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aus kommt heraus

매우 친했던 사람이 있는데
성격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가치관이 대단히 밝고 반듯한 편도 아니었던 듯하고.
(다만 두려움이 많고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해서 사는 건 반듯했다.)
그는 내게 꽤 자주 상처를 줬고
그 중 몇 번은 아주 황당할 지경이었는데
그 때마다 나는 어버버 하며 그냥 '감내'했다.
몇 번은, 이번에는 정말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마음먹고서
그에게 전화를 걸거나 그를 만나기도 했는데
어버버한 내 성격 때문에 어쩌다 보면 또다시 어버버
내가 잘못한 거고 나는 충분히 반성하고 있고 그는 나를 이번에도 보아 넘겨 주기로 한 것으로 상황을 만들어버리고 넘어가곤 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어버버하고 대체로 수용적인 성격이라고 해도
그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고
어느 날 보니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억지로 친한 친구 사이라는 허울을 뒤집어 쓰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더 이상 그를 곱게 두고 볼 수가 없을 지경까지 황폐해져 있었던 거다.
결국 그가 또 어떤 계기로 내게 상처될 일을 했던 어느 날,
나는 그 사건 하나로만 봐서는 황당해하기 충분할 정도로 폭발해 버렸고
그와 '연을 끊어' 버렸다.

지금도 가끔 그가 생각난다.
친했던 만큼, 그리고 내가 그를 예쁘게 보려 했던 만큼,
어느 날 황폐해진 내 마음을 인식하고, 가와 '연을 끊'고, 그를 미워하는 마음에 그냥 몰입해 버린 후로는
그가 더 밉고, 그를 더 저주하게 되고, 그가 더 추악해 보인다.
한편으론 내 기본적인 성향대로
그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인다.

오늘 아주 오랜만에 그의 홈피에 가봤는데
얼마 전 종교를 갖게 된 그는 그 종교에 푹 빠진 듯,
도 딲는 소리들을 게시판에 올리고 있었다.
한 편으론 그가 많이 변했나 싶다가도
한편으론 또 미운 마음이 일어 '언제나 말은 번드르했지', 생각하고
지금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몹시 궁금하기도 하다.

어쨌든 내 쪽에서 먼저 말을 걸면
예전 내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었던 내 실수, 그러니까,
어버버하다가 나는 '내가 미안해 용서해 줘' 모드가 되고,
그는 나의 잘못을 덮고 넘어가 주는 모드가 되고,
그것을 다시 한 번 반복하게 될 뿐임을 알고 있고,
이렇게 미움이 들끓고 곱게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그를 만나선 내게나 그에게나 도움될 것 없음을 알고 있고,
내가 늘 상처를 받았던 그의 어떤 면모들이 변하지 않았다면 내가 내 마음을 다 풀고 다가선다 해도 나는 다시 상처받고 황폐해질 것이 뻔하므로
나는 아직까지 그에게 말을 걸 계획이 없다.

뭐, 인연 되는 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믿고있고,
그와 친하지 않은 사이로 지내는 것이 불편하거나 되게 아쉽지는 않은데
이런 내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뭐가 마음에 안 들어도 부정적인 의사표현을 잘 못하는 경향이 크다. 그냥 그래그래어버버하며 한계수위까지 수용하다가, 한계에 이르르고도 수면밖으로 솟아나올 만큼 더 수용하려 해 보다가, 미움이 드글드글 끓고 내 마음 한 바탕이 황폐해질 때 돼서야 나가떨어진다. 이게 내 입장에서 말하면 이렇지,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황당할 거다. 어제까진 싱글싱글 웃으며 그래그래 하고, 심지어 실없이 다가와 필요없는 칭찬 한 마디라도 꼭 던지고 가넌 넘이, 어느 날 자기를 피하고 자기를 싫어하고 폭발하고 그러는 거다.

그나마 위에서 말한 친했던 이는 당장에 볼 일이 없기나 하지, 그런 비슷한 마음에 처한 사람이 지금 수업 같이 듣는 사람 중에도 있다. (지금 수업을 같이 듣는다는 건 곧, 앞으로 6년 쭉이라는 소리다.)

그런 마음은 꼭 구안와사가 온 것 같다.
구안와사가 오기 전에 나른히 쏟아지는 잠을 떨쳐내고 따뜻한 이부자리 찾아 들어가야 한다. 그냥 졸리다고 찬 바닥에 엎어져 자면 구안와사가 오고, 그게 일단 오고 나면, 고치기는 어려워진다.
알면 이제부터 마음의 구안와사가 오지 않도록 처신하면 되는데.. 마음이 생겨먹은 꼴도 바꾸기가 퍽 어렵거니와.. 이미 생긴 구안와사가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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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anti 2005/10/04 20:31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구안와사가 뭐예요?

  2. heraus 2005/10/19 15:19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오옹 드라마 '허준'을 열심히 안 보셨었군요. ^^; 입이 돌아가는 거요. 차가운 데서 오랫동안 가많이 있으면 생긴대요. 드라마 허준에 왕후의 친정 동생이 입이 돌아가는데 어쩌구저쩌구 그런 내용이 나와서 알게 됐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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