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aus kommt heraus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오츠 슈이치 저/황소연 역 | 21세기북스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인가?
어제 문구류 사러 홈플러스에 갔더니 도서코너에 눈에 잘 띄는 곳에 따로 전시돼 있었다.
같이 전시된 책들은 역시 장안의 화제 '아이의 사생활' '그건 사랑이었네' 등등...

목차는 이렇다.

첫 번째 후회,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두 번째 후회,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세 번째 후회,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네 번째 후회,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다섯 번째 후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여섯 번째 후회,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일곱 번째 후회,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여덟 번째 후회,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아홉 번째 후회,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열 번째 후회,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열한 번째 후회,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열두 번째 후회, 고향을 찾아가보았더라면
열세 번째 후회,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보았더라면
열네 번째 후회, 결혼했더라면
열다섯 번째 후회, 자식이 있었더라면
열여섯 번째 후회, 자식을 혼인시켰더라면
열일곱 번째 후회, 유산을 미리 염두에 두었더라면
열여덟 번째 후회,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열아홉 번째 후회,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두었더라면
스무 번째 후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스물두 번째 후회,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스물세 번째 후회, 좀 더 일찍 담배를 끊었더라면
스물네 번째 후회, 건강할 때 마지막 의사를 밝혔더라면
스물다섯 번째 후회, 치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막상 책 내용은 기대보다 얄팍해서, 목차 읽으면 70% 읽은 것이다.
게다가 기질적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편이라
이 책을 사고싶은 생각은 별로 안 들었다.

어쨌든 책의 목차를 읽으면서 참 감사했다.
나는 참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고, 많은 것들을 일찍(?) 깨달은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열심히 하고 있으며
이제라도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내 마음에게 주의깊게 물어보며 결정한다.
겸손이나 친절은 내가 추구하는 덕목에 들며
가톨릭 신자로서 고해성사하기 귀찮아서라도 나쁜 짓은 덜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꿈을 꾸고 있으며, 이루려고 노력 중이기도 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전보다 조금씩 더 터득해 가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만나고 싶은 사람... 기억에 남는 연애... ^^
고향... 내 고향이라면 대치동인데 아주 가끔 찾아가지. 그 삭막한 동네도 고향이라고 가면 기분이 좋다.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있으며
결혼은 할 것이고 ^^ 자식도 낳을 것이고... ^^ 혼인여부야 내 알 바 아니겠고 -_-;;
유산이나 장례식에 대해... 미리 생각해 두어야겠군 ^^
삶과 죽음의 의미나 건강의 소중함에 대해서는 열여덟 살 때부터 천착했고
담배는 열여덟에 -_-;; 끊었고...

하여튼 그렇다.
참 감사하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준
내 주변의 죽은 사람들에게 감사해요...
나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 주어서...
물론 내 허락 없이 죽은 사람들은 참 밉기도 하지만
죽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기도 하지만
일어난 일에 대해 투덜대고 가슴을 친들 무엇하리...
거기서 또 감사할 것들을 찾아낸다면 인생은 남는 장사인 걸.

아, 지금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홈플러스에서 봤을 땐 마지막 목록이 '神을 알았더라면'인가 뭐 그런 항목이었고
그걸 보며 나는 신앙이 있으니 참 감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yes24 에서 긁어온 이 목차에는 그게 없네...
흐음...

아무튼, 이 책 생각하면서 오늘 참 많이 감사했다.
감사합니다!!

* 어제 화요일, 대전 아카데미 극장에서 드디어 봤다.
재미있었다....

대전은 서울보다 소자본 비인기영화가 빨리 내려가버린다.
페어러브도 처음 개봉은 다섯군데쯤 했던 모양인데 개봉첫주말을 넘기지 못하고 대부분 내렸나보다.
지난주말을 연수 들어가서 보내고 나와 월요일에 검색해 보니
언제 가도 상영시작시간 직후까지-_-;; 좌석을 구할 수 있는 아카데미극장
한 군데 남아있었다.
그나마 오전시간은 없고 오후만 3회 상영.
어쨌든 봤으니 다행. ^^
(현호야, 내가 관객 수 4명 늘렸다...)

* 흠흠.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아는 사람의 연기를 스크린에서 보는 것은 굉장한 재미였다.
특히, 내가 아는 평소의 현호랑 비슷하면서 코믹한 캐릭터라서..
비중이 아주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현호가 나올 때마다 크게 웃었다.

내가 사랑하는 배우 안성기씨의 연기야 뭐 말할 것도 없었고...
극중 '엄마 뱃속에서부터 도망만 다녀서 애가 쫌 불안한' 역할 이하나도 불안하면서 예뻤고...
풍경도 예뻤고...


* 에고 도대체 사랑이 뭐래.
극중 재형(현호..)의 말: "외계인이라도 사랑하면 결혼해야죠" 근데 그 외계인이 이뻐야 한다나. ㅋ. 뭐 아무튼 예쁘든 안 예쁘든, 자기 마음에 꽂히면 외계인이라도 사랑할 수 있는 게 인간이라는 존재 맞지... 그런데 결혼? 우후... 외계인이랑 결혼이라. 글쎄. -_-;;;

사랑과 결혼은 별개라고, 결혼 따위 제도화된 가부장제에 불과하다고 투덜대고 살던 어린 시절은 이미 지났고.. 지금 나에게 남자와의 사랑은 결혼을 전제로 한다. 당장이 아니라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언젠가 결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안 보이는 남자와는 연인관계를 유지할 생각이 없다. 다행히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내 또래 30대지만, 만약에 나보다 나이가 스물몇 살 많은 '오빠'를 사랑하게 된다면... 흐.. 상상만으로도 '미친 거 아니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15살 많은 남자와 진짜 깊이 사랑하며 결혼준비를 시작했다가 결국 그 남자가 준비한 약혼반지를 받지 않음으로써 관계를 끝낸 사람을 알고 있다. 내 나이가 20대가 아닌 30대고, 남자와의 나이차이가 스물몇살이 아니라 열몇살만 돼도 그렇게 사랑이 결혼으로 연결되기는 참 두렵고 어려워진다. 하물며 여자는 20대 남자는 50대라면... 우어. 사랑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상대가 60대라도 어떤 계기가 있다면 사랑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결혼은.. 나는 못한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결혼 못할 연인관계를 시작도 유지도 할 생각이 없으므로 사랑하게 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잊거나 피하려고 들 것이다. 그러나 또한 생각해 보면, 아무리 어쩌려 해도 어째지지 않는 미친 감정이 사랑이므로 실제상황으로 닥친다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 성격과 내 마음으로 아빠 또래의 남자랑 결혼은 못할 것 같다. 남의 눈도 눈이지만, 그 남자가 몇 년 못가 젊은 나를 두고 죽을 게 뻔하다는 스트레스를 나는 결코 못 이길 거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30대라는 게 너무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


* 안성기가 목사친구랑 대화하던 장면들이 재미있었다.
마침 영화 같이 본 사람들이 다 천주교신자들이어서
특히 그 '고백성사 씬'을 두고두고 이야기하며 웃었다.
안성기씨 본인도 천주교 신자라고 알고 있는데.. ^^


* 아무튼...
이 영화... 관객이 얼마나 들었으려나?
감독은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잘 됐으면 좋겠다.
감독도.. 여기 출연했던 배우들도. ^^



내 고등학교 동창인 배우 이현호가 출연한 영화다.
주연은 안성기, 이하나.
50대 노총각이 친구 딸과 순수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란다.
음. 얼핏 그 나이차이를 듣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뜨악한 느낌이 드는데
평생 사랑 한 번 못해본 쑥맥 50대 남자의 순수하고 서툰 사랑을 예쁘게 그려냈다고 한다.
감독도 상업영화는 처음이라 하고...
아무튼 잘 됐으면 좋겠다 이 영화.

현호는 극중 안성기가 운영하는 카메라 수리점의 직원이란다.
그러니까 주연은 아니라도 쓱 스쳐지나가고 마는 역도 아닌 거다.
아는 사람을 스크린에서 본다니 기대된다. ^^

현호는 주로 연극을 하고 있고, 상업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가끔 동창 인터넷 게시판에 연극한다고 보러 오라고 했는데
그게 주로 내가 대전 살고 난 후라서
진짜 보러 간 적은 없었다. (아 미안..)

현호랑 친한 사이는 별로 아니었고... 실은 고딩 졸업하고 내내 본 적이 없다가
13년만에 지난 12월 동창 송년모임에서 봤다.
원래 고등학교 때부터도 곱고 잘 생긴 얼굴이었는데
대부분의 남자 동기 애들이 회사 다니면서 아저씨색이 짙어진 마당에
배우로 자기 관리 열심히 하고 있는 현호 얼굴은
완전 빛이 났다. 우어.

현호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바라본 안성기씨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연기 외적인 부분에서, 성품이나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나 존경스러워서
'나도 저런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단다.
그러나 연기에 대해서는 어떤 점에서 특별한 건지 처음에는 잘 모르겠더란다.
근데 찍혀나온 결과물을 보니 알겠더란다.
안성기씨의 연기는 꽉 차서 빈틈이 없더란다.
그에 반해 현호 본인은.. 찍을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빈틈이 자꾸 보여 민망하더란다.

뭐 나는 연기 같은 건 잘 모르지만...
그 이야기가 왠지 와 닿았다.
의사들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비슷한 품평을 할 거다.
어떤 의사도 환자 앞에서 대놓고 자신없는 척을 하지는 않을 것이나
진단사항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떤 치료를 권할 때, 치료 경과나 예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빈틈없이 확신과 책임감에 가득차서 환자에게 신뢰를 주는 의사와
얘를 믿어도 되나, 얘 잘 알고 덤비는 거 맞나, 환자를 불안하게 하는 의사...
꽉 찬 의사가 되려면
지식과 경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모두 갖춰야 되겠지.

아무튼 기대되는 친구의 첫 영화
현호가 개봉 첫 주에 봐 달라고 했다.
첫 주 성적이 좋지 않으면 바로 내려갈지도 모른다고.
첫주에 마침 연수 일정이 걸려있으니
월요일까지 극장에 걸려있기를 기도해야지.
아멘! ^^


7월 16일, 한비야 선생님이 대전에서 강연을 하셨다.
계룡문고에서 기획한 새 책 '그건 사랑이었네' 출간기념 독자와의 대화 행사였다.



(사진 출처: 인터넷 서점 알라딘)


한밭도서관 대강당,
행사 시작 한 시간 전부터 가서 줄을 서고,
온갖가지 식전행사까지 다 보며 기다리고
마침내 그 분이 무대 위에 올랐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고,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전해오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한비야 선생님이 입을 열었을 때 깜짝 놀랐다.
58년생, 쉰두 살 선생님의 나이가 믿기지 않도록 앳된 목소리!

강의 주제는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였다.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그것을 찾아 그것을 해라.
100% 몰두할 수 있는 것을 찾아라.
물은 99도에서는 끓지 않는다.
100도로 끓을 수 있는 것을 찾아라.

선생님이 처음 긴급구호를 시작하실 적에..
전부터 하고 싶은 일이었고 월드비전쪽에서 먼저 제안이 왔으나
자신이 단순히 호기심에 하고 싶은 것인지 정말 하고 싶은 것인지 확실치 않으셨단다.
다른 사람들의 목숨이 걸린 일인데,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어서
한 번 현장을 체험해 보고 결정하게 해 달라고 하셨단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현장으로 가셨다.
체험해 보고 진짜 이 일이라는 결론이 나면 월드비전 일을 시작하고
그게 아니라면 한 번 체험에 대한 글을 언론에 기고하고 끝내기로 하셨다고.

현장에는 '아산떼'라는 이름의 현지 의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그 나라(어느 나라인지 안 적어놨다. -_-;;)에 대통령도 이 사람에게 진료받고 싶어하지만 쉽게 만날 수 없는 유명한 의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의사가,
악수하기조차 겁나도록 끔찍한 부스럼이 난 난민들을 돌보고 있었단다.

어느 저녁, 그 의사에게 왜 여기서 돈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냐고 물으셨단다.
아산떼 曰

"내 재능과 기술을 돈 버는 데만 쓰긴 아깝잖아?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해!"

그 말이 선생님의 가슴에 불화살을 쏘았단다.
그리고 선생님은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 전문가로 일하기 시작하셨다.

음.
시간이 꽤 지났고
필기를 충실히 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강의내용을 체계적으로 전달하기는 곤란하겠고
내 가슴에 화살처럼 박힌 말들 위주로 적어봐야겠다.


*
"(너무 좋아서 그 일을) 하다가 죽어도 좋은 일을 찾는다면
그 일을 하닥 죽어도 후회가 없지 않겠는가."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말 많이 한다.
특히 나한테 편지 많이 하는 대학 3,4학년들! 여학생들 기껏해야 스물넷다섯,
남학생들 군대갔다 오고 어째도 많아야 서른!
너희들 결코 나이 많지 않다.
나도 마흔두 살까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지 몰랐다.
물론 세계여행을 다니고 할 때도 가슴이 뛰긴 했지만...
얼마 전에 월드비전에 마지막 출근을 해서 짐을 가지러 가던 날,
그 날도 나는 월드비전 건물에 들어서자 가슴이 뛰었다.
9년을 한결같이 가슴이 뛰는 일을 하다니 나느 정말 땡잡은(!) 사람이다.
그런데 나도 이것을 42살에야 발견했다!"

*
"두드려라! 열릴 때까지!"
"비야 언니는 하는 일마다 잘 되는 것 같아요" 이런 말 많이 든는다.
아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내 힘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아픈데도 아픈 것을 숨기고 현장에 갔다 오고
돌아와서 바로 입원한 적도 있다.

여러가지 제한이 있고 발목을 잡는 것이 많다고 하소연하는 편지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나라고 발목을 잡는 끈이 없었겠는가?
여러분이 가진 끈, 그거 나도 다 있다.
그런데 그 끈이 정말로 못 끊을 건가?
그거는 해 봐야 한다!

흔들리고 비틀거려야 성장한다.
나라고 왜 힘들 때가 없고 나라고 왜 그만두고 싶을 때가 없었겠는가?

*
질문: 두 딸을 둔 40대 엄마다. 나는 아직도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찾아야 하나?
답변: 하여간 열심히 찾아보시라. 무엇을 할 때 내가 기분이 좋았는가, 언제 마지막으로 가슴이 뛰었는가, 생각해 보시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질문: 우리 딸이 선생님하고 비슷한 점이 있다. 말이 빠른 것하고 성격이 바르르 하는 것이다. 나는 그 바르르 하는 성격을 단점이라 생각해서 고치기를 바랐었는데 선생님 자신의 바르르 하는 성격을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답변:
1. 말이 빠른 것. 말이 빨라도 발음만 정확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아침마다 시 두 편을 정확한 발음으로 낭독하는 연습을 한다. 말이 빠르면 흔히 ㄹ이나 ㄴ 발음 등이 새곤 하는데, 그것만 잘 고치면 말 빨리 하는 것 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해진 시간에 말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은 점도 많다. 말 빨리하는 자녀 두신 분들, 너무 걱정하지 마시기 바란다.

2. 바르르 하는 성격은 나도 좀 고쳐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 앞에서 누가 바르르 하면 참 꼴보기 싫기 때문이다. 내가 바르르 화내면 남들도 나 보고 그렇게 생각할 거 아닌가. 하지만 고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바르르 하는 것이 꼭 나쁜 쪽으로만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가 커서 나중에 약자를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바르르 하면서 좋은 쪽으로 자기 성격을 발휘한다면, 꼭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질문: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쓰셨어요?
답변: 일기쓰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됐다. 이번 책은 심지어 일기에서 조금만 손 봐서 책에 실은 부분도 있다.

-------------------------------------------------------
인터넷 서점 yes24에서 16일 저녁 광주 조선대에서 하는 강연의 입장권을 주는 이벤트를 했다. 그래서 신청하고 기차타고 광주 갈 결심을 했는데, 다음날 한살림 대전 운영자가 개인적인 관심에서 대전 강연에 관한 안내메일을 조합원들에게 발송했다. 나는 한살림 회원이 아니지만 엄마가 한살림 회원이시고 엄마가 인터넷을 거의 사용 안 하시므로 내 메일주소를 엄마 이름으로 등록해 놓았기 때문에 강연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이런 횡재가!!

강연 첫머리에서 선생님이 '대전에 올 예정이 없었는데, 게룡문고 기획자가 하도 끈질기게 부탁해서 누군가 얼굴 보러 왔다. 아마 저 분은 다음 달엔 이순신 장군을 초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분 축복 받으시라~! ^^

강연 끝나자마자 잽싸게 튀어나와 한비야 선생님이 도서관 마당에서 차에 오르시는 데 차 속으로 손을 쑥 밀어넣으며 "선생님 악수 한 번만 해 주세요!" 했더니 내 손을 잡아주셨다. 아 기분좋아 *.*

현장생활 9년을 하고 나니 이론 공부를 할 필요성을 느껴서
월드비전을 6월말로 그만두셨고 8월 10일 출국하셔서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밟으신단다.
그 이후에 무엇을 할지는 정해놓지는 않으셨고
다만 50대를 긴급구호 관련 일을 하면서 보낼 것만은 확실하시다고.

내가 한의학을 선택했을 때 고려했던 중요한 기준 하나는
난민촌에 갈 때 도움이 되는 직업인가, 였다.
홍보회사에서 일하셨던 경력으로부터 시작하여 구호단체로 가신 한비야 선생님 보며
나도 광고회사에서 꾹 참고 경력 쌓아 구호단체 가 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또 죽지 않고 하루가 시작했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워 눈물이 나던 생활인데
홍보인력을 신입으로 뽑아 훈련시킬 여력이 없는 구호단체에 가기 위해 그 생활을 5년씩 견디다간
그 전에 죽지, 싶어서 포기했다.

말하자면, 한비야 선생님은 내 영웅이고 내 롤 모델이시다.
선생님의 50대가 곧 나의 30대이니
30대를 열심히 살아 나가면 30대의 어느 날 그 분과 한 곳에서 일할 기회도 얻어지지 않을까.
일단 그 분이 석사 따시는 2년동안
나는 한의사 면허 따는 과정을 충실히 밟아야지.

16일은 내 생일 다음날이었는데
생애 최대의 생일 선물이었다. ^^

언어는 도구이다.
유창하게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언어 자체를 알기도 해야 하지만,
언어에 담을 컨텐츠들을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말하자면, 평범한 세 살짜리가 영어를 완벽하고 유창하게 구사한다고 해 봤자,
평범하게 학교 교과서만 충실히 공부한 고등학생보다
구사하는 영어의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다. 당연하다.
세 살짜리가 알고 있는 지식들과 이해하고 있는 개념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세 살 짜리가 글을 읽는다고 해도 얼마나 긴 글을 읽고 얼마나 깊이 이해하겠는가.
발음이야 좋겠지. 영어로 오는 자극에 영어로 반응하는 속도도 빠르겠고.
하지만 그래서 뭐?
그 세 살짜리가 영어로 할 수 있는 일과 고등학생이 영어로 할 수 있는 일은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그러니 멀쩡한 한국 애들을 두서너 살부터 잡아 족쳐가며 영어를 가르치는 건
뻘짓 중의 뻘짓이다.
그렇게 하면 아이는
나이와 함께 수직적으로 지식과 개념의 성장을 하지 못한 채
수평적으로 두서너 살의 수준에 불과한 영어와 한국어를 넘나들 뿐이다.
게다가 그렇게 잡아족치느라고 아이 마음속에 자리잡힌 상처는
아이의 정서와 사고력의 성장을 방해해
아이를 더욱 더 두서너 살 수준에 묶어둘 것이다.

예전에 강남에 살 적에 어떤 꼬마애를 봤는데
한 다섯 살 됐으려나.
엄마가 그렇게 두세 살부터 족쳐서 영어만 가르친 애였다.
엄마가 생식원 원장이랑 상담하고 있는 동안 이 꼬맹이는
생식원에 딸린 운동하는 방에서 팔다리를 버둥거리면서 울었다.
"마미~ 아냐~ 아냐~ 아냐~'하며 울었다.
"Mommy~ No~ No~ No~"가 하고 싶은 말이었겠지. 아니면
"엄마~ 싫어 싫어 싫어~"거나.
그러더니 물건을 마구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거기서 하는 운동은 마룻바닥에 누워서 하는 거다.
물건을 집어던지면 누워있는 다른 사람들이 위험하다.
(안 그래도 물건 집어던지는 건 여러 모로 위험하고 안 좋은 짓이지만)
녀석이 집어던진 물건이 울엄마를 덮칠 뻔했을 때 참다 못해 내가 소리를 버럭 질렀더니
그제야 기가 죽어서 제 엄마에게 가더구만.
생긴 건 아주 귀엽고 똘방하게 생긴 애였다.
옆방에서 제 아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던 - 알려하지 않 그 애 엄마가
아들에 대해서, 뭘 놓치고 있는지, 굳이 내가 해설 달지는 않겠다.

공지영의 새 에세이집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를 읽었다.
나는 요즘 공지영에게 아주 푹 빠졌다. 그의 책들이 다 너무 좋다.
어쩌다 남의 미니홈피 등에서 발견하는 그의 강연 내용도 너무너무 좋다.
이번 에세이집도 역시 좋았다.
그가 '가며운 얘기만 쓰겠다'고 선언하고 신문에 연재했던 에세이란다.
여러 글이 다 좋았지만 유독 눈길을 잡아끌었던 글의 제목은 '나는 아직도 철없는 엄마일까'이다.
세 아이의 엄마인 그녀가 사교육과 특히 영어교육 열풍에 대해 쓴 이야기.

그녀는 둘째 아이를 데리고 독일에 1년간 체류할 때, 둘째를
독일학교가 아닌 영어를 쓰는 외국인 학교에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애를 데리고 가서 교장에게 한국 아이가 있는 반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단다.
아이는 여기에 영어공부하러 온 것도 아니고 원해서 온 것도 아니고
그냥 부모를 따라왔을 뿐이므로
아이가 여기서 스트레스 안 받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그래서 아이에게 한국 친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그러니까 그녀가 아이를 외국인 학교에 넣은 건,
흔히 요즘 부모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독일어 배워 뭐하냐 기회될 때 영어학교 가서 영어 배워라'가 아니라
독일 학교 가면 한국 애가 없을 것 같으니까
한국애를 만날 수 있는 학교로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 학년에 하나 있는 다른 한국애의 부모가 반대하여 무산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 둘째 아이는 외국인 학교를 1년 다니고 귀국한 후로도 영어를 잘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뭐? 라고 그녀는 반문한다.
그래서 뭐.
그녀의 아들은 내가 봤던 강남 아줌마 아들보다 훨씬 건전하고,
훨씬 수준높은 사고력을 가지고 있을 건데.
그런 그녀가 어떻게 철없는 엄마겠는가. 철이 없는 건 압구정동 그 아줌마겠지.

그 글 전체에 걸쳐 아이들 교육에 대한 더 폭넓은 생각들이 들어있고,
모두 내가 열광할 만한 생각들이지만,
영어가 하도 문제시 되는 시대인지라,
게다가 내가 이 글의 제목을 '영어' 넣어서 붙여놓은지라
영어에 대해 쓴 부분 일부만 인용.


독일에 있을 때 아이를 학ㄱ교로 보내고 집에서 텔레비전을 틀면 온통 내가 모르는 독일어 방송이었다. 그래도 10년동안 배운 언어라고 가끔 영국 방송인 BBC를 보곤 했는데 그 때 <세계 석학들과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인도, 프랑스, 중국 혹은 스웨덴, 스페인 등등의 석학이란 사람들이 나왔다. 놀라웠던 것은 그 석학들이 인터뷰하는 영어는 놀랍게도 '발음이 아주 후지다'는 것이었다. 나라에 따라 [r]이, 혹은 [th]나 [f] 혹은 [v]가 그랬다.

하지만 영어발음이 '좋은' 사회자는 그들의 말을 경청했고,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이의 소통과 권위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영어가 그리 유창하지 않아 더듬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사회자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문제는 영어도, 영어 발음도 아니고 그들이 이룬 성취에 있었다. 나는 그 장면들을 가슴에 새겼다. 유학생들의 말도 떠올랐다.

"처음에 와서 그 사람들이 내 말을 못 알아들을 때마다 내 발음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몇 번씩이나 다시 말하고, 말하고 했어요. 삼 년쯤 지나면 알게 돼요. 발음은 거기서 거기고 내 얼굴은 누가 봐도 외국인이니 문제는 그들이 내 말을 알아듣고 싶은지 아닌지에 있다고 말이지요. 유학 와서 오히려 느끼는데, 우리말 실력이 달려요. 논문 쓸 때 내가 정말 독일어가 아니라 우리말을 못하는 걸 절감해요."

외국 여행을 나가보면 알 것이다. 우리에게 돈을 받아내는 사람들이 우리의 언어에 얼마나 겸손한지를. 또 외국에 나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우리의 언어를 경멸하고 조롱하려고 들면 그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의 언어를 가지고 우리를 바보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지 말이다.

내 친구의 이모는 하와이에 20년째 살고 계시는 예숫다섯 할머니인데 지금도 하와이의 어떤 레스토랑에 가도 손가락으로 자기가 앉고 싶은 자리를 가리키며 당당하게 말한다고 한다.

"저기, 창가에 제일 좋은 자리를 내게 줘요."
(이게 다 영어가 아니라 우리말이다.)

그 이모는 옷을 잘 차려입고 아름다운 핸드백을 들고 웃는다고 했다. 그러면 그 레스토랑의 모든 웨이터들이 할머니의 손가락이 지정하는 자리를 내어준다고 했다. 그러면 이모는 자신이 아는 유일한 영어로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th]발음이 한국식은 "땡큐"말이다. 물론 아름다운 웃음과 함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202-203쪽




공지영 같은 작가가 있어서
우리 사회는 참 많은 걸 벌고 있다고 생각. ^^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알버트 슈바이처 지음, 송영택 번역, 문예출판사, 1999년

알버트 슈바이처가 지은 책이다. 그의 초기 아프리카 생활에 대한 수필인데, 무척 재미있다.

'토인'이라는 후진 느낌의 단어가 계속 등장해서 조금 불편했는데, 아프리카인들을 그토록 사랑한 그였지만 그의 시대의 언어에 지배되었을 것이라는 추측. 혹은 번역한지 꽤 된 책이어서 번역자가 엄한 단어 - 원주민이나 흑인이나 정도로 번역할 단어 - 를 토인으로 번역했을 지도..

슈바이처는 나이 스물에 생각했단다. 20대는 예술과 학문을 위해 살고 30대는 봉사하며 살겠다고. 어떻게 스무살짜리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놀랍다. 그 때 그 시대가 지금 이 시대와 달랐다고 해도 말이다.

하여튼 그래서 슈바이처는 20대를 목사겸 오르가니스트로 살았고, 바흐의 생애에 대한 책을 출간하여 그 인세로 첫 아프리카행의 경비 상당부분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건 서른이 넘어서이다. 의학 공부에 7년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니 아프리카에 간 건 거의 마흔이 다 되어서였겠다. 뭔가 삶의 희망이 생기는 듯한 대목이다. ㅋ

이 책을 읽으면서 작금의 아프리카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이해가 생겼다. 그리고 할리우드 모험영화에나 나오는 줄 알았던 몇 가지들이 실존한다는 것을 알았고.. (예를 들어서 순식간에 덩치 큰 포유류도 뼈만 남기고 뜯어먹어버리는 열대의 개미라든가....)

아프리카나, 의료봉사나 하는 주제들보다도, 지금 이 자리에서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예컨대 이것.

아프리카는 아직 국경 단위의 정착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가 식민지가 되었다. 슈바이처의 글에 의하면 그 곳의 기후와 자연환경 속에서 '작물'이랄 만한 것이 제대로 자랄 수도 없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자라버리고 해는 너무 뜨거우므로. 물론 아프리카 원주민들도 경작이나 뭔가 키우는 일을 하기야 했다. 그러나 그 종류나 성격은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하는 것과는 달랐던 것 같다. 단적으로 감자나 밀 같은 건 물론 쌀도 키울 수가 없는 환경이란다. 그러다 보니 우유가 주식인 부족도 있고 바나나가 주식인 부족도 있고 그랬겠지. 유럽이나 아시아 같은 개념의 경작생활이 불가능했으니 유럽이나 아시아 같은 개념의 문명과 사회와 국가가 발전하는 것도 불가능했겠지.

그들은 자연에서 필요한 것들을 얻으며 작은 단위의 사회로 무리지어 살았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땅을 '식민지'로 삼고, 그들의 노동력을 싼 값에 부려먹으려 작정한 백인들이 몰려왔다. 돈을 주고 일을 시키려니, 어헛, 그들은 돈 개념도 없고 돈이 필요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니 백인들이 원하는 대로 노동을 할 리가 있나. 그래서 백인들은 이런 궁리를 했다는 것이다.


p152
그들의 필요를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만들어주자. 그러면 그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일을 할 것이다. 라고 국가와 상인이 같이 말하고 있다. 국가는 세금이라는 형식으로 경제적인 필요를 그들에게 준다. 이곳에서는 열네 살 이상의 어른은 모두 5프랑의 인두세를 내게 되어 있는데 이것을 배로 올리자는 안도 논의되고 있다. 아내 둘과 열네 살 이상의 아이를 일곱 가진 남자는 1년에 1백 프랑을 징수당하므로 그것만큼의 노동을 제공하든가 생산물을 팔든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인은 흑인에게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필요를 만들어낸다. 천, 도구류와 같은 유용한 것, 담배, 화장품과 같은 무용한 것, 알코올 류와 같은 유해한 것 등이다. 유용한 물품만으로는 충분한 노동 능률을 달성하기에 불충분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찮은 물건이나 브랜디가 더 낫다.



그런데 이 단락은, 그 때의 식민지 상황이나, 아프리카 사람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물론 시사하는 바가 많으나, 지금의 우리 삶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들의 필요를 많이 만들어주면 그들은 일을 많이 할 것이다, 라는 말.

여러 차례 징징댄 바 있지만 내가 잠시 다녔던 회사는 무척 박봉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그것도 아껴서 규모있게 썼다면 1년동안 꽤 돈을 모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퇴사할 때 거의 무일푼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놈의 '필요'가 많았기 때문에. 첫 월급을 탔을 때 그 액수에 기가 막혔는데(회사에서 입사할 때 월급액수에 대해 뻥을 좀 쳤었다. -_-;; 어찌어찌 신입사원 대표와 인사팀장의 만남이 주선되었는데 인사팀장, 얼굴에 인상 팍 쓰고 늦게 나타나서 '미안하다' 하더란다. 할 말이 없지 뭐.) 아무튼 그 때 80년대 중반쯤 입사하신 팀장님이 그러셨다. 자기 첫 월급이 얼마였는데, 그 돈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도 남았다고. 그러셨겠지요, 80년대 중반에 '하고 싶은 거'래야 뭐가 그렇게 많았겠습니까. 친구들 데려다가 뭔가에 곁들인 쏘주 한 번 쏘시고, 옷 한 벌 사입어 주시고, 부모님 내복 한 벌씩 사다 드리고, 영화 한 편 봐 주시고, 책 몇 권 사 주시고... 뭐 그 정도? 우리처럼 휴대폰비 내고, 패밀리 레스토랑 한 번 가고, 엠피쓰리나 휴대폰 따위를 하나 장만하고, 옷 하나를 살래도 품목이 훨씬 세분화되어서 돈 나가기가 쉽고, 그러지 않았겠지. 말하자면 그 분의 첫 월급은 물가대비 내 첫 월급보다 많기도 했을 것 같지만, 그것보다 더더욱, 그 때의 그 분은 6년 전의 나보다 필요가 적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물질의 노예'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님을 깨닫게 되는 말. 우리는 지금 독립국가에 살지만 '필요'라는 추상적인 국가에 식민지배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필요'정부에 인두세를 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더더욱 '필요국'에 예속시키는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해 직업생활을 해 나간다. 뭥미.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수많은 '필요'들에 어느 정도 반응할 필요는 없지만, 잠시 흐름 옆에 내려서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p199
아프리카에서 자기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일을 가져야 한다. 우습게 들릴는지 모르겠으나, 교양이 있는 사람이 교양없는 사람보다도 원시림 속의 생활을 잘 견디어낸다. 그것은 후자가 모르는 기분전환 방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진지한 책을 읽을 때에는, 하루종일 토인들의 불신이나 동물들의 투쟁과 싸워서 몸을 소모시키는 불쌍한 자가 아니고, 다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이렇게 몇 번이고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서 재 힘을 축적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불쌍할까? 이러한 사람은 무서운 아프리카의 무미건조로 인하여 파멸하는 것이다.



교양이라는 것에 대한 참 기막힌 통찰이다. '교양있어서'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고상하고, 남들 모르는 문학과 예술과 철학을 넘나들며 유식한 말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교양이란 즐김을 통한 자기쇄신의 능력이다. 경제적으로는 참 쓸모 없는 시 한 줄, 노래 한 곡에서 비루함을 잊고 즐거움을 얻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귀찮게 문학을 배우고 음악과 미술을 배우고 체육을 배우고 대학에 가서도 이런저런 교양수업을 들은 게 다 그렇게 즐기고 자기를 쇄신할 수 있는 채널들을 넓히는 과정이었지 않겠는가.



아무튼 이 책 읽으면서 슈바이처에게 매료되었다. 그의 다른 저서들이나 그에 관한 책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

무척 두꺼운 책이라 읽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하필 목이 아파서 책 읽기도 쉽지 않은데...
나를 엄청나게 매료시키는 책이다.

가톨릭 수도자들은 정결과 순명, 청빈의 서약을 하게 된다.
로레토 수녀회 수녀로 출가하신 데레사 수녀님도 이 서약을 하셨다.
그런데 수녀님은 보통의 수녀회보다도 더 완벽한 가난, 극빈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여
인도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인도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새로운 수도회를 창립하셨고,
그 결과는 많은 세상사람들이 아는 것과 같이 되었다.

수녀님이 끝없이 기도하며 예수님과, 때로는 주위의 성직자와 수도자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가슴을 울린다.

나는 꽤나 여러번 수도자의 삶을 권유받기도 했고 스스로 생각해보기도 했으며
그 고민은 (결혼을 꿈꾸고 있는) 현재에도 진행 중인데,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묻고 있다.
하고 싶은가?
할 수 있는가?

글쎄, 결국 내가 무엇을 선택할지는
결혼식을 올리거나 수녀원에 들어가는 그 날이 되어야 알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렇다.
나는 수도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다.
나는 청빈의 서약을 할 자신이 없다.
나는 완벽하게 나를 죽이고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 자신이 없다.
나는 자발적으로 고통이나 가난을 선택할 자신이 없다.
실제로 수도자나 성직자가 된 사람들은 그러더라.
'내가 어떻게..'라는 생각에 주저하였으나 어느 순간 그게 아니라는 깨달음이 오더라고.
마더 데레사 수녀님도, 끊임없이 하느님께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찾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으나
하느님께서 '네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너를 택했다'라고 응답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확신을 얻은 순간,
수녀님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 때문에 그 일이 실패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나아가셨다는 것이다.
글쎄,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나는 어느날 수녀원에 들어가 있겠지.
그렇지 않다면 밖에서 계속 살아가겠지.
어디서 살거나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겠지.

어쨌거나, 수녀복을 입은 나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아.
수녀님들 옆에서 일을 도우며 웃고 있는 사복의 나는 잘 상상이 되지만.
난민촌이나, 난민이나 다름없는 삶을 사는 이들 곁에서 뭔가를 해보는 건 늘 꿈꾸지만
그 후에는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 또한 꿈꾼다.
공항에 마중나온 남편과 아이들, 혹은 오지의 소박한 집에 함께 살며 자기 활동을 하는 남편.



그런 좀 '먼' 이야기들 말고,
이 책을 읽으면서 얻고 있는 가장 소중한 깨달음은
한의사 됨에 관한 것이다.
책의 이야기가 진행되어
데레사 수녀님이 새로운 수녀회를 창립하여 빈민들 사이에서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더욱 강하게 확신하게 될 수록
나는 나를 한의사로 부르신 것이 하느님 뜻이라는 확신이 짙어간다.
그러니 더이상 투덜대지도 나약한 소리 하지도 말 일이다.
하느님께서 부르셨으니 하느님께서 결말지으실 터.
난 그냥 단순하게 믿고 공부하면 되는 거다.
외워지건 말건
성적이 어떻게 나오건 말건
명의가 되건 말건.
졸업을 하고, 면허가 나오면
하느님께서 알아서 쓰시겠거니.

요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아래의 성경구절이 생각났다.


예루살렘 입성  (루가복음 19장 28-35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올리브 산 중턱에 있는 벳파게와 베다니아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예수께서는 두 제자를 앞질러 보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맞은편 마을로 가라. 거기에 가보면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터이니 그 나귀를 풀어오너라. 
혹시 누가 왜 남의 나귀를 푸느냐고 묻거든 '주께서 쓰시겠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그들이 가보니 과연 모든 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였다. 
그래서 나귀를 풀었더니 나귀 주인이 나타나서 "아니, 왜 나귀를 풀어가오?" 하고 물었다. 
"주께서 쓰시겠답니다."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고 
나귀를 끌고 와서 나귀에 자기들의 겉옷을 얹고 예수를 그 위에 모셨다. 


어이 heraus나귀씨,
주님께서 쓰시겠답니다.
그러니 일단 사람을 태울 수 있는 키높이까지 여물먹고 성장 좀 하자고.
OK?

공연예술네트워크 <판>[PAN-asian performing arts network]을 후원해 주실 분들을 모집합니다.

잡지 "판"[PAN-asian performing arts ㅡmagazine]을 통해
공연예술에 관한 다양한 정보와 담론을 생산해내고,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을 통해 문화예술 교류에 힘쓰며
각종 저술과 예술가들 간의 연계를 통해
공연예술의 활성화와 발전을 도모하는 모임입니다.

그 동안 잡지 "판"의 창간과
국제 무용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땅따먹기 프로젝트'를 기획 운영하여
문화 지형의 변화를 모색해왔습니다.

이에 지속적 연대와 그 가능성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발전에 함께 동참할 분들을 모집합니다.

후원내용
----------------
모던 회원  3-10만원
포스트모던 회원 10-50만원
컨템퍼러리 회원 50-100만원
아방가르드 회원 100만원 이상

후원금 계좌번호
------------------
우리은행 1005-401-295699
예금주: 공연예술네트워크 판

후원내용은 누적되며 해마다 갱신할 수 있습니다.

후원은 개인과 법인 모두 가능합니다.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입금한 후 다음 연락처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02-799-5030 / panzine(앳)g메일.컴

후원회원(단체)에게는 잡지 "판"과 발간물을 우송해드림과 동시에 '판'에서 주관하는 모든 행사에 초대합니다.





* 여기가 heraus와 무슨 상관이기에 heraus 블로그에 후원 안내가 올라오냐면,
제가 여기서 번역을 좀 했습니다.
잡지가 3호까지 나왔는데 1호부터 3호까지 모두 제가 번역한 기사가 올라 있지요.

첫 호 번역하고, 책이 나왔을 때는 책을 받아선 책꽂이 한쪽에 꽂아두고 포장도 못 풀렀더랬죠.
활자화된 내 번역을 본다는 게 죽을 만큼 겁나더군요. 몇 달동안 못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호 번역해서 책이 온 후에는 좀 여유가 생겨서 제 번역문을 비롯해 몇몇 기사를 좀 봤습니다. 그것도 맘편이 쫙 보지는 못하고 찔끔찔끔 들춰 보는 정도였죠. 어쨌든 그렇게 보니 잡지에 어떤 기사들이 실리는지, 성격이 조금 파악이 되긴 됐지요.

2호 받아보고도 꽤 지나서야 1,2호를 모두 자세히 읽어봤습니다. 그러면서 이 잡지의 취지와, 이 잡지 및 단체의 시도들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요, 후원을 모집 중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대한민국의 척박한 감성을 바꾸는 것은, 대한민국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잡지(또는 단체) <판>이 그 중요한 일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후원하고픈 마음이 생겼고, 오늘 책을 배송받은 3호부터 내가 받은 번역료의 10퍼센트를 <판>에 도로 후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판>에 대해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혹시 후원은 좀 그렇고 정기구독을 하고자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책 한 권당 가격은 5000원이고
1년 정기구독료는 약 10퍼센트 가량 할인된 2만8천원이랍니다.
우리은행 1005-401-295699
예금주: 공연예술네트워크 판
02-799-5030 / panzine(앳)g메일.컴

흠. 인터넷 홈페이지 같은 게 있다면 주소를 올리면 좋을 것을,
그런 건 없는 모양이네요.
아쉽게도. ^^

아무튼
오늘도 감성 촉촉하고 아름다운 하루 되시길! ^^

아, 정말 말이 필요없는 흥겨운 시간이었다!!
진짜 뮤지컬이었으면 몇 번이고 소리지르고 춤추면서 봤을 걸
영화라서, 영화관이라서 힘들게 꾹꾹 참았다.
음향시설이 좋지 않은 극장에서 본 것이 못내 아쉬워
음향 빠방한 CGV에서 다시 한 번 볼 생각.
그것도 맨 앞에서 셋째줄 정도 되는 자리 노리고 있음.
푹 빠져들고 싶어~!

아바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
영화에 나온 버전도 좋았지만
원전만 못하다고 생각함.
영화가 나빴다는 뜻은 절대 아님. 다만 개인적으로 아바목소리로 불리는 원전을 선호.

예전에 아바 히트곡 모음 CD를 샀던 기억이 있는데
이사 몇 번 하는 와중에 사라진 듯하다.
아쉽.
하나 새로 살까 부다.





















제목 '맘마 미아'는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
극중 등장하는 아바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지만
"엄마나 세상에!! 맘마 미아!" 소리가 절로 나올 그 설정에도 어울리고
묘하게 딸의 이야기인 듯하지만 사실은 '울 엄마=맘마 미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적합한 제목이며
딸이 결국 아버지와 상관 없이 '엄마의 딸이라는 사실만으로 내가 누군지는 충분하며, 아빠 없이 온전히 홀로 나를 책임진 엄마를 오직 엄마가 내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결론에도 딱 들어맞는 제목이다.
흠, 이게 나름 스포일러가 되려나?
그랬다면... 그래서 누군가가 스포일드 됐다면 미안.^^
하지만 이 영화의 묘미는, 스토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조금만 미안.
^^

* 본의 아니게 -_-;; '다크나이트'를 보게 됐다. 배트맨 시리즈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 제목도 다크하더니 배트맨 시리즈 치고도 영화가 많이 다크 하더라. 두 시간 반이나 되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 자꾸 다크한 쪽으로 흘러가려는 의식을 가다듬느라 애를 써야 했다. 어둡고 무서운 영화 안 본지 꽤 됐고, 기분나빠지기 싫어서 뉴스도 일부러 안 보고 사는데, 다크한 에너지를 두 시간 반동안이나 전면적으로, 큰 화면에 크고 좋은 스피커로 흡수했으니... 사실 다크하고 무서운 영화들이 더 매력적으로 포장하고 더 사람 궁금하게 만든다. 다크나이트 시작하기 전에 '20세기 소년' 예고편이 나왔는데, 저것도 보러가야지 했다가 어젯밤에 잠들면서 맘 바꿨다.

* 배트맨은 '정의를 위해', '불의'에 맞섰다.
글쎄, 그 첫 의도는 좋은 것이었는지 모르겠으나
그의 초점은 '불의', '범죄', '악'에 있었고
거기에 '대항'하여 자신이 더 강한 물리력으로 맞섰다.
그 또한 적법한 절차와 적합한 자격을 갖추지 않고 자기 맘대로 활동했다.
그 결과 그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자신으로 인해 더큰 범죄와 혼란이 생겨나게 했으며
그 자신도 경찰의 추격대상이 되었고
White knight는 죽어도 될 수 없었다.

* 'The Secret'에 나오는 바,
인도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셨던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나는 반전운동에는 안 나갈 겁니다. 평화 집회가 열린다면 초대해 주세요."라고 하셨단다.

* 배트맨 시리즈의 배경 도시인 '고담'은
'고모라'와 '소돔'이라는 성경 속의 타락한 도시 이름을 합쳐 만들었단다.
성경(창세기)에,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는 일에 대해,
하느님과 의인 아브라함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23  아브라함이 다가서서 말씀드렸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24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안에 있는 의인 쉰 명 때문에라도 그곳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25  의인을 죄인과 함께 죽이시어 의인이나 죄인이나 똑같이 되게 하시는 것,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는 공정을 실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26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소돔 성읍 안에서 내가 의인 쉰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그곳 전체를 용서해 주겠다.”    
......
32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다시 한 번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하느님의 초점도, 아브라함의 초점도 '의인'에 있었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심판을 받고 멸망했지만,
적어도 그 곳에 사는 다섯 명도 안 되는 의인들은 화를 면했다.

악의 세력에 맞서 싸우던 '다크 나이트'의 '의인'들은?

* 흠,
어두운 것도
무서운 것도
나쁜 것도,
여러가지 방식이 있는데
'다크 나이트'는 그 등장인물들처럼 참 사악하게 어둡고 무섭고 나쁜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일종의 성공이라면 성공일 것이다.
'어둠', '나쁨', '공포'의 퀄리티가 정말 높다.
영화의 완성도도 높고
극중에서 조커가 '사회심리학적 실험을 하자'고 말하기도 했지만
시나리오 작업을 정말 심리학적으로 정교하게 했다고 느꼈다.
그래서 영화의 후폭풍도 강한 것 같고...

이렇게 어두운 에너지를, 고품질로 담은 영화는 앞으로 웬만하면 안 보고 싶다.
20세기 소년을 안 보기로 결심한 이유도 그거다.
일본 사람들 영화 잘 만든다.

그에 반해 한국 영화 치고
공포, 스릴러, 이런 거 정교하게 잘 만든 경우 잘 없다.
이리저리 스토리도 튀고, 앞뒤도 안 맞고,
'잘 나가다 삼천포'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교하게 다크하지 못하고 꼭 착한 메시지로 돌아가려 한다.
상당부분은, 체계없는 제작환경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 상당부분은, 어떤 집단적인 기질,
소위 말해 민족성이나 국민성이라고 불리는 것과 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겁이 많은 나로서는 '끝까지 다크한 것을 못 견뎌'하는 사람들의 집단에 속한다는 것이
다행하게 느껴진다.

* 이제는 마음을 버렸기에 쉽게 얘기할 수 있는데,
나는 소설가가 몹시 되고 싶었다.
소설가로 데뷔하기 위해 습작을 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도 가끔 '이런 소설 어떨까'라는 생각을 짧게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직업적인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다.
책을 쓰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한다.
그것도 아주 엄청 큰 베스트셀러를 만들 것이다.
나 자신이 사랑과 평화와 행복과 기쁨과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서
그러한 글을 쓰고 그러한 책을 써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가치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는 한 사람씩 환자를 만나 한 사람씩만 변화시킬 수 있지만
책을 잘 쓰면 한꺼번에 수억명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책은 픽션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난 내가 소설가가 안 되어도 된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소설가가 되면 나는 '지금 여기'에만 살 수는 없을 것이고 '나'로서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을 이야기이므로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내가 초점을 맞추는 부분만 쓸 수는 없을 것이고
그러면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에너지의 장을 오가면서 내 삶을 흔들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제 그런 힘든 작업을 직업적으로 해야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됐으니
정말 감사하다.
두시간 반짜리 영화 하나 보고 이리 힘이든데
몇 달씩 몇 년씩도 걸릴 수 있는 소설쓰기란...
후우.



Heraus’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com / Original WP theme by John Wrana / tattertools skin by yuno & N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