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aus kommt heraus

니 하오! 니 츠 판러마?
제목의 중국어 번역이다. 베트남 사람들도 비슷한 인사를 주고 받았다. 모르긴 몰라도 일본어에도 비슷한 인사말이 있을 거고 싸잡아 '중국어'로 통칭되지만 사실은 다른 언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중국어의 수많은 방언들에도 비슷한 인사말이 있을 거고, 중국이라는 나라의 영토에 속하는 지역에서 지금까지 사용되는 수많은 소수민족언어들에도 비슷한 인사말이 있을 거다. 마치 영어에 굿모닝 독어에 구텐모르겐 불어에 봉쥬르 기타 유럽언어들에 모두 비슷한 인사말이 있는 것처럼.

이번 학기에 '의학중국어'라는 과목을 배운다. 제목은 저렇지만 사실은 중국어를 하나도 안 배운 학생부터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지금은 일반적인(사실은 시대에 약간 뒤떨어진--;;) 교재로 초급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선생님은 중국 천진에서 오신 교환교수이신데, 이름이 우리말 발음으로 '김군' 중국 발음으로 '진쥔'인 조선족이시다. 한국에 드나들기 전에는 한국어를 이해는 해도 말은 못하셨던 모양인데 지금은 한국말도 거의 중국어만큼 하신다.

얼마 전 '니 츠 판러마?'가 처음으로 책에 등장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그렇듯, 우리반도 그 발음 때문에 한 바탕 웃기부터 했다. (니 씨발러마 비슷하게 들린다.) 웃음이 잦아들 때 즈음, 선생님이 설명하신다. 개방화 이전의 중국에서, 먹고 살기 힘들고 굶는 사람이 많아서 이런 인사말이 생겼는데, 지금은 다른 인사말을 더 많이 쓰자는 움직임이 있다고.

저런 종류의 자학적인 해설은 한국어 인사말에 대해서도 참 여러번 들었다. 6/25 때문에, 못살아서 등등, 역사적 배경에 따라 제목만 다르게 붙었을 뿐, 김군 선생님이 하던 말과 거의 똑같은 말들이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시립 개포도서관에서 열린 어린이 독서교실에 참가했다가 직업이 작가였던 걸로 기억나는 어느 강사가 '안녕하세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같은 인사말들에 대해 '하도 난리를 겪어서 안 죽고 살았냐고 인사말들을 했다'고, 앞으론 저런 나쁜 인사말은 쓰지 말라고 그러는 걸 듣고선, 우리집에 있다 가는 손님에게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말을 못하고 우물쭈물 섰던 기억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다. 그런 소리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역사언어학적으로 연구 한 번 해 보고 하는 소리냐고. 문헌을 뒤지면 6.25 이전엔 그런 인사말이 쓰인 기록이 없고 6.25 이후에 등장했더냐고. 그리고 그런 인사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거 맞더냐고.

나도 연구해본 적은 아니지만, 장담컨대 아니다. 이건 그냥 동아시아의 인사하는 방식일 뿐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아는 사람 만나면 그냥 오만가지 방법으로 안부를 묻는다. 안녕하신지, 식사하셨는지, 어디 가시는지. 그런 인사에는 계절이 반영되기도 한다. 김장철이 되면 김장하셨는지도 묻고, 여름이면 휴가 다녀왔는지 묻는다. 퇴근한 아빠가 뻔히 잘 들어오는 걸 보면서도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라고도 묻는다. 사실 우리는 그 질문을 하면서 진짜로 안녕 못하고 난리를 겪을까봐, 진짜로 밥 못 먹었을까 봐, 진짜로 머나먼 어디를 가는지 그런 걸 걱정해서 묻지 않는다. 대답할 때도 심각하게 내가 정말 안녕한지, 내가 정말 밥을 잘 먹고 왔는지, 진짜로 어딜 가야 하는 게 급하거나 곤란한지 별 생각 없이 대답한다. 설사 아직 안 먹었다는 대답이 나와도 보통의 경우에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게 그냥 다 인사다. 아침점심저녁에 좋다는 형용사를 붙여 인사하고 별 뜻이 없는 인사 전용의 말(헬로, 할로 따위의..)을 사용하는 것이 유럽인들의 인사 방식이라면, 오만가지 안부를 묻는 것이 동아시아인들의 인사 방식인 것이다. 옛날 이야기들 봐도 똑같이 인사하지 않던가. 기체후일향만강하시옵고 어쩌고 하면서도 묻고, 기침하셨습니까 하면서도 묻고.

이 좋은 인사말들이, 어디가 그렇게 못나서 미움을 받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굿모닝/애프터눈/이브닝/나잇'의 인사말을 숭앙하는 자학적인 사람들은 깜짝 놀라겠지만 외국인들은 우리말 인사에 대해 의외로 좋은 반응을 보인다. 나는 독일에서 친했던 폴란드 친구에게 한국어의 인사말 체계에 대해 얘기해 주면서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계세요'에 대해서 "Are you in peace?' 'Stay in piece!/ Go with piece!'로 번역해 줬는데(물론 독일어로), 친구는 경이롭다는 눈빛으로 '참 좋은 인사말을 가졌다'는 칭찬을 했다. 은연 중에 자학적 인사들의 관점에 물들어 있던 나에겐 참 즐거운 경험이었다.

요즘은 영어의 영향력이 지대해지면서 '좋은 아침~'이라든가 '편안한 밤 되십쇼' 라든가 따위의 인사말들이 공식적인 인사말로도 자리잡고 있다. 언어란 언중의 사용에 따라 변화해 가는 존재이므로, 우리 말에서 저런 인사가 쓰인다면 저런 인사도 이젠 우리 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인사말들을 사용하더라도, 우리가 전부터 가진 인사말들을 부끄러워하거나 악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일부러 버릴 필요는 없다. 사실 '좋은 아침'이라든가 '편안한 밤' 따위의 인사말이 우리말에 별 거부감 없이 도입됐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오만가지 방법으로 안부를 묻는 인사방법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런 인사말들도 안부를 묻고 기원하는 오만가지 방법으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저 인사말들이 아주 이질적이고 우리의 인사방식에 맞지 않았다면 차라리 원어대로 수입될 지언정, 우리 말의 형태로 편입되지는 않았겠지.

내 블로그에 오셔서 글 읽으신 분들, 모두 안녕히 가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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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신회장 2005/10/20 19:06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어릴때 잘못 심어준 인식의 파장은 정말 엄청납니다.
    그 작가분은 도대체 어떻게 인사하는지 궁금하네요;;

  2. BlogIcon 겔드 2005/10/20 20:24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글 잘보고 갑니다.
    안녕히 계세요~ :)

  3. BlogIcon 노을 2005/10/20 20:37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저도 그런말을 어렸을때 들었었는데요... 그래서인지... 요즘도 가끔... 안녕히계세요. 라던지... 안녕히 가세요. 라는 말을 쓰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가 한 말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꽤 영향력이 있던 사람(혹은 언론?) 이었던것 같습니다. 아직도 제 삶에 영향을 주니 말이죠...

  4. BlogIcon daybreaker 2005/10/20 21:35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저는 고유 인사말에 대한 비판은 처음 들어봅니다만.. 그 외국 친구에게 번역을 해 줬던 부분이 좋습니다. 상식적으로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면 굳이 버리려고 하거나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5. BlogIcon hanti 2005/10/21 12:38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경축!
    heraus가 올블로그 어제의 알찬글 7위로 데뷔하다.

  6. heraus 2005/10/28 14:18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와 주신 분들 모두 안녕하세요? 요즘 컴퓨터 없이 생활하는 통에 오늘에야 이렇게 여러분이 글 읽고 반응해 주신 걸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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