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aus kommt heraus


결혼은 사람을 꿈꾸게 한다.
결혼 같은 건 까마득한 남의 나라 이야기인 어린 나이서부터 사람들은 결혼을 꿈꾼다.
결혼이 현실로 닥친 20대, 30대들도 결혼을 꿈꾼다.
꿈꾸는 방식도 그 내용도 가지가지지만
결혼은 사람을 꿈꾸게 한다.
남부럽지 않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식을 올리고,
집은 어떻게 꾸미고, 생활은 어떻게 꾸리고,
남부럽지 않은 형편으로 남부럽지 않은 행복을 누리며 살겠다고
사람들은 결혼을, 혹은 결혼과 관련된 것을 꿈꾼다.

아이는 사람을 더욱 더 꿈꾸게 한다.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주겠다고,
나의 사랑을 어떻게 전해 주고 아이에게 어떤 가치를 어떻게 전해주겠다고,
아이와 함께 무엇을 해 보겠다고
아직 무엇도 결정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를 어떻게 키워보겠다고
사람들은 꿈을 꾼다.
그저 직장에 나가 돈을 벌고, 일상을 영위하고,
작은 여행이나 가끔의 외식이나 외출 같은 소비적인 이벤트들 외엔
별달리 꿈꿀 것이 없어진 어른들에게
아기는 새롭고 큰 꿈을 꾸게 한다.

조카가 생기자
기뻤다.
유전자의 당김인지
너무나 예쁘고 귀하고 소중하고 남달랐다.
태어난지 이틀째에 처음 만난 조카를 안아보면서
이 아이를 위해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모인 내가 그런데
부모는 오죽할까.
아기를 가지기 전까진 아기 낳고 키우는 문제에 아무 관심 없던 오빠는
딸내미를 안고 트림시키면서 그랬다.
딸을 낳고 보니
아기를 통해 새로운 꿈을 꾸게 되더라고.

부모가 되어 소중한 아기를 안고 새 꿈을 꾸게 된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결혼이 아니어도, 아기가 아니어도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결혼을 하거나 아기를 낳지 않아도 되겠다고.
꼭 내 배로 한 인간을 잉태하고 이름도 애틋한 자식을 낳지 않아도
내 삶으로 꿈을 잉태하고 꿈으로 인한 열매를 낳을 수 있다면
결혼하고, 부모가 된 사람들을 꼭 부러워할 필요는 없겠다고.

이렇게 생각이 안정돼 간다.






* 물론 멋진 테너 아저씨가 나타나면
얄짤 없다. ㅋㅋㅋ

미혼여성 10명중 4명 "결혼 안해도 괜찮다" - 매일경제, 2006.11.22.

* 나도 이 기사에 등장하는 열 명 중 네 명의 한 사람이...었...다.
었다,는 건 지금은 좀 아리까리한 상태라는 건데..
글쎄 뭐, 얼마 전에도 그런 얘길 쓴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누구 결혼한다면 배알이 꼴리고
남편 있고 자식 있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고
그런 마음 상태..
24시간 사로잡힐 정도는 아니지만 문득문득 그렇게 되는..
다행히, 천천히 한 겹씩 극복하고 있지만...

* 정말로
남편 있고
자식 있는(임신한..) 사람들이
참 많이 부럽다.
세포의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부럽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뭐, 부러워한다는 게 웃기는 것이다.
결혼 안 해도 괜찮다는 열 명 중 네 명에 속했던 주제에,
한 번도 좋은 배우자 얻기를, 일찍 좋은 가정을 이루기를 추구해 본 적이 없는 주제에,
부러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지 않아서 내게 없는 것을
부러워할 이유가 무엇이랴.

* 그런데 사실,
내가 결혼이나 가정을 추구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것에 가치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그런 건 굳이 추구하지 않아도 당연히 얻어지는 건 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인생을 몰랐던 거지.
세상 어떤 것이, 노력 없이 추구 없이 얻어질까.
그리고 나 자신을 모르기도 했다.
내가 결혼을 안 원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내 안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무의식 중에 모순적인 소망을 품고 있었던 것..

* 그래서 이제부터 왕자님 찾기를 추구할 거냐고?
아직은 생각 없다. ㅋㅋ
하지만 적당한 시기가 되면, 추구하려 한다.
좋은 아빠가 될 사람을...
뭐, 여전히...
아니 여전히가 아니라,
이미지에 현혹된 어린 인식이 아닌 깊은 성찰의 결론으로서,
전보다 한층 확고하게,
결혼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생에 한 번이라도 아이를 나아 키우고 싶고
아이를 낳아 키우기 위해서는 결혼을 안하는 것보다 하는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적당한 시기가 되면 좋은 아빠가 될 남편감을 추구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적당한 시기가 영 오지 않는다면,
그리고 내 인생이 영 가정과 양립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나아간다면(그럴 가능성이 꽤 높다. T.T)
추구하지 않고, 결혼도 '내가 낳은 아이'도 포기한다 하더라도
인생 억울할 것 없다고 생각한다.
생각하게 되었다. ^^

* 이제는 남들 결혼 소식에
많이 의연해졌다. ^^
조금만 더 지나면
완전히 초연해질 것이다. ^^

예전에 알았던 어떤 아저씨(진짜 아저씨. 큰 아이 중학생 작은 아이 유치원생.)가 당신 친구들은 '낭만적'인 것을 좋아한다면서 예를 하나 들었는데, 친구 한 분은 여자를 납치해서 딴 데 가서 몇 년 살다 나타났다고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몇 분의 아줌마와, 나와, 내 또래 아가씨 한 사람은 입을 모아 그게 무슨 낭만이냐고 했다. 아저씨는 낭만적이라고 주장했다.

최근에 우리 애인이랑 그 얘기를 하게 됐는데, 그거 낭만 맞다고 한다. 남자의 로망이란 '그녀를 위하여 내 모든 걸 버린다'는 원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녀를 보쌈해다가 몇 년간 피난살이를 하고 온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 - 직업과 인간관계와 기타 등등 - 을 그녀를 위해 포기한 것이니 낭만 맞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여자 독자들이라면 입을 모아 말할 것이다.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고. 둘이 죽도록 사랑하는데 부모형제가 반대해서 어쩔 수가 없더라, 그래 둘이 손잡고 어디 멀리 도망가서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았다, 이거라면 여자에게도 낭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납치'는 절대 낭만의 요소가 될 수 없다.

그러면 여자의 낭만이란 뭘까. 애인을 이해시키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달콤하고 촉촉하고 부드러운 것, 그런 느낌인데.. '그녀를 위하여 내 모든 걸 버린다'는 식으로 한 마디로 꿰어 낼 원리란 게 있을까?

일단은 말했다.
정서적 친밀감이 가장 중요해.
근데 또 막히는 거다. 정서적 친밀감이 전제된 상태라면 다 되는가? 애인이 '이렇게 한다면 어때? 낭만 맞아?'라고 질문하는 것에 답하다 보니 '럭셔리' 비슷한 개념이 나오는 것 같다. 으음, 근데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고, 여자들이 꿈꾸는 '낭만적인 프로포즈', '낭만적인 여행', '낭만적인 기념일', '낭만적인 결혼생활' 뭐 이런 것들이 대개는 돈 드는 아이템들을 필요로 할 때가 많지만(하다못해 촛불 한 자루라도 밝히려면 초값이 든다. 촛대까지 구비하려면 촛대값까지 든다.) 그렇다고 액수나 화려함 자체가 절대적인 잣대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액수가 들기로 친다면 보쌈은 촛대 하나 사는 것의 수십배의 돈이 든다.)

하루동안 용산전자상가를 돌아다니며 낭만적인지 아닌지 모를 쇼핑을 같이 하고 나서 나진상가 맞은편 롯데리아에 앉아 쉬다가 하나는 정리가 됐다. 아까 그 납치 이야기가 왜 낭만이 아닌지.

남자 입장에서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고 했을 때 '그녀를 위해'는 사실 두 가지 의미가 될 수 있다. 'to HAVE her, to make her mine'과 'for her'.

전자의 경우라면 여자 입장에서 낭만이 되기 어렵다. 그건 공포다. 나는 싫어 죽겠는데 나를 보쌈해 가서 내 삶의 뿌리를 뽑아 버리고 좋지도 않은 당신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버린다면 그게 어찌 낭만인가. 경우에 따라 세월이 흘러 그런 당신이라도 정붙여 살다 보니 이것이 사랑인가부다 그렇게 될 가능성은 없잖아 있겠지만 낭만은 아니다. 나에게 전혀 친밀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방식으로 맨날 쫓아오고 잡으려 들고 구속하려 드는 당신은 나의 낭만이 될 수 없다. 당신은 나의 공포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더 힘이 세고, 폭력을 잘 사용하고, 극단으로 쉽게 나아가며, 잘 알지도 못하는 사회구성원으로부터 쉽게 동의와 지지를 얻어내는(요건 나중에 따로 자세히 풀겠다) 것을 생각한다면 당신은 내게 내 존재 자체를 걸고 마주치는 극도의 공포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낭만의 필요조건이 맞다. 나를 위해 쪽팔림을 무릅쓰고 큰 꽃다발을 들고 사람 많은 거리거리를 지나 나를 찾아온 당신은 나의 낭만이다. 나를 위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초가집을 짓고 내게 손 내미는 당신은 나의 낭만이다. 나를 위해 부모님의 선 보라는 압박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당신은 나의 낭만이다. 나를 위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결심하는 당신은 나의 낭만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가요의 노랫말이나 드라마 속에서 '너를 위해' 떠나는 남자는 여자에게 낭만이 맞다. 물론 남자의 낭만은 될 수 없을 것이 뻔하다. 남자에게 '너를 위해', '그녀를 위해'라는 말은 첫번째와 두번째 뜻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여자에겐 낭만의 적이 될 수도 있는 첫번째 뜻에 치중되어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너를 위해 떠날 거야'라는 고백은 여자에게는 슬픈 낭만이 될 수 있지만, 남자에게는 여자를 위해 자신의 전 존재를 내던지지 못하는 비겁쟁이의 변명 외에 다른 것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아하, 정리해 보자. 여자의 낭만에 대해서.
일단은 정서적 친밀감, 사랑의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진정 나를 위해 이루어지는 남자의 희생(크든 작든, 물질적이든 감정적이든)과 배려 또한 필요조건이다. 그리고 크든 작든 그 상황에 적합한 따뜻하고 촉촉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느낌을 자아내는 어떤 아이템 또한 필수 조건인 것 같다. (그게 꼭 비쌀 필요는 없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과자 사은품 반지를 기억하라. 물질적인 아이템이 정 없다면 남자의 어떤 행동이나 말이 그 아이템이 될 수도 있다.)

이 정도면 여자의 '낭만'을 정의하는 데 충분할까? 읽으시는 분들의 리플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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