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가 준비한 만큼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 보이고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파와, 사대륙 대회 때에 있었던 몇몇 시끄러운 사태들 때문에 더 마음 졸였다.
쇼트 땐 완전 승냥이 아줌마 -_-;; 아트걸네 집에서 아트걸이랑 같이 속태우며 보다가
트리플 플립 랜딩을 보며 '아 이제 됐어!!' 하며 한숨을 내쉬었고
스텝 마지막에 살짝 삐끗했지만 연아가 여유롭게 엔딩포즈를 취하는 걸 보고선
아트걸이랑 얼싸안고 환호했다.
프리 땐 연아가 속한 4그룹 웜업이 시작했을 때부터
무릎꿇고 앉아 주모경만 계속 외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쉴 새 없이, 소리내서.
연아가 마지막 스핀을 다 돌고 엔딩포즈를 취하고 두 손을 뻗어 승리의 제스처를 취할 때까지.
울먹이며 인사하는 연아를 보면서는 '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150점대의 놀라운 점수가 뜨는 것을 보고서는 아트걸에게 전화를 걸어 기쁨을 나눴다.
연아가 준 그 감동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선수의 팬으로서 몇 년간 연아에 대해, 또 피겨에 대해 알아가면서 겪어온 마음의 여정
단순히 예쁘고 아름다운 연기 때문만이 아니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성장하고 노력의 열매를 맺어 가는 진실한 한 사람의 삶이 주는 감동
그 감동으로 인해 정확하게 띠동갑 동생인 그를 존경하게 되었고
나 자신도 아닌 그가 올바른 평가를 받기를, 그가 행복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그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 마음에 퍼지던 기쁨! 아아 감사합니다!!
* 올림픽이 끝나고,
방정맞은 국내 언론들은 별 희한한 소리들을 쏟아내는데
연아는 으레 그랬듯이 그런 것 따위 신경도 안 쓰는 대인배 포스를 발하며
월드 준비하러 토론토로 돌아갔다.
월드 때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늘 그랬듯이 연아가 자기 마음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자기 기량을 다 펼쳐보였으면 좋겠고
심판들이 그것에 합당한 평가를 내려 주면 좋겠다.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기만 한다면 연아는 당연히 금메달을 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올림픽 금도 땄는데 월드에서 금을 따지 못해도 좋다.
그저 연아가 월드까지 기분좋게 치르고 이번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연아가 한동안 선수 생활을 쉬었으면 좋겠다.
너무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피겨선수 생활
늘 절제되고 성취지향적으로만 살아온 생활
이제 한동안은 좀 접고 편하고 밝게, 나이답게 살아 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쉬고 놀아보다가
아무래도 피겨선수생활이 못내 그리우면 그 때 돌아와도 좋겠지.
하지만 적어도 얼마간은, 한 시즌만이라도, 좀 쉬었으면 한다.
더불어 승냥이질에도 좀 휴식기를 가졌으면 한다. -_-;;;
맨날 대회 때마다 연아를 방해하는 세력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혹시라도 무슨 일 날까 봐, 혹시라도 이상한 판정이 날까 봐
마음 졸이고 핏대 세우는 거, 피곤하다. -_-;;;
연아가 한 시즌이라도 선수생활을 쉰다면
승냥이질도 한 시즌이라도 쉴 수 있다... -_-;;
승냥이질이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자랑스런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터, 타는 족족 금메달 김연아" 정도의 인식에 머무르는 사람은
뭘 해도 1등인데 왜 은퇴설이 나도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래 연아가 몇 년 더 선수생활을 한다면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은 몇 년 더 메달을 확보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라고 연아에게 선수생활을 연장하라고 강요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나도 연아가 올림픽 금을 따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건 한국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한국이 이기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연아가 13년동안 자기의 온 생을 희생하며 준비해온 꿈이 이루어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 꿈을 이루었으니
이후의 일은 연아가 연아맘대로 연아에게 가장 행복한 방향으로 선택하기를 바란다.
특히 평범한 사람인 나는
연아 스스로 그렇게 바라 마지않는 '평범한 행복'들을
연아가 단 몇 달만이라도 누려보면 좋겠다 생각한다.
*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나는 옆나라 띠동갑 피겨선수도 잠시 피겨를 접고 딴 걸 해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승냥질을 깊게 하다 보면 이 선수를 좋아하기는 어렵다.
기술 보는 눈이 늘고 피겨에 관한 지식이 정확해질 수록
이 선수가 터무니없이 고평가 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다른 선수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할 상을 자기가 가져가는 적도 한두 번이 아니며
그 피해자는 주로 내가 좋아하는 선수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터뷰를 통해 나타나는 선수로서의 마인드도... 좀 후지다.
그래서 한국에서 이 선수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은 대략 세 부류인 듯하다.
피겨팬이 된지 얼마 안 돼서 기술 보는 눈이 없고 승냥이들이 이 선수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오로지 편견과 반일감정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들, 남들이 좋아하는 사람에 안티를 선엄함으로써 존재감을 느끼는 사람들, 자기는 친일파라는 것을 내세움으로써 존재감을 느끼는 사람들.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건 큰 부류를 형성하는 사람들은 이런 듯하다는 것이다.
나도 이 선수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선수가 '아깝다'는 생각은 한다.
그도 젊고 예쁜 사람이며 어린 시절부터 자기 꿈을 향해 쉼 없이 달려온 선수다.
그리고 상당히 뛰어난 스케이터이기도 하다.
이 선수 어릴 적의 동영상들을 보면 참 예쁘고, 그 나름의 감동도 선사해 준다.
이 선수도 자신을 잘 갈고 닦는다면 훨씬 아름다운 스케이팅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니 나는 이 선수도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많이 좀 성장해 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선수에게 필요한 성장은
본인을 위해 지어진 전용 연습링크 안에서 늙은 러시아인 코치랑 붙어 있는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선수가 한동안 스케이팅을 접고 다른 일을 해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서, 어릴 때부터 이름난 선수가 갖는 프리미엄 같은 것 없이 쌩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워가는 경험도 다시 해 보고, 남자랑(혹 자기 성적 취향이 아니라면 여자랑) 연애도 제대로 해 보면서 감정의 폭풍도 경험해 보고, 대학 공부도 열심히 해서 여러가지 교양과 지식을 쌓고... 그런 시간을 가져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서 링크로 돌아와 주면 좋겠다.
지난 그랑프리 1차 프랑스 대회 때 점프를 말아먹은 그에게 2차 러시아 대회 때는 코치가 '저스트 두 잇!'이라고 윽박질렀다나... 그러나 '저스트 두 잇'은 그렇게 윽박지를 때 써먹을 적절한 말은 아니다. 그가 말아먹은 그 점프를 가다듬으려면 되건 안 되건 그저 달음박질쳐 가서 뛸 일이 아니라 체중을 조절하고, 근력을 키우고, 스피드를 높이고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한 일년이라도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것을 배우고 나면 그녀도 그런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에 대한 고려 없이 '저스트 두 잇'이라고 윽박지르고 '이번 시즌의 주제는 극복'이라면서 자신을 문제덩이 취급하는 코치랑은 미련없이 결별할 줄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에 빠져 하늘도 날아보고 심연을 더듬으며 울어보기도 하고 나면 그녀도 표정연기란 걸 할 줄 알게 될 것이다. 음악도 조금 느낄 수 있게 되겠지. 자신의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을 선택하고 그 음악에 몰입하여 안무를 소화해낼 줄도 조금은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가 진정 아름다워졌으면 좋겠고, 아름다운 스케이팅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게 되면 좋겠다. 아름다운 것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지 않겠는가!
물론 이런 한가한 구상을 맘놓고 할 수 있는 건
연아가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기에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인 것도 사실이다.
그 전엔 이 선수도 정신차리고 고유의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혹시 이 선수가 그러다 진짜로 발전해 버리면 우리 연아의 메달을 뺏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맘놓고 축원해줄 수가 없었다. >.<
* 연아 후의 한국 피겨는...
재능있는 선수들이 많이 성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당장 한두 시즌만에 연아급의 선수가 나올지는... 모르겠다.
사실 연아가 은퇴한다면 나는 피겨에 대한 관심수위를 많이 줄이고 싶다.
왜냐하면..
피곤하니까. -_-;;;
내 일로 신경쓸 시간도 모자란데.
어쨌든
연아처럼, 금메달을 당연히 가져가야 할 실력인데
자꾸 외부요소들 때문에 부당하게 저평가 당는 선수를 보면서
마음 졸이고 분노하고
그럴 일은 더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그대신 세계적으로도 웬만큼 인정받는 선수들의 층이 두텁게 생겨서
그냥 맘편히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성장을 축하하고
그냥 그렇게 가끔 경기 동영상을 즐기며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나는 골수 승냥이는 절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