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김대중 대통령 돌아가신 것을 애통해 하는 글은 썼으나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 조문은 안 갔다.
그 때 서울에 있었으니
맘만 먹었으면 국회도 갈 수 있었을 텐데
안 갔다.
장례식 끝나고 나서야 생각했다.
아 내가 잘못했구나.
갈 걸...
사실 노무현 대통령 때도
같이 다니는 언니들이 같이 가자고 안 했으면 안 갔을 거다.
속상하고 애통하고 뭐라도 해야겠기는 한데
조문하러 가기는 싫었다.
아마 나는 아직도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을 직면하는 게 싫은 것 같다.
아빠가 돌아가신지 14년이 넘었는데도
나한테 초상이란 참 끔찍한 느낌인 거다
물론 주위의 친구들이나 누가 부모님 돌아가셨다 이럴 땐 웬만하면 간다.
나 자신도 당해 봐서 그럴 때 와서 눈인사 한 번 건네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 힘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유족과 나 사이에 끈끈한 관계가 없을 때는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20대 때 온갖 이유 들어 결혼을 거부했었다.
이론은 거창했다.
실제로 나는 가부장적인 결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결혼 자체가 가부장제이므로
결혼제도를 파괴해야된다고
실천도 못할 과격한 사상을 품고 꽤 오랜 시간을 살았다.
그러나 20대 중반 만나던 남자친구가 결혼을 요구했을 때
나를 뒤흔든 공포는
애초에 지키지 못할 게 뻔했던 나의 거창한 신념을 저버릴까봐, 가 아니라
결혼하면 남편도 아프고 죽을 거고, 시부모도 아프고 죽을 거고, 남편의 형제자매와 그 배우자와
하여간 사돈의 팔촌까지, 아프고 죽을 사람이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지독한 공포에 쫓겨
나는 아팠고, 탈출구를 찾아 헤맸고, 한의대에까지 왔다.
이젠 어지간히 성숙했고
어지간히 죽음을, 나든 타인이든 죽는다는 사실을
제법 많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또 깨닫는다.
내가 아직도
안 볼 수만 있으면 안 보고
도망칠 수만 있으면 도망치려 하고 있다는 것.
김대중 대통령을 위해서
연도라도 한 번 바쳐드려야겠다.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 조문은 안 갔다.
그 때 서울에 있었으니
맘만 먹었으면 국회도 갈 수 있었을 텐데
안 갔다.
장례식 끝나고 나서야 생각했다.
아 내가 잘못했구나.
갈 걸...
사실 노무현 대통령 때도
같이 다니는 언니들이 같이 가자고 안 했으면 안 갔을 거다.
속상하고 애통하고 뭐라도 해야겠기는 한데
조문하러 가기는 싫었다.
아마 나는 아직도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을 직면하는 게 싫은 것 같다.
아빠가 돌아가신지 14년이 넘었는데도
나한테 초상이란 참 끔찍한 느낌인 거다
물론 주위의 친구들이나 누가 부모님 돌아가셨다 이럴 땐 웬만하면 간다.
나 자신도 당해 봐서 그럴 때 와서 눈인사 한 번 건네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 힘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유족과 나 사이에 끈끈한 관계가 없을 때는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20대 때 온갖 이유 들어 결혼을 거부했었다.
이론은 거창했다.
실제로 나는 가부장적인 결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결혼 자체가 가부장제이므로
결혼제도를 파괴해야된다고
실천도 못할 과격한 사상을 품고 꽤 오랜 시간을 살았다.
그러나 20대 중반 만나던 남자친구가 결혼을 요구했을 때
나를 뒤흔든 공포는
애초에 지키지 못할 게 뻔했던 나의 거창한 신념을 저버릴까봐, 가 아니라
결혼하면 남편도 아프고 죽을 거고, 시부모도 아프고 죽을 거고, 남편의 형제자매와 그 배우자와
하여간 사돈의 팔촌까지, 아프고 죽을 사람이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지독한 공포에 쫓겨
나는 아팠고, 탈출구를 찾아 헤맸고, 한의대에까지 왔다.
이젠 어지간히 성숙했고
어지간히 죽음을, 나든 타인이든 죽는다는 사실을
제법 많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또 깨닫는다.
내가 아직도
안 볼 수만 있으면 안 보고
도망칠 수만 있으면 도망치려 하고 있다는 것.
김대중 대통령을 위해서
연도라도 한 번 바쳐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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