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aus kommt heraus


 

* 아래는 김예슬양의 대자보 전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그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과 좌절감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 그 20대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길은 이것밖에 없다는 마지막 남은 믿음으로.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더 거세게 나를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지금 나는 멈춰 서서 이 경주 트랙을 바라보고 있다.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업'이라는 두 번째 관문을 통과시켜 줄 자격증 꾸러미가 보인다.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우월하고 또 다른 너의 자격증 앞에 나의 자격증이 무력하고, 그리하여 새로운 자격증을 향한 경쟁 질주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달리고 있는 곳이 끝이 없는 트랙임을. 앞서 간다 해도 영원히 초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트랙임을.


이제 나의 적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기업은 더 비싼 가격표를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 위쪽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온갖 새로운 자격증을 요구한다.


이 변화 빠른 시대에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는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전문과정에 돌입한다. 고비용 저수익의 악순환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 '세계를 무대로 너의 능력만큼 자유하리라'는 세계화, 민주화, 개인화의 넘치는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졸업장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격증도 없는 인생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학습된 두려움과 불안은 다시 우리를 그 앞에 무릎 꿇린다.생각할 틈도, 돌아볼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또 다른 거짓 희망이 날아든다. 교육이 문제다, 대학이 문제다라고 말하는 생각 있는 이들조차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성공해서 세상을 바꾸는 '룰러'가 되어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나는 너를 응원한다”, “너희의 권리를 주장해. 짱돌이라도 들고 나서!”그리고 칼날처럼 덧붙여지는 한 줄,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아니, 이런 건 잊은 지 오래여도 좋다. 그런데 이 모두를 포기하고 바쳐 돌아온 결과는 정말 무엇이었는가. 우리들 20대는 끝없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오지 않는 '적자세대'가 되어 부모 앞에 죄송하다.

젊은 놈이 제 손으로 자기 밥을 벌지 못해 무력하다.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 이대로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나는 대학과 기업과 국가, 그리고 대학에서 답을 찾으라는 그들의 큰 탓을 묻는다.깊은 분노로.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유지자가 되었던 내 작은 탓을 묻는다. 깊은 슬픔으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이 시대에 가장 위악한 것 중에 하나가 졸업장 인생인 나, 나 자신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



학비 마련을 위해 고된 노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눈 앞을 가린다.'죄송합니다, 이 때를 잃어버리면 평생 나를 찾지 못하고 살 것만 같습니다.'많은 말들을 눈물로 삼키며 봄이 오는 하늘을 향해 깊고 크게 숨을 쉰다.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10년 3월 10일 김예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며



* 아래는 김명곤 선생님 블로그의 김예슬양 관련 글에 내가 단 댓글.


김예슬씨, 학교를 그만두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정말 궁금합니다.


걱정이 조금 되기도 합니다. '소속'이 있고, '울타리'가 있고,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던 생활을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본인이 원하는 큰 가르침을 찾아 거친 광야에 홀로 선 20대 초반 여성이 마주할 어려움이란 본인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클지도 모르니까요. 하루이틀 생각하고 욱해서 내린 결정은 전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떨 때는 '내가 미쳤지. 그 때 내가 그만두는 게 아니었는데, 적어도 대자보는 쓰는 게 아니었는데...' 하면서 자기 가슴을 치는 날도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학부를 때려친 건 아니지만, 대학원은 때려쳤고, 시간이 지나고서 가슴을 쳤던 날도 있었습니다. 또 시간이 흐른 지금은 잘 그만뒀다고 생각하고, 가슴을 쳤던 그날조차도 대학원이 좋아서 가슴을 친 것은 아니었지만요...)


저는 아직 자식도 없고 미혼이지만 '제 자식이라면...'이라는 상상을 해 봅니다.


저는 명문대 나오고서 하나도 행복하지 않으면서 20대를 좌충우돌로 소모해 버렸습니다. 김예슬양의 글처럼, '꿈이 뭔지 발견하는 꿈'을 꾸는 기간이 길었습니다. 게다가 대학 선배이면서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 성공한 분들도 많이 보았고요. 그래서 저는 자식 낳으면 자기가 누군지, 세상이 어떤 곳인지, 자기가 뭘 해야 행복한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런 걸 아는 데 치중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 명문대건 좋은 직업이건 모두 그걸 알고난 후에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거든요. 또한 그런 것들이 선행이 된다면 명문대 안 가고 '좋은 직업' 안 가져도 스스로 행복할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요.


그러니 제 자식이 저 대자보 내용 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100퍼센트 이해하고 공감해줄 자신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입학한 대학을 중간에 그만둔다고 하면 말릴 것 같기는 합니다. 좌충우돌하는 20대 내내 때려치고 또 때려치기만 하다가, 어쨌든 한 번 시작한 것은 끝까지 마무리를 짓는 것또한 삶의 주요한 덕목이며 훈련이 필요한 항목이라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끊임없이 눈먼 트랙 위에서 저런 통찰을 해내고 용기있는 선택을 한 김예슬씨의 앞날이 행복하기를 축원합니다.


* 글쎄,

말하자면 그녀는 명백한 '오답'을 선택한 거다.

하지만 인생에 정답이란 게 있을까?

늘 정답이 아닐까 봐 전전긍긍하며 내 선택을 스스로 억압하던 시절

나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는 걸.

그렇게 선택한 정답이란 과연 정답이었을까?


그녀가 이겼으면 좋겠다.

이긴다는 말이 그녀가 좋아할 표현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그녀가 이겼으면 좋겠다.

고대 경영학과를 3학년에 자퇴하는 그 명백한 '오답'이

그녀 생의 정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 사범대 나와서 임고 '원패스' 하는 것, 대학 졸업하고 9급이나 7급 공무원 되는 것 따위가 '꿈'이라는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그녀는 어떻게 그렇게 똑똑해질 수 있었을까? 감탄스럽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식이 대학을 중퇴하겠다고 하면 분명히 말릴 거다. 이유는 위에 쓴 대로다. 하지만 목숨 걸고 말릴 것은 아니다. 그것도 결국 지 인생인 걸 뭐.


* 대부분의 애기엄마들은 내가 이런 투로 - 지 인생인데 뭐, 라든가, 학교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 라든가... - 이야기하는 걸 보면 내가 처녀고 애가 없어서 그런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일정부분 동의한다. 나는 아직 '자식'이란 게 어떤 존재고 자식이 있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니까 진짜 아이엄마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쉽게 ‘자식’에 관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이가 생긴 다음에도 나의 이런 생각들이 별로 크게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혜로 나의 태에 깃들게 될 아이는 자생력 있는 아기였으면 좋겠다. 눈먼 질주에 파묻히지 않고 자기를 지켜갈 수 있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pol&arcid=0003497678&code=41111111

[쿠키 정치] 청와대가 법정 스님의 저서를 엉터리로 발표하면서 빈축을 사고 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지난 11일 법정 스님의 입적과 관련 논평에서 “대통령께서는 그동안 법정 스님 저서를 항상 가까이에 두시고, 또 항상 추천도서 1호로 꼽으셨다”고 밝혔다.

수석실은 이어 “(대통령은) 스님의 저서 중 ‘무소유’같은 경우는 여러 번 읽으셨고, ‘조화로운 삶’에 대해서는 2007년 말에 추천하신 사유를 찾아보니, “산중에 생활하면서 느끼는 소소한 감성과 깊은 사색을 편안한 언어로 쓰셔서 쉽게 읽히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고 되어 있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법정 스님이 쓴 ‘조화로운 삶’이란 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화로운 삶’은 법정 스님의 저서가 아닌 이를 출판한 출판사 이름이다. 청와대 말을 액면 그대로 옮기면 결국 이 대통령은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출판사를 읽은 셈이 됐다. 실제로는 이 대통령은 2007년 ‘조화로운 삶’에서 발간한 법정 스님의 저서인 ‘맑고 향기롭게’를 인터넷서점 예스24에 추천 도서목록으로 제출했다.

이를 두고 인터넷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책 말고 출판사를 읽었나’, ‘홍보를 하려면 제대로 하라’ 등의 반응과 ‘일일이 책명을 다 기억해야 하나’, ‘우연한 실수일 뿐’ 등의 의견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 출판사를 읽었다는 사실도 경이롭지만 -_-;;
홍보수석실의 말투는
어버이 수령님을 홍보하는 조선중앙텔레비죤 같아.
헐.

한명숙 전 총리의 승리를 위해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과 현정권, 한나라당의 회개를 위해
기도합니다.
아멘.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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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양심을 돈과 바꾸지 않았다”
 
[129호] 2010년 03월 09일 (화) 10:14:07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때 아닌 흰 백합이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법원 들머리에 피었다. 8일 오후 1시, 흰 백합을 든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이날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 수수 의혹 공판이 처음으로 열렸다.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전 장관 등 한 전 총리 지지자들은 모두 결백을 주장하는 의미로 백합 한송이씩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진실을알리는시민(진알시) 등 일부 시민단체 회원들은 김용철 변호사가 최근에 펴낸 ‘삼성을 생각한다’를 패러디한 ‘삼성을 조케 생각한다’는 피켓을 들고 ‘떡검’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유 전 장관은 “어제 새벽 3시에 잠들었다. 내가 잠을 설칠 정도인데 한 전 총리는 오죽하시겠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한 전 총리는 꼭 지키겠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안희태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전 장관 등 한명숙 전 총리 지지자들은 결백을 의미하는 백합을 들고 한 전 총리와 동행했다.
오후 1시42분, 서울지법에 도착한 한 전 총리는 “내가 살아온 인생을 걸고 법정에서 모든 진실을 밝히겠다”라고 말하고 곧바로 재판정으로 올라갔다. 이날 재판정에서는 검찰과 변호인이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았다. 먼저 한 전 총리는 A4 네 쪽 분량 모두 발언을 통해 “5만 달러 뇌물을 받지 않았다”라고 검찰의 공소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민주화 운동 이후) 두 번째로 재판정에 선다”라고 입을 뗀 한 전 총리는 “이번 사건은 민주계, 여성계의 상징적인 인물에 대한 악의적 날조다. 처음에 곽영욱씨의 진술을 듣고 경악했으나 검찰에서 그를 만났을 때, 곽씨가 검찰의 포로가 되었음을 알았다. 한명숙 표적수사에 모진 고초를 겪은 걸 보니 인간적으로 동정심이 일었다”라고 말했다. 
백승헌 변호사 등 변호인단은 “뇌물은 주로 은밀한 곳에서 주고받는데,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은 총리 공관에서 줬다고 한다. 의전이 엄격한 총리공관실에서 5만 달러를 줬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라며 검찰의 공소사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에 검찰은 표적 수사라는 주장부터 맞받아쳤다. 검찰은 “곽 전 사장의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막내 검사에게 사건을 배당했는데 우연히 한 전 총리에 대한 진술이 나왔다. 표적수사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날 사건을 지휘한 권오성 서울지검 특수2부장이 직접 재판정에 나왔다. 검찰은 또 “한 전 총리가 수십 차례 출국했는데 달러를 구입한 흔적이 전혀 없고, 곽 전 사장에게서 받은 돈을 여행경비 등으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라며 한 전 총리쪽에 여행 경비 입증 자료를 요청했다. 변호인단은 “입증은 검찰 몫”이라며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시사IN 안희태
시민단체 회원들이 '삼성을 조케 생각한다'라는 '떡검'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변호인단은 곽영욱 전 사장의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를 덮어주는 대신 한 전 총리의 허위 진술을 유도한 이른바 빅딜 의혹과 관련해 내사기록과 검찰 조사과정을 담은 영상물 등의 열람 및 등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검찰은 내사 기록은 비공개가 원칙이라며 반대했다. 이날 곽영욱 전 사장은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쪽 팔에는 링거액을 꽂고 휠체어를 탄 채 별 말없이 양쪽의 공방을 지켜보았다.

재판부는 오는 11일 곽 전 사장 심문, 22일 총리공관 현장 검증, 26일 정세균 민주당 대표 증인 심문, 29일 한 전 총리 심문 등 일주일에 세 번씩 공판을 진행하는 집중심리를 거친 뒤 4월9일 선고를 하기로 했다. 한 전 총리 쪽이 재판부에 빠른 심리를 요청했고, 재판부 역시 “선거와 관련된 사건은 되도록 빨리 끝내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집중심리를 열기로 했다. 4월9일 1심 선고가 내려진 뒤 나흘 뒤인 4월13일~14일이 서울시장 후보 등록기간이다. 사실상 후보등록을 코앞에 두고 이뤄지는 1심 선고 결과가 한 전 총리의 서울시장 출마나 당선가도에 주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2시간 가량 진행된 재판이 끝나고 한 전 총리는 재판정에서 내려와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가장 먼저 다가온 한 전 총리의 남편 박성준 교수(성공회대)는 악수를 건네며 “수고했다”라고 했다. 재판을 마친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 전 총리는 “모두발언 때 다 말했다”라고만 한 뒤 자리를 떴다.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김상희 의원은 “검찰은 곽씨 진술 말고는 새로운 내용을 아무것도 말 못했다. 이번 재판을 통해서 한 전 총리의 결백이 더욱 확실해졌다”라고 말했다. 열띤 취재 경쟁으로 지지자와 카메라 기자 간에 충돌이 일기도 했다. 
한편, 한 전 총리는 지난 5일 주소지를 경기도 고양에서 서울 마포구로 옮기고 서울시장 출마 준비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한 전 총리 캠프 쪽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재판이 가장 중요하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아니라고 주장해야하는 상황이 웃음이 나오긴 하지만, 4월까지는 일단 재판에 집중하겠다"라고 말했다.  

한명숙 전 총리 모두진술


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오늘 생애 두 번째로 법정에 섰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1년 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투옥되어 생사를 넘나드는 고문을 당하고 법정에 섰던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때는 독재권력 앞에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상황이 무섭고 두려웠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서민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신명나게 일하다 잡혀왔기에 수의를 입은 제 자신이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법정에 선 저는 한없이 서글프고 착잡한 심정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시련에 부딪혔습니다. 독재의 시절에서 목숨을 걱정하기도 했고, 때로는 지독한 가난도 겪었습니다. 그 때마다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한 번도 타협하거나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시련을 통해 저는 끊임없이 단련되었습니다. 숱한 시련들 속에서 절망하지 않고,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다만 주어진 삶을 진실 되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세월이 지금의 한명숙을 만들었다고 자부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맞닥뜨린 시련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검찰 기소에 의해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뒤집어 쓴, 전 국무총리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부패와 비리, 제 인생에는 결코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했던 말이,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 제게 일어난 것입니다. 이전처럼 저의 신념과 행동의 올바름을 주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뇌물수수’라는 모두가 경멸해 마지 않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법정에서 싸워야 하는 구차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지난해 12월 노무현 재단 사무실에서 검찰에 출석하는 한명숙 전 총리
그러나 감히 말씀드리건대, 저는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삶과 양심을 돈과 바꿀 만큼 세상을 허투루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가난해도 항상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한때나마 제가 가졌던 지위를 자랑하거나 허세를 부려 본 바도 없었습니다. 이 사건이 보도된 후 저는 국민을 향해서 “인생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저에게 단순한 언어적 수사가 아닙니다. 저의 살아온 삶 전체를 건 절규였습니다. 저에게는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화려한 경력보다는 저를 지탱해 온 삶의 진실이 더욱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검찰의 공소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5만 불을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의 눈을 피해 슬쩍 돈을 받아 챙기는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할 줄도 모릅니다. 또 남의 돈을 스스럼없이 용돈처럼 받아쓰는 문화에 익숙하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국가 공공시설인 총리공관에서 벌어진 오찬 자리에서, 비서관과 경호관들이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는 그런 자리에서 돈을 받는다는 것은 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2006년 12월 20일 총리공관 오찬은 정세균 산자부 장관의 사의표명 후 지인들끼리 가진 송년회 성격의 조촐한 점심식사 자리였습니다.

12월 12일 국무회의 후, 정세균 장관은 총리집무실을 방문하여 장관직을 사임하고 당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상의하였습니다. 이후 대통령과 의논하여 후임 장관까지 내정되어 있었습니다. 12월 20일 오찬 시에 정 장관은 내부적으로는 이미 퇴임을 확정한 상태였고, 12월 29일 공식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퇴임하는 장관에게 총리가 인사 청탁을 한다는 일이 상식에 맞는 일이겠습니까? 정세균 장관과의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오찬자리를 마련했다는 검찰의 사건구성 설정 자체가 본말이 전도된 것입니다.저는 국무총리 임기 중에 국회의원 신분을 겸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활동하는데 돈이 필요했다면 후원회를 통해 모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총리 재직 중 논란을 피하기 위하여 아예 후원회 계좌를 폐쇄하기까지 했습니다. 특별히 총리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 이외에 따로 돈을 모아서 쓸 만한 필요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제 인생을 통해, 최초의 여성총리라는 지위로 인해 원하든 원치 않든 민주주의를 이룩한 사람들에게, 여성계에게, 상징적 인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도덕성을 잃으면 이것은 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저를 바라보고 온 사람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 저는 그 책임감과 내가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 소명감을 매순간 자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또한 한국 최초의 여성총리로서 제가 일을 잘하고 깨끗해야만 후배들에게 좋은 모델이 되고 자라나는 우리 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국무총리는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모든 공무원을 통할하고 지휘하는 자리입니다. 총리의 자세가 흐트러지면 공무원의 기강도 무너지고, 따라서 나라의 질서도 어지러워집니다. 저는 이런 막중한 책임감과 중압감으로부터 한시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해 왔습니다. 그런 저에게 총리공관에서의 5만 불 뇌물 수수라는 혐의는 너무나도 부당하고 악의적인 날조입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그동안 검찰 소환에 불응했고 수사 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렇게 떳떳하면 검찰 조사에 적극 응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묵비권은 피의자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당시의 부당한 검찰 수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저에 대한 수사는 조사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언론플레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익명의 가면을 쓴 누군가에 의해서,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심지어는 수사가 종결되기도 전에 제 혐의 내용이 샅샅이 구체적으로 때로는 내용을 조금씩 바꾸어가면서 언론에 유출되었습니다. 일부 언론의 보도 속에서 저는 이미 범죄자가 되어 있었고 저의 인격과 명예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검찰조사는 진실을 밝히는 공정한 절차가 아니라 요식절차에 불과했습니다.

저의 권리를 전혀 보장하지 않는, 피의사실을 조금씩 흘림으로써 저에 대한 언론의 매도를 이끌어냈던 부당한 수사에 응할 수가 없었습니다. ‘뇌물수수’라니 이 무슨 해괴한 날조입니까? 이것은 저 한명숙의 살아온 삶 전체를 난도질하는 음해입니다. 참담한 심정에 가슴이 무너집니다.

하지만 저는 국정의 중심에서 장관과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 사법부의 권위를 존중하는 마음에는 추호의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에 응하였고 다만 부당한 수사에는 여전히 협조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하기 위해 피의자로서 당연한 권리인 묵비권을 행사한 것입니다. 저는 이제 법정에 섰습니다. 법 절차의 정당성과 사법부의 권위를 존중하며, 본 법정에서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성실히 재판에 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제가 곽영욱씨를 알게 된 것은 2000년, 그가 당시 어려웠던 여성계를 선뜻 도와주었던 일이 인연이 되어서입니다. 그 뒤로 그저 기업을 잘 운영하는 기업인 정도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알고 지냈을 뿐, 어떤 청탁을 서로 간에 할 정도로 허물없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그가 저에게 5만 불의 뇌물을 주었다는 진술을 했다는 사실에 처음엔 너무도 경악했고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가 검사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병약하고 공포에 내몰려 있었습니다.

“살려 주세요 검사님, 저 죽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애원하는 처절한 모습을 봤습니다. 한명숙 표적수사에 얼마나 모진 고초를 당했으며 얼마나 재산과 생명의 위협을 느꼈으면 그런 터무니없는 거짓진술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인간적으로는 안타깝고 동정이 갔습니다. 이러한 궁박한 상황에서 그의 약점을 잡아 받아낸 진술 하나 만을 가지고 저를 몰아붙이고 있는 검찰의 수사는 재판과정을 통하여 그 허구가 명명백백히 밝혀지리라 믿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지금 이 순간, 살아온 모든 인생을 걸고 제가 평생을 지켜온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죄의 유무를 따지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살아 온 삶 전체를 심판받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제가 가진 재산이라곤 지금까지 살아 온 삶 밖에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 저 역시 살아 온 삶이 소중합니다.

저는 신앙인으로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직 진실만을, 양심의 소리만을 말하겠습니다. 제가 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일은 난감하고 가슴 답답한 일입니다만, 진실한 마음가짐으로 재판에 최선을 다해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정의와 공평의 눈으로 진실을 밝혀내실 판사님의 혜안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배우는 자의 기도
배움을 더해 갈수록
느끼는 것은
제가 무지하다는 것,
제가 배울 수 있는 영역들이 얼마나 무한한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움이 깊어 갈수록
깨우치게 되는 것은
지식이라는 나무의 가지들이 그리도 무성하고
그리도 오묘하게 뻗어 있다는 것이며
일생을 통해 배운다 해도 여전히 초보자라는 것입니다.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지혜롭게 깨우치고
배워야 하는 분야들을 잘 터득할 수 있도록.
결코 실망하거나 싫증내어
배움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가 배울 수 있다는 것
배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잊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배움을 소중히 하고
제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깨우치도록
지혜를 주십시오.

저를 도와주십시오
터무니없는 야망을 지니지 않고
다만 근면할 수 있도록
성공이라는 물신을 숭배하지 아니하고
다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주어진 일들의 바른 순서를 찾으며
주어진 재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유혹을 거부하며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으며
진리 앞에서 겸손하며
재능에서 처지는 사람들에게 너그러울 수 있는
강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제가 배우는 것보다 더 무한한 것을 볼 수 있는,
제 개인적인 성공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볼 수 있는
넓은 안목을 주십시오.

시간의 주인이신 주님
주어진 기회들을 은혜로이 이용하고
주어진 재능들을 감사로이 계발시키며
배우는 것을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일에 쓸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일생을 통해 배움을 멈추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무리 많이 배울지라도
항상 발견해야 하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삶 그 자체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당신이 비추시는 빛을 외면하지 않도록
저를 지혜롭고 강하게 해 주십시오.




* 바오로딸 수도회 통신성서 홈페이지에서 퍼옴.
http://www.paulinebible.or.kr/c700/pray_view.php?view_id=138&board=&skin=c600&page=4&paging=&search_type=2&keyword=

* 나도 어지간한 승냥이인지라 연아의 올림픽을 기다리며 기도도 좀 하고 마음도 졸였다.
김연아가 준비한 만큼의 기량을 마음껏 펼쳐 보이고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파와, 사대륙 대회 때에 있었던 몇몇 시끄러운 사태들 때문에 더 마음 졸였다.

쇼트 땐 완전 승냥이 아줌마 -_-;; 아트걸네 집에서 아트걸이랑 같이 속태우며 보다가
트리플 플립 랜딩을 보며 '아 이제 됐어!!' 하며 한숨을 내쉬었고
스텝 마지막에 살짝 삐끗했지만 연아가 여유롭게 엔딩포즈를 취하는 걸 보고선
아트걸이랑 얼싸안고 환호했다.
프리 땐 연아가 속한 4그룹 웜업이 시작했을 때부터
무릎꿇고 앉아 주모경만 계속 외웠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쉴 새 없이, 소리내서.
연아가 마지막 스핀을 다 돌고 엔딩포즈를 취하고 두 손을 뻗어 승리의 제스처를 취할 때까지.
울먹이며 인사하는 연아를 보면서는 '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150점대의 놀라운 점수가 뜨는 것을 보고서는 아트걸에게 전화를 걸어 기쁨을 나눴다.

연아가 준 그 감동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선수의 팬으로서 몇 년간 연아에 대해, 또 피겨에 대해 알아가면서 겪어온 마음의 여정
단순히 예쁘고 아름다운 연기 때문만이 아니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성장하고 노력의 열매를 맺어 가는 진실한 한 사람의 삶이 주는 감동
그 감동으로 인해 정확하게 띠동갑 동생인 그를 존경하게 되었고
나 자신도 아닌 그가 올바른 평가를 받기를, 그가 행복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그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을 때 마음에 퍼지던 기쁨! 아아 감사합니다!!

* 올림픽이 끝나고,
방정맞은 국내 언론들은 별 희한한 소리들을 쏟아내는데
연아는 으레 그랬듯이 그런 것 따위 신경도 안 쓰는 대인배 포스를 발하며
월드 준비하러 토론토로 돌아갔다.

월드 때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늘 그랬듯이 연아가 자기 마음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자기 기량을 다 펼쳐보였으면 좋겠고
심판들이 그것에 합당한 평가를 내려 주면 좋겠다.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기만 한다면 연아는 당연히 금메달을 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올림픽 금도 땄는데 월드에서 금을 따지 못해도 좋다.
그저 연아가 월드까지 기분좋게 치르고 이번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연아가 한동안 선수 생활을 쉬었으면 좋겠다.
너무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피겨선수 생활
늘 절제되고 성취지향적으로만 살아온 생활
이제 한동안은 좀 접고 편하고 밝게, 나이답게 살아 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쉬고 놀아보다가
아무래도 피겨선수생활이 못내 그리우면 그 때 돌아와도 좋겠지.
하지만 적어도 얼마간은, 한 시즌만이라도, 좀 쉬었으면 한다.

더불어 승냥이질에도 좀 휴식기를 가졌으면 한다. -_-;;;
맨날 대회 때마다 연아를 방해하는 세력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혹시라도 무슨 일 날까 봐, 혹시라도 이상한 판정이 날까 봐
마음 졸이고 핏대 세우는 거, 피곤하다. -_-;;;
연아가 한 시즌이라도 선수생활을 쉰다면
승냥이질도 한 시즌이라도 쉴 수 있다... -_-;;

승냥이질이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자랑스런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터, 타는 족족 금메달 김연아" 정도의 인식에 머무르는 사람은
뭘 해도 1등인데 왜 은퇴설이 나도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래 연아가 몇 년 더 선수생활을 한다면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은 몇 년 더 메달을 확보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라고 연아에게 선수생활을 연장하라고 강요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나도 연아가 올림픽 금을 따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건 한국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한국이 이기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연아가 13년동안 자기의 온 생을 희생하며 준비해온 꿈이 이루어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 꿈을 이루었으니
이후의 일은 연아가 연아맘대로 연아에게 가장 행복한 방향으로 선택하기를 바란다.
특히 평범한 사람인 나는
연아 스스로 그렇게 바라 마지않는 '평범한 행복'들을
연아가 단 몇 달만이라도 누려보면 좋겠다 생각한다.


*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나는 옆나라 띠동갑 피겨선수도 잠시 피겨를 접고 딴 걸 해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승냥질을 깊게 하다 보면 이 선수를 좋아하기는 어렵다.
기술 보는 눈이 늘고 피겨에 관한 지식이 정확해질 수록
이 선수가 터무니없이 고평가 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다른 선수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할 상을 자기가 가져가는 적도 한두 번이 아니며
그 피해자는 주로 내가 좋아하는 선수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터뷰를 통해 나타나는 선수로서의 마인드도... 좀 후지다.

그래서 한국에서 이 선수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은 대략 세 부류인 듯하다.
피겨팬이 된지 얼마 안 돼서 기술 보는 눈이 없고 승냥이들이 이 선수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오로지 편견과 반일감정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들, 남들이 좋아하는 사람에 안티를 선엄함으로써 존재감을 느끼는 사람들, 자기는 친일파라는 것을 내세움으로써 존재감을 느끼는 사람들.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건 큰 부류를 형성하는 사람들은 이런 듯하다는 것이다.

나도 이 선수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선수가 '아깝다'는 생각은 한다.
그도 젊고 예쁜 사람이며 어린 시절부터 자기 꿈을 향해 쉼 없이 달려온 선수다.
그리고 상당히 뛰어난 스케이터이기도 하다.
이 선수 어릴 적의 동영상들을 보면 참 예쁘고, 그 나름의 감동도 선사해 준다.
이 선수도 자신을 잘 갈고 닦는다면 훨씬 아름다운 스케이팅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니 나는 이 선수도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많이 좀 성장해 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선수에게 필요한 성장은
본인을 위해 지어진 전용 연습링크 안에서 늙은 러시아인 코치랑 붙어 있는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선수가 한동안 스케이팅을 접고 다른 일을 해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서, 어릴 때부터 이름난 선수가 갖는 프리미엄 같은 것 없이 쌩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워가는 경험도 다시 해 보고, 남자랑(혹 자기 성적 취향이 아니라면 여자랑) 연애도 제대로 해 보면서 감정의 폭풍도 경험해 보고, 대학 공부도 열심히 해서 여러가지 교양과 지식을 쌓고... 그런 시간을 가져 보았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서 링크로 돌아와 주면 좋겠다.

지난 그랑프리 1차 프랑스 대회 때 점프를 말아먹은 그에게 2차 러시아 대회 때는 코치가 '저스트 두 잇!'이라고 윽박질렀다나... 그러나 '저스트 두 잇'은 그렇게 윽박지를 때 써먹을 적절한 말은 아니다. 그가 말아먹은 그 점프를 가다듬으려면 되건 안 되건 그저 달음박질쳐 가서 뛸 일이 아니라 체중을 조절하고, 근력을 키우고, 스피드를 높이고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한 일년이라도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것을 배우고 나면 그녀도 그런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에 대한 고려 없이 '저스트 두 잇'이라고 윽박지르고 '이번 시즌의 주제는 극복'이라면서 자신을 문제덩이 취급하는 코치랑은 미련없이 결별할 줄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에 빠져 하늘도 날아보고 심연을 더듬으며 울어보기도 하고 나면 그녀도 표정연기란 걸 할 줄 알게 될 것이다. 음악도 조금 느낄 수 있게 되겠지. 자신의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을 선택하고 그 음악에 몰입하여 안무를 소화해낼 줄도 조금은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가 진정 아름다워졌으면 좋겠고, 아름다운 스케이팅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게 되면 좋겠다. 아름다운 것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지 않겠는가!

물론 이런 한가한 구상을 맘놓고 할 수 있는 건
연아가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기에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인 것도 사실이다.
그 전엔 이 선수도 정신차리고 고유의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혹시 이 선수가 그러다 진짜로 발전해 버리면 우리 연아의 메달을 뺏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맘놓고 축원해줄 수가 없었다. >.<


* 연아 후의 한국 피겨는...
재능있는 선수들이 많이 성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당장 한두 시즌만에 연아급의 선수가 나올지는... 모르겠다.

사실 연아가 은퇴한다면 나는 피겨에 대한 관심수위를 많이 줄이고 싶다.
왜냐하면..
피곤하니까. -_-;;;
내 일로 신경쓸 시간도 모자란데.
어쨌든
연아처럼, 금메달을 당연히 가져가야 할 실력인데
자꾸 외부요소들 때문에 부당하게 저평가 당는 선수를 보면서
마음 졸이고 분노하고
그럴 일은 더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그대신 세계적으로도 웬만큼 인정받는 선수들의 층이 두텁게 생겨서
그냥 맘편히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성장을 축하하고
그냥 그렇게 가끔 경기 동영상을 즐기며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나는 골수 승냥이는 절대 아니다.

*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마리나이다.

천주교인들은 세례를 받을 때 성인들의 이름을 딴 세례명을 짓는다.
그 성인의 삶을 닮아가고자 하는 의미도 있고,
그 성인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전구를 청하는 의미도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성인이 있으면 따라 짓거나,
어떤 의미를 두고 그 의미에 맞는 성인의 이름을 찾기도 하는데

그런 게 따로 없으면 보통 자기 생일과 세례명의 축일(모든 성인은 그를 기리는 축일이 정해져 있다)이 비슷하거나 같은 이름 중에서 고르기도 한다.
그리고 초등학생 소녀들은 세례를 받을 때
예쁘고 특이한 이름을 고르고 싶어하는 성향이 있다.

나의 세례명은 마지막의 두 가지 이유에 따라 선택한 이름이다.
게다가 좀 특이한 나의 원래 이름과 발음이 비슷하기까지 했다.

어릴 때는 내 이름이 예쁘고 특이하고 흔하지 않아서 좋았다.
(아직까지 같은 세례명 못 봤다. 같은 이름의 남자버전인 '마리노'는 한 사람 봤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좀 아쉽다.
의미에 대해 전현 생각하지 않고 지은 이름인데
나이들고 신앙이 내 삶에서 점점 중요해질 수록,
의미 면에서 탐나는 이름들이 눈에 많이 띄는 것이다.
이를테면 바다의 별 '마리 스텔라'라거나,
사랑의 성녀 '스콜라스티카'라거나,
학자이자 예술가이자 치유자이자 기타등등 '힐데가르트'라거나....


* 오늘, 재미삼아 내 이름을 가진 성인들에 대해 찾아봤는데,
본래 내 이름인 7월 18일 축일의 마리나에 대해선 짧게 '스페인 오랑스의 순교자'라고만 나와 있다.
그런데, 2월 12일이 축일인, 같은 이름의 성녀의 스토리는 이렇다.


"비티니아의 에우제니오란 사람의 딸이다. 그녀의 부친은 홀아비 생활을 청산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얼마가 지나자 친척집에 맡겨둔 어린 딸 마리나 생각에 마음이 헷갈리게 되자, 원장에게 그 아이는 마리노라는 남자 아이이니 자신과 함께 수도원에서 살게 해달라고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녀는 부친과 사별할 때까지 그러니까 17 세 때까지 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그 후에도 그녀는 남자 수도자로서 계속하여 생활하다가, 어느 여인숙 주인의 딸이 마리노가 자신에게 임신시켰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때문에 그는 수도원 문밖에서 걸식을 하며 살았는데, 그 처녀는 아이를 낳아서 마리노의 아들이니 돌보라고 주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침묵으로 일관하며 끝까지 인내하였다. 5년 후, 원장은 마리노의 놀라운 인내와 겸손을 인정하여 5세 된 아들과 함께 수도원에서 다시금 살게 하였으나, 매우 힘든 일만 시켰다. 그 얼마 후 마리노는 운명하여 시신을 수습하던 중에 그가 여성임이 밝혀진 것이다. 원장 이하 모든 수도자들과 시민들이 그녀의 위대한 용덕과 인내심을 찬양하였고, 엄숙한 장례가 거행되었다."


간혹 라틴 계열의 이름은
어말의 모음을 여성형으로 바꿔 남자 성인의 이름을 여자 세례명으로 쓰기도 한다.
그래서 같은 이름의 남자버전 '마리노'도 찾아보았다.
역시 길게 언급되지 않은 이름들이 많은데 하나가 또 눈에 띈다.


"4세기경 은수자 몬떼펠트로

마리노는 달마씨안 해안의 사람으로 채석공이다. 리미니의 성체를 재건한다는 소문을 듣고 다른 석수 성 레오와 함께 그곳에 가서 몬떼 띠타노의 채석장에서 일하였다. 그들 가운데에는 크리스챤이란 이유만으로 중노동을 하고 있던 일당의 신자들이 섞여 있었다. 마리노와 레오는 그들을 위로, 격려하면서 또 다른 개종자들을 얻고 있었다. 그 후 성 레오는 리미니의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어 몬떼펠트로로 갔고, 성 마리노는 부제가 되었으나 그전의 석수일을 계속하였다. 12년 동안 그는 수로공사 일을 하면서, 뛰어난 기술자일 뿐만 아니라 신자 노동자의 모델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불행한 일이 발생하였으니, 달마씨아의 한 여인이 그를 자기 남편이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부인하지 않고, 가만히 물러나서 몬떼 띠타노로 가서 숨어 살았다. 그 후 그는 계속하여 은수자 생활을 하며 여생을 지냈는데, 그가 살 았던 곳을 중심으로 하여 오늘의 산 마리노 도시가 탄생한 것이다"



흠. 혼인 문제로 엮이는 게 이 이름의 운명인가?

어쨌든 내 이름은 7월 18일이 축일인 마리나가 맞다.
그녀의 순교 스토리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어 아쉽지만
어원적으로 '바다'를 뜻하는 내 이름은 (통영에 '마리나' 리조트라고 있잖습니까...)
가톨릭에서 흔히 '바다의 별, 항해하는 자의 길잡이'로 비유되는
신앙의 모범, 성모 마리아님의 별칭이기도 하니,

어쨌든 좋은 이름이다!! ^^





*
似而非: 같을 사, 말이을 이, 아닐 비.
異端: 다를 이, 끝 단.

사이비는 비슷하나 아닌 것이고, 이단은 끝이 다른 것이다.
사이비라는 단어 뒤에는 응당 '종교'가 붙어야만 할 것 같고
'이단'이라고 하면 어쩐지 기독교와 관련된 듯한 느낌이 들지만
원뜻으로 풀어보면 꼭 그런 건 아니다.
중국 송대의 유학자 주자는 '대학장구 서'에서 불교와 도교를 '이단허무적멸지교 - 끝이 다른 허무와 적멸의 가르침'이라고 칭했다. 유학만이 진정한 길에 대한 가르침이요, 불교와 도교는 일견 옳은듯해 보이지만 그 끝이 엉뚱한 데로 가는 가르침이라고 본 것이다.



* 1월 연수봉사와 연수로 정신이 없던 와중에
연수봉사를 한 차수 끝내고 집에서 정신없이 자고 쉬고 있던 어느 날
'설문조사를 하겠다'며 집에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말한 '설문지'란 것은 나이와 종교 같은 것을 묻는 맨 위의 문항을 빼고는
이상한 질문들을 담고 있었다.

성경에 ***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교회가 있다면 가보시겠습니까?

적어도 사람들의 의견을 동향을 살펴 통계처리 후 자료로 활용하려는 목적의
일반적인 '설문조사'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엄마가 이런 사람들을 애초에 집에 들이신 것은,
2인1조였던 그들 중 한 명이 화장실을 가게 해 달라고 간곡히 사정했기 때문이다...)

정중하게 나가 달라고 했다.
난 성당 열심히 다니고 성경도 열심히 읽고 구원에 대한 확신도 있으니 당신들이 이럴 필요 없다고.
게다가 성경연수 진행하느라고 며칠동안 잠도 못 자서 쉬어야겠다고.
계속 뭔가 이야기하려고 하던 그들은 마침내 포기하고
인쇄물 한 부를 주면서 간곡히 이거라도 읽어보라고 말하고 나갔다.
그들이 준 인쇄물은 빠닥빠닥한 아트지에 컬러인쇄된 8쪽짜리였는데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말, 어머니" 였다.
누구라도 혹할 제목. 온인류의 약점 엄마를 걸고 넘어지는군.
게다가 엄마 가슴에 안긴 젖먹이의 사진이 배경으로...

인쇄물 내부의 내용은 성경의 애매한 구절들을 들어가며
하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어머니'가 있는데
'하나님 어머니'가 주는 '생명수'를 마셔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쓰여있었다.
마지막 페이지의 결론으로 그들의 집단이 어떤 곳인지 의문이 싹 풀렸다.
"하나님 어머니는 재림예수의 신부입니다."
아하, 어떤 여성교주께서 재림예수의 신부를 자처하며 생명수라는 것을 팔고 계시군요.
엄마, 아빠, 남녀차별, 이런 문제에 대해서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주로 혹 하겠지...
이건 끝만 다른 '이단'이라기보다는, 비슷하나 전체적으로 다른 '사이비'라 보는 게 낫겠다.

진심으로 그 사람들이 불쌍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리를 위해 봉사하며
예수를 위해 핍박받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 최근에 어떤 분께 들은 바에 의하면
'사이비 종교' 교리 만들어주는 업자도 있다고 한다...
돈 주고 거기서 만들어준 교리 사서 공부해서 신도들을 모으고 활동하면 된단다...
허걱.
이런 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는 건가.
그런 업자는 아마도 고학력자이거나 적어도 지능지수가 높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겠지..
좋은 머리로 참...


* 사이비 종교 취재를 오래 했던 시사잡지 기자 선배가 있다.
선배는 모든 '사이비 종교'가 1대 교주와 그 핵심 추종세력이 죽고 나면
종교 자체의 순기능을 수행하는 '보통 종교'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 있다.
그는 그러면서 주류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흔히 지목되는 한 종파를 예로 들었다.
과연 그 종파의 1대교주는 죽은지 무척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 종파는 지금 사회적인 해악을 마구 끼치고 있지는 않다...

종교의 순기능?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한 줄기 희망과 위로를 주고, 사후세계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것,
정도가 종교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렇기만 하면, 다 괜찮은가?

어려운 문제다.
종교는 그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는 진리이고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설이고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내 종교가 진짜 진실이고 사실이며,
그러므로 '사이비' '이단'들은 가짜이고 거짓말이고 혹세무민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내 종교도 역시 가설일 뿐이다.
그들에게 내 종교는 가설이라는 점에서는 내 종교의 '사이비'나 '이단'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인 정의개념(그런 게 존재하냐고 물으면 또 답하기 어렵지만..)에 위배되거나
얼토당토 않게 누군가를 신격화하거나
과도한 기부와 헌신을 강요하거나
가입은 자유롭되 탈퇴하기는 어려운 구조라면
그건 확실히 문제있는 집단이라 볼만 하지 않은가...


* 아무튼, 자기들의 '어머니'를 위해 이 추운 날 문전박대를 자처하며 떠도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을 위해 무슨 기도를 해야 할까요? 정신차리기를? 잘 빠져나오기를? 모르겠어요 하느님. 더이상 하느님 팔아 장사하는 사람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고, 그 불쌍한 사람들이 그대로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멘!



* 2월 2일 밤에 오빠집에 들어갔다.
오빠집 초인종은 소리가 너무 작아서 사람이 온 줄 잘 모르는데
초인종을 누르면서 집안의 화상 인터폰이 켜지는 것을 별이 보고
고모가 온 것을 제일 먼저 알아차렸다.
고모 왔다고 좋아하는 별.
잘 준비 다 해 놓고,
고모랑 같이 잘 거라고 네모난 쿠션 두 개를 나란히 놔뒀다.
아이구 이쁜 울 조카!!!
얼른 씻고 화장 지우고, 옷 갈아입고 같이 자자고 누웠더니
별이 아쉬워 한다.

"고모 왜 깜깜한 밤에 와서~, 책 못 읽잖아!"
아 미안해 별. 다음엔 환한 낮에 와서 별이랑 재미있게 놀게.

그래도 막무가내로 떼쓰고 옛날옛날에 해 줘, 책 읽고 잘 거야, 그러질 않는다.
제 엄마가 '옛날옛날에 안 하고 자기로 했지? 책은 아까 다 읽었지?' 하니까
그대로 수긍한다.
에고 이뻐라.


* 2009년엔 별이 지 아빠랑 결혼한다고 하고, 나랑도 결혼한다고 하고 그랬다.
추석 무렵엔 나에게 전화해서 '여보여보여보'만 연발하며 키득거리다 끊은 적도 있었다.

2010년 1월 1일에 별은 진기랑 결혼한다고 했다.
오빠 표현에 의하면, 제 아빠가 유부남이란 걸 알아챘다.

"아빠랑 결혼하자!"
"벌써 결혼했잖아!"
"고모랑 결혼하자!"
"여자끼리 결혼하는 거 아니야!"
"별아, 그럼 별이가 진기랑 결혼하면 고모는 누구랑 결혼해?"
"OO씨..."
푸하하. 시옷 발음도 잘 안 되는 녀석이 OO씨인지 OO띠인지 애매한 발음으로 수줍은 눈웃음을 살살 흘리며 대답하는 것이 어찌나 귀엽고 웃기던지...

2월 2일 밤, 별의 유치원 친구들 이야기가 나왔는데
결혼하겠다는 친구가 바뀌어 있었다. 진기가 아니고.. 한 번밖에 못 들어서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새로운 친구랑 결혼하겠단다. 아마도 새로 잘 생긴 남자 어린이가 들어온 걸까? ^^
뭐라고 대답할까 궁금해 물어봤다.

"별아, 고모는 누구랑 결혼해?"
"대전할머니!"
"여자끼리 결혼하는 거 아니잖아!"
"아는 남자 누구 있어?"
ㅋㅋㅋ

"OO삼촌도 있고, XX삼촌도 있고..."
"OO삼촌이랑 결혼하면 되겠네."
"그럴까?"
"근데 고모 공부해야 되는데 결혼하면 어떡해?"

핡! 다섯살짜리, 11월생이라 4살이라 해도 안 억울할 녀석이 이런 소릴!!!

"뭘 어떡해? 그냥 결혼하고도 공부하면 되지."
"애기 낳으면 애기침대에 눕히고 누워있어야 돼."

헉. 100일 갓 넘은 제 동생 낳았을 때 제 엄마가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게 녀석에게 그렇게 강렬했나 보다.

"그래? 그럼 공부 끝날 때까지 애기는 낳지 말아야겠다."
"엄마 되면, 내 고모는 없어지잖아."

별, 그런 건 누가 얘기해 준 거야?
"고모가 애기 낳고 엄마 돼도 별이 고모는 별이 고모지!"
라고 대답했지만, 사실이 그렇다. 결혼하고, 애까지 생긴다면
나에게 별의 우선순위는 밀릴 거다.
그럴 수밖에 없다.
녀석, 벌써 그런 걸 다 아는 거야?
하지만 별, 너의 '첫조카'빨도 결코 만만치 않을 거야.
고모 애기도 네 동생이야.
그런 건 아니? ^^


* 2월 3일 아침, 별을 유치원에 데려다 줬다.
전에는 고모가 오면 유치원 안 가고 고모랑 놀려고 별 수를 다 쓰더니
오늘은 안 그런다.
엄마가 휴직하고 집에 있어서 그런 건지
(전엔 엄마가 출근하고 없을 때 고모랑 유치원에 갔었다..)
아니면 유치원 가는 일상을 더 순순히 받아들인 건지
혹시 유치원 가는 게 더 좋아진 건지 그건 모르겠다.

추운 날씨에 대비해 두꺼운 옷을 껴입고, 목도리도 하고 귀마개도 하고
빵빵한 별의 볼따구에 빵빵한 귀마개가 흘러내려와 귀여워 죽겠다!!!
유치원 앞까지 왔을 때 별이 요구한다.

"별이 유치원 끝날 때 고모가 데리러 와!"
"고모 오늘 공부하러 가는 날이라 못 와.
다음에 공부 안 하는 날 별이 유치원 끝날 때 데리러 올게!"
"그럼 누가 와?"
"엄마나 할머니가 오실 거야!"

예쁜 별, 유치원 들어가면서 고모에게 뽀뽀해 주었다.
에고 이뻐. ^^ 뽀뽀 고마워! 사랑해!

* 2월 3일 밤. 이 날은 전날보다 오히려 더 늦게 왔다.
10시가 넘은 시각...
이 날도 역시 별이 인터폰 켜지는 것을 알아채서 문을 열어줬다.
고모 왔다고 좋아하던 것도 잠시.
전날처럼 재빨리 화장 지우고 씻고 갈아입고 제 방에 눕자
별이 방에 들어오더니
가까이 오지도 않고 선 채로 말한다.

"고모, 별이 어른없이 혼자 자도 되니까 고모 다른 방에서 자!"

웬 날벼락이여. 다 누웠는데 어느 방에 다시 이부자리를 펴라고.

"고모는 혼자 못 자. 별이가 재워줘야 돼."
"왜? 어른인데 왜 혼자 못 자?"
"(헉!) 어른이지만 고모는 고모집에서는 혼자 잘 수 있는데 지효집에선 혼자 못 자. 지효가 재워줘야 돼."
"고모 컴퓨터 방에서 자!"
"별이야 고모한테 화났어?"

별, 대꾸 없이 커텐 뒤로 쏙 숨어버린다.
화났구나.

"별이야, 이리와 봐. 고모한테 화났어? 고모가 들어줄게. 말해 봐."

그래도 화 났단 소린 안 한다.

"별이 고모한테 화났구나! 고모랑 책도 읽고 놀고싶은데, 고모가 깜깜한 밤에 와서, 못 놀고 바로 자야 돼서 화났어?"

내가 핵심을 딱 꼬집어 말하니
그제야 별이 커텐 뒤에서 나와 이불 위에 앉으며 대답한다.
"섭섭했어."

끝까지 화났다는 말은 하기 싫은가 보다. 에융, 요 녀석.

"미안해 별아. 고모가 다음에는 꼭 환한 낮에 올게. 별이 유치원 끝날 때도 데리러 가고, 환한 낮에 와서 책도 읽고 재미있게 놀자! 그러니까 오늘은 별이랑 같이 자게 해 주세요!"

이리하여, 무사히 별의 방에서 잠이 들었다.


* 2월 4일 아침, 전날 저녁, 내가 귀가하기도 전에 별이 고모에게 아침에 읽어달라고 하겠다고 골라놓은 '공룡유치원' 책 세권을 읽어주고, 같이 아침을 먹고, 어제처럼 별을 꽁꽁 싸매고 귀마개와 모자까지 씌워서 같이 나왔다.

지난번에 내린 눈이 아직도 다 녹지 않고 길가 군데군데 무더기져 남아있고
거기서 튀어나왔는지 주먹만한 얼음덩어리가 하나씩 길에 구르고 있다.
개구쟁이 별, 얼음덩어리가 보일 때마다 가서 한 번씩 짓밟아준다.

길가 하수도 덮개 위로 눈더미가 주저앉아 얼어붙은 위로 별이 걸어가려고 해서
미끄러지니까 하수구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하수구가 뭐야?"
"더러운 물이 모여서 더러운 물을 다시 깨끗하게 하는 곳으로 흘러가는 거야."
"그럼 다시 써?"

핡, 별, 너 진짜 똑똑하다.
"더러운 물을 깨끗하게 해서 강물로 다시 흘려보내면 강하고 바다로 흘러가다가 다시 구름이 되고 구름이 무거워지면 비나 눈이 돼서 내려오는 거야. 그러면 우리가 그 물을 다시 쓰는 거야. 그러니까 물을 더럽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돼."

아, 대화의 앞뒤흐름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별은 이미 '구름이 무거워지면 눈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 별은 아기 때부터 스킨쉽에 대해 좀 시큰둥한 편이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아기였을 때는 안아주거나 뽀뽀해주는 것을 오히려 귀찮아하는 듯했다.
그런데 요즘은 안거나 뽀뽀하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는 듯하다.
이틀 연속,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나서 빠이빠이하는 고모에게 제가 먼저 뽀뽀를 해 주어서
별과 뽀뽀하는 게 너무 좋은 고모는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 ^^

* 별, 너무 똘똘한 어린이가 되었다.
별의 동생도 곧 움직이고,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고, 어린이가 되어 가겠지...
별의 동생에 대해서도 이런 포스팅을 올리게 될까?
글쎄...

별, 그러니까 너의 큰아기빨은 엄청난 거야!!!
행복하게 자라렴!!

* "아빠와 고모, 엄마와 삼촌, 나와 지동이!"

아아 천재같은 내 조카. ^^

"내 아빠가 고모 오빠야."

ㅋㅋ 귀여운 녀석...



별은 이제 우리 나이로 다섯 살.

아기보다 어린이에 가까워지고

언어가 어른 언어에 가까워질 수록 빈도가 줄고 있는데

요 녀석 '내 엄마' '내 아빠' 이런 말을 종종 썼다.

그게 귀여워 흉내낸다고 별의 아빠 고모 대전할머니도 그런 말을 쓴다.

6일에도 퇴근해 집에 온 오빠가 나를 보더니 '내 동생이다!' 한다...

우리말은 희한하게 가족들 중 자기보다 윗 사람에 대해서는 '내 **'라는 말을 잘 안 쓴다.

'내 동생, 내 아들/딸, 내 조카'가 '내 오빠/언니, 내 엄마/아빠, 내 고모/삼촌'보다 자연스럽고 널리 쓰이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와 오빠를 '내 엄마, 내 오빠'라고 불러보니 참 어감이 새롭다.

가족관계를 재발견하는 느낌이랄까...

내 꺼라는 느낌.

그리고 별에게 '내 고모'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으로 미루어 보아

'내 엄마', '내 오빠', '내 언니'라는 말을 듣는 엄마, 오빠, 언니도

기분이 좋고 내가 이뻐보일 것이다..


* 가짜로~

역할놀이를 좋아하는 별.

이번에 갔을 때는 소꿉놀이를 하면서

아주 고도의 역할놀이를 했다.

나는 '유치원에서 소꿉놀이하면서 아빠역할을 하는 진기'가 되었고

별은 '유치원에서 소꿉놀이하면서 엄마역할을 하는 태희'가 되었다.

진기와 태희는 모두 별의 유치원 친구들이다.

말하자면 2중 역할놀이. ㅋㅋ

ㅋㅋ


2009년 한 해 별의 주 레퍼터리였던 '다윗과 골리앗' 역할놀이는 이제 한 물 갔다.

'다윗은 뭘 했어?' 하면 돌팔매 흉내를 내지만 그다지 몰두하지 않고

스스로 꺼내지는 않는다.

별 밥 안 먹을 때 '으하하하, 나는 골리앗이다! 지효가 밥을 잘 먹으면 도망간다' 하면서

잘 써먹었었는데.

지효가 얼른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면 '으악! 도망가자!' 하고

제자리에서 몸통만 돌려 팔만 달리기시늉을 내어 도망가는 척 하고

다시 별을 보면서 "도망갔어. 나는 골리앗 동생 골리버야." 하면

"골리버야! 방금 네 형이 왔었어"

"그래? 우리 형은 무서워. 지금은 도망갔니?"

"응."

요러고 잘 놀았는데. ^^


* 사랑해 별!

네가 자라는 순간순간

고모랑 어른들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어서 고마워!!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올해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저는 이제 본과 3학년이 됩니다.

1월은 공부와는 상관없는 일정으로 시간이 꽉 차 버렸지만

그 틈틈이 공부 열심히 해서 1월 중에 동의보감을 한 번 통독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2월에 한 번 더 통독할 거고요...

1월엔 글자마다 시선을 한 번 두는 것에 의미를 두고

2월엔 내용을 좀 보려 해요...

1월과 2월에 걸쳐 수요일마다 빈호맥학 특강을 신청해 두었으니

빈호맥학 책도 열심히 보아야지요.

그런 와중에 2월엔 목요일 저녁 의료봉사를 신청해 두었고요...

이 기회에 맥 좀 열심히 잡아보려 합니다...

* 얼결에 맡은 한의대 가톨릭동아리 VITA 회장 노릇도 해야 합니다.

지도교수님들(무려 네 분!)과 지도신부님들 뵙고,

후배들 만나 맛있는 거 먹으면서 좀 친해지고요...

신입생 모으려면 OT도 조금이라도 참석해야 할 테고요...

새 학기엔 후배들 데리고 청년성서반을 운영하려 하니 그 준비도 필요합니다.

후아. 주님 뜻대로 되겠지요. ^^

* 1월의 바쁜 일정은 모두 청년성서 연수와 관련된 일정입니다.

작년봄 창세기를 공부했고 작년 가을 탈출기를 공부했는데

이번 겨울에는 창세기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봉사를 맡았고

탈출기 연수를 받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월 14일부터 세 주 연속, '목금토일' 3박4일씩 연수원에 들어갑니다.

이 연수 프로그램에 들어간 동안은 휴대폰과 시계를 쓸 수 없습니다.

인터넷도 물론이지요.

하여 1월에 heraus는 연락이 잘 안 되는 날이 많을 것입니다.

* 2월엔 동계올림픽이군요.

하느님 김연아 선수의 스케이트에 날개를 달아주세요!! ^^

* 3월에는 개강을 하겠지요...

공식 중간고사 기간은 4월 18~23일, 기말은 6월 14~18일입니다.

각각 그 한 주 전부터 실질적으로 시험기간일 것이고

기말 이후 1주일간은 재시 및 성적처리 관계로 마음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학기엔 어떤 교수님들을 뵙고 어떤 가르침을 받게 될까요.

설렙니다. ^^

3월엔 비타 개강모임을 주도해야 하고 5월말쯤엔 종강모임을 주도해야겠지요.

그 중간에 비타 성서공부모임을 굴리고,

기말쯤엔 연수보낼 준비도 해야겠군요.

* 여름방학은 또 바삐 지나겠지요.

어떤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고 있고요. ^^

아마도 맥학강의를 재수강하게 될 것 같고요..

* 2학기는 9월 1일에 시작합니다.

공식 중간고사는 10월 18일~22일, 기말고사는 12월 13일~17일입니다.

그러고 나면 또 연말이 되겠군요. ^^

그리고 2011년이 밝아오겠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갑니다.

시간과 함께, 겪어온 시간에 걸맞는 성숙을 이루어 나가기를...

* 다시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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