할 거 아닌가. 하지만 고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바르르 하는 것이 꼭 나쁜 쪽으로만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가 커서 나중에 약자를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바르르 하면서 좋은 쪽으로 자기 성격을 발휘한다면, 꼭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질문: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쓰셨어요?
답변: 일기쓰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됐다. 이번 책은 심지어 일기에서 조금만 손 봐서 책에 실은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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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 yes24에서 16일 저녁 광주 조선대에서 하는 강연의 입장권을 주는 이벤트를 했다. 그래서 신청하고 기차타고 광주 갈 결심을 했는데, 다음날 한살림 대전 운영자가 개인적인 관심에서 대전 강연에 관한 안내메일을 조합원들에게 발송했다. 나는 한살림 회원이 아니지만 엄마가 한살림 회원이시고 엄마가 인터넷을 거의 사용 안 하시므로 내 메일주소를 엄마 이름으로 등록해 놓았기 때문에 강연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런 횡재가!!
강연 첫머리에서 선생님이 '대전에 올 예정이 없었는데, 게룡문고 기획자가 하도 끈질기게 부탁해서 누군가 얼굴 보러 왔다. 아마 저 분은 다음 달엔 이순신 장군을 초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분 축복 받으시라~! ^^
강연 끝나자마자 잽싸게 튀어나와 한비야 선생님이 도서관 마당에서 차에 오르시는 데 차 속으로 손을 쑥 밀어넣으며 "선생님 악수 한 번만 해 주세요!" 했더니 내 손을 잡아주셨다. 아 기분좋아 *.*
현장생활 9년을 하고 나니 이론 공부를 할 필요성을 느껴서
월드비전을 6월말로 그만두셨고 8월 10일 출국하셔서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밟으신단다.
그 이후에 무엇을 할지는 정해놓지는 않으셨고
다만 50대를 긴급구호 관련 일을 하면서 보낼 것만은 확실하시다고.
내가 한의학을 선택했을 때 고려했던 중요한 기준 하나는
난민촌에 갈 때 도움이 되는 직업인가, 였다.
홍보회사에서 일하셨던 경력으로부터 시작하여 구호단체로 가신 한비야 선생님 보며
나도 광고회사에서 꾹 참고 경력 쌓아 구호단체 가 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또 죽지 않고 하루가 시작했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워 눈물이 나던 생활인데
홍보인력을 신입으로 뽑아 훈련시킬 여력이 없는 구호단체에 가기 위해 그 생활을 5년씩 견디다간
그 전에 죽지, 싶어서 포기했다.
말하자면, 한비야 선생님은 내 영웅이고 내 롤 모델이시다.
선생님의 50대가 곧 나의 30대이니
30대를 열심히 살아 나가면 30대의 어느 날 그 분과 한 곳에서 일할 기회도 얻어지지 않을까.
일단 그 분이 석사 따시는 2년동안
나는 한의사 면허 따는 과정을 충실히 밟아야지.
16일은 내 생일 다음날이었는데
생애 최대의 생일 선물이었다. ^^
계룡문고에서 기획한 새 책 '그건 사랑이었네' 출간기념 독자와의 대화 행사였다.

(사진 출처: 인터넷 서점 알라딘)
한밭도서관 대강당,
행사 시작 한 시간 전부터 가서 줄을 서고,
온갖가지 식전행사까지 다 보며 기다리고
마침내 그 분이 무대 위에 올랐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고,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전해오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한비야 선생님이 입을 열었을 때 깜짝 놀랐다.
58년생, 쉰두 살 선생님의 나이가 믿기지 않도록 앳된 목소리!
강의 주제는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였다.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그것을 찾아 그것을 해라.
100% 몰두할 수 있는 것을 찾아라.
물은 99도에서는 끓지 않는다.
100도로 끓을 수 있는 것을 찾아라.
선생님이 처음 긴급구호를 시작하실 적에..
전부터 하고 싶은 일이었고 월드비전쪽에서 먼저 제안이 왔으나
자신이 단순히 호기심에 하고 싶은 것인지 정말 하고 싶은 것인지 확실치 않으셨단다.
다른 사람들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어서
한 번 현장을 체험해 보고 결정하게 해 달라고 하셨단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현장으로 가셨다.
체험해 보고 진짜 이 일이라는 결론이 나면 월드비전 일을 시작하고
그게 아니라면 한 번 체험에 대한 글을 언론에 기고하고 끝내기로 하셨다고.
현장에는 '아산떼'라는 이름의 현지 의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그 나라(어느 나라인지 안 적어놨다. -_-;;)에 대통령도 이 사람에게 진료받고 싶어하지만 쉽게 만날 수 없는 유명한 의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의사가,
악수하기조차 겁나도록 끔찍한 부스럼이 난 난민들을 돌보고 있었단다.
어느 저녁, 그 의사에게 왜 여기서 돈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냐고 물으셨단다.
아산떼 曰
"내 재능과 기술을 돈 버는 데만 쓰긴 아깝잖아?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해!"
그 말이 선생님의 가슴에 불화살을 쏘았단다.
그리고 선생님은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 전문가로 일하기 시작하셨다.
음.
시간이 꽤 지났고
필기를 충실히 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강의내용을 체계적으로 전달하기는 곤란하겠고
내 가슴에 화살처럼 박힌 말들 위주로 적어봐야겠다.
*
"(너무 좋아서 그 일을) 하다가 죽어도 좋은 일을 찾는다면
그 일을 하닥 죽어도 후회가 없지 않겠는가."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말 많이 한다.
특히 나한테 편지 많이 하는 대학 3,4학년들! 여학생들 기껏해야 스물넷다섯,
남학생들 군대갔다 오고 어째도 많아야 서른!
너희들 결코 나이 많지 않다.
나도 마흔두 살까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지 몰랐다.
물론 세계여행을 다니고 할 때도 가슴이 뛰긴 했지만...
얼마 전에 월드비전에 마지막 출근을 해서 짐을 가지러 가던 날,
그 날도 나는 월드비전 건물에 들어서자 가슴이 뛰었다.
9년을 한결같이 가슴이 뛰는 일을 하다니 나느 정말 땡잡은(!) 사람이다.
그런데 나도 이것을 42살에야 발견했다!"
*
"두드려라! 열릴 때까지!"
"비야 언니는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것 같아요" 이런 말 많이 든는다.
아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내 힘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아픈데도 아픈 것을 숨기고 현장에 갔다 오고
돌아와서 바로 입원한 적도 있다.
여러가지 제한이 있고 발목을 잡는 것이 많다고 하소연하는 편지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나라고 발목을 잡는 끈이 없었겠는가?
여러분이 가진 끈, 그거 나도 다 있다.
그런데 그 끈이 정말로 못 끊을 건가?
그거는 해 봐야 한다!
흔들리고 비틀거려야 성장한다.
나라고 왜 힘들 때가 없고 나라고 왜 그만두고 싶을 때가 없었겠는가?
*
질문: 두 딸을 둔 40대 엄마다. 나는 아직도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찾아야 하나?
답변: 하여간 열심히 찾아보시라. 무엇을 할 때 내가 기분이 좋았는가, 언제 마지막으로 가슴이 뛰었는가, 생각해 보시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질문: 우리 딸이 선생님하고 비슷한 점이 있다. 말이 빠른 것하고 성격이 바르르 하는 것이다. 나는 그 바르르 하는 성격을 단점이라 생각해서 고치기를 바랐었는데 선생님 자신의 바르르 하는 성격을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답변:
1. 말이 빠른 것. 말이 빨라도 발음만 정확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아침마다 시 두 편을 정확한 발음으로 낭독하는 연습을 한다. 말이 빠르면 흔히 ㄹ이나 ㄴ 발음 등이 새곤 하는데, 그것만 잘 고치면 말 빨리 하는 것 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해진 시간에 말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은 점도 많다. 말 빨리하는 자녀 두신 분들,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란다.
2. 바르르 하는 성격은 나도 좀 고쳐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 앞에서 누가 바르르 하면 참 꼴보기 싫기 때문이다. 내가 바르르 화내면 남들도 나 보고 그렇게 생각할 거 아닌가. 하지만 고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바르르 하는 것이 꼭 나쁜 쪽으로만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가 커서 나중에 약자를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바르르 하면서 좋은 쪽으로 자기 성격을 발휘한다면, 꼭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질문: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쓰셨어요?
답변: 일기쓰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됐다. 이번 책은 심지어 일기에서 조금만 손 봐서 책에 실은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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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 yes24에서 16일 저녁 광주 조선대에서 하는 강연의 입장권을 주는 이벤트를 했다. 그래서 신청하고 기차타고 광주 갈 결심을 했는데, 다음날 한살림 대전 운영자가 개인적인 관심에서 대전 강연에 관한 안내메일을 조합원들에게 발송했다. 나는 한살림 회원이 아니지만 엄마가 한살림 회원이시고 엄마가 인터넷을 거의 사용 안 하시므로 내 메일주소를 엄마 이름으로 등록해 놓았기 때문에 강연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런 횡재가!!
강연 첫머리에서 선생님이 '대전에 올 예정이 없었는데, 게룡문고 기획자가 하도 끈질기게 부탁해서 누군가 얼굴 보러 왔다. 아마 저 분은 다음 달엔 이순신 장군을 초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분 축복 받으시라~! ^^
강연 끝나자마자 잽싸게 튀어나와 한비야 선생님이 도서관 마당에서 차에 오르시는 데 차 속으로 손을 쑥 밀어넣으며 "선생님 악수 한 번만 해 주세요!" 했더니 내 손을 잡아주셨다. 아 기분좋아 *.*
현장생활 9년을 하고 나니 이론 공부를 할 필요성을 느껴서
월드비전을 6월말로 그만두셨고 8월 10일 출국하셔서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밟으신단다.
그 이후에 무엇을 할지는 정해놓지는 않으셨고
다만 50대를 긴급구호 관련 일을 하면서 보낼 것만은 확실하시다고.
내가 한의학을 선택했을 때 고려했던 중요한 기준 하나는
난민촌에 갈 때 도움이 되는 직업인가, 였다.
홍보회사에서 일하셨던 경력으로부터 시작하여 구호단체로 가신 한비야 선생님 보며
나도 광고회사에서 꾹 참고 경력 쌓아 구호단체 가 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또 죽지 않고 하루가 시작했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워 눈물이 나던 생활인데
홍보인력을 신입으로 뽑아 훈련시킬 여력이 없는 구호단체에 가기 위해 그 생활을 5년씩 견디다간
그 전에 죽지, 싶어서 포기했다.
말하자면, 한비야 선생님은 내 영웅이고 내 롤 모델이시다.
선생님의 50대가 곧 나의 30대이니
30대를 열심히 살아 나가면 30대의 어느 날 그 분과 한 곳에서 일할 기회도 얻어지지 않을까.
일단 그 분이 석사 따시는 2년동안
나는 한의사 면허 따는 과정을 충실히 밟아야지.
16일은 내 생일 다음날이었는데
생애 최대의 생일 선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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