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한의학과 내 학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3. 범아시아적으로, 성을 매개로 취약한 위치에 놓인 여성들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도록 돕는 일.
* 스물네 살에 나는,
인문대 대학원에 입학했었다.
나는,
결혼 같은 거 하는 여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고
한국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그냥 사는 사람들은 미쳤거나 무능력한 사람들 뿐이라고 생각하는
다소 과격한 머릿속을 가진 애였다.
(다소라기엔 좀 많이 과격해 뵌다.-_-;;)
그 때에 나는
작년 여름까지 나의 남자친구였던 사람을 사귀기 시작했다.
그는 어서 결혼을 하고 싶어했고
한국에서, 친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사는 것을 좋아했다.
* 그와 나의 이런 성향이 단적으로 드러났던 것이 여행에 대한 취향이다.
나에게 여행은 나를 얽어맨 것들에서 벗어나 나를 만나는 기회였다.
당연히 여행은 혼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여전히 한다.
여럿이서 가는 여행도 그 나름의 의미와 재미가 있지만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여행이란 관광버스였다.
관광버스 대절해서 친한 사람들 다 불러 태우고,
심심하지 않도록 플레이 스테이션과 게임씨디, 각종 디비디 브이씨디를 싸갖고 가는 것.
그게 그가 꿈꾸는 여행이었다.
그 때는 그가 내 남자친구였고 내 옆에 있었기에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지금 하자면
그럴려면 왜 여행을 가는데?
수많은 친구들도 있고 게임기도 있는데
여행에서 어떤 새로운 것을 얻을 건데?
새로운 것을 얻지 않을 거라면, 뭐하러 여행을 가는데?
* 나는 인문대 대학원에 들어갔고,
흔히 그러하듯 석사를 마친 후 박사로 유학을 가서 어떻게든 백인들이 사는 나라에 자리잡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 나에게,
어서 가정을 꾸리고 싶어하는,
사귄지 두 달만에, 자기 부모님의 결혼하라는 성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독일이나 미국이나 이런 데 사는 것하고는 전혀 상관없게 생긴
그는
아무리 좋아도
부담스러운 사람이었다.
어느 날엔가, 마을버스를 내려 짧은 숲길을 지나 인문대 건물로 내려가는 길을 함께 걸으며
내가 물었었다.
내가 만약에 미국 같은 데 교수 자리를 얻으면 어떻게 할 건데?
그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지금 닥친 일이 아니니까 나중에 생각하자고.
어딘지 석연치 않고 탐탁지 않은 기분이었으나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라는 그의 말은 맞게 들렸으므로 입을 다물었다.
그저 막연하게,
그 사람은 나의 꿈과 나의 커리어를 외면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만 5년도 넘는 시간동안
그의 그 말과 그 태도가 나를 옭아매었다.
내 하고 싶은 대로 하자면 나는 온 힘을 다해 백인들의 나라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불분명한 대답을 내세우면서
사실은 나랑 결혼해 한국에서 자기 가족과 자기 친구들과 자기 커뮤니티 속에서 살려는
외국에 살기는 커녕 외국에 여행 가려는 생각조차 않는
(위에서 말했지만 그의 관광버스 개념은 나의 여행개념과 전혀 다르다.)
그런 남자와 버젓이 사귀고 있으면서
그런 준비를 혼신을 기울여 할 수는 없었다.
그건 그와 헤어짐을 준비하는 것과 같이 여겨졌고, 차마 그렇게는 할 수가 없었다.
사실은 그를 사귀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그를 그만 만나고 그에게서 도망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번번이 포기했다.
어떨땐 생각으로 그치고,
어떨땐 헤어지자는 말을 하러 나갔다가 그만 그 말을 다시 거두고야 들어왔고,
어떨땐 휴대폰을 끄고 잠적했다가 며칠만에 나타나 다시 그를 만났다.
로맨틱하게 말하자면 그건 일종의 '사랑의 불가사의'였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내 인생을 사랑한다던 내가,
남자 때문에 인생 말리는 여자 우습게 보던 내가,
결혼 따위를, 그것도 한국 사회에서, 하고싶어 하는 여자는 이해할 수 없다던 내가,
그러고 있었던 거다.
말만 그럴듯하게 할 뿐 내 꿈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생각은 없던 그를,
결국엔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내가 잘 해 주면' 한 사람이 자기 신념과 인생을 포기하고도 오로지 그의 아내라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여겼을 뿐인 그를,
지가 지금 날뛰어봤자 결혼해봐라 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인 그를,
그렇게 좋아 죽는다고 잡고 있었던 거다.
결혼을 원하고 태어난 땅에 살고 싶어하는 '정상적인' 그에게 화답하지 못하는
결혼을 원하지 않고 태어난 땅을 떠나고 싶어하는 '비정상적인' 나를 자책하고 탁하고 꺾으려고
5년도 넘는 세월을 '여절여차여탁여마' 하고 있었던 것이다.
5년이나 지나자, 하늘도 감동을 했는지
마침내 내 마음이 깨지고 떨어지고 갈아져서
결혼하고 싶은 상태가 되더라.
여전히, 결혼이라는 제도는 별로 취급해줄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이랑은 결혼을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었다.
나이가 들어 또래들이 결혼을 하고, 부러울 만큼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한 몫 했으리라
어떻게 할 수 없이 쌓여온 세월도 한 몫 했고
정말로 내가 으깨지고 갈아져서 '정상'에 가까워진 부분도 있었으리라.
그런데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고 보니
그는 별로 결혼하고 싶은 상대가 아니었다.
* 이제 벌써 열 달 가까이 지났다.
이젠 좀 많이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누구 결혼한다 소리만 들으면 뒤집어진다.
겉은 딱지가 앉았어도
속은 여전히 끓탕인 거다.
결혼을 되게 좋아해서도 아니고
그 사람을 여전히 못 잊어서도 아닌데
그런데 마음에 든 습은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모난 돌을 깨어내고 갈아내는 노력으로,
결혼하려는 욕구를 만들어 왔고 거의 손에 넣을 뻔했는데
애초에 좋아하지도 않았던 거지만 거의 들어올 뻔한 걸 잃은 그 혼란은
꽤나 오래 가는 것 같다.
처음부터,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 떄도 알았더라면
그렇게 미적지근하게 발을 빼며
내 꿈에 동참하지 않으려는 남자는 만나는 게 아니었는데.
* 엊그제 동기 동생들과 함께 경혈학 교수님께 찾아갔다가
미국 쪽으로 진출하고 싶다는 동기에게 교수님께서 해 주시는 말씀을 듣다가
아, 내가 잘못 끼운 첫 단추가 거기였구나, 깨달았다.
스물넷 아깝고도 아까운 나이에 내꿈을, 내 느낌을 무시한 죄로
나는 기나긴 방황과 어둠, 그 끝의 허무와 아픔을 겪은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 떄도 알았더라면,
지금 만나는 스승들을 그 때 만났더라면..
부질없는 이런 소리들을 한 번 중얼거려나 본다.
* 그래도 나
이렇게 만나게 된 스승과 멘토들에게 감사하고
내가 나보다 조금 어린 친구들에게 뭐라도 경험에서 나온 말을 해 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마침내 파묻혀버리지 않고 어쨌든 벗어나온 내가 소중하다.
그리고
그 불가사의한,
스스로 지어냈던 끓탕 또한
불가해한 사랑의 기억으로서
소중하게 생각할란다.
치과도 '웰빙' 맞게 바꿔야 - 문화일보
웰빙이랑 까페랑 무슨 상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목표는 다를 지언정,
내가 구상하고 있는 한의원의 개념과 상당히 비슷한 개념의 치과다.
--;;
아 역시, 빨리 하고 봐야 한다.
내가 97년도에 한의대 갔음 벌써 면허 따고 부원장 거쳐 이제 개원 준비할 때 됐을 텐데..
(근데 사실, 내가 97년도에 한의대 갔음 이런 생각 못했을 거다.)
나는 '교육' 기능이 강화된 한의원을 꿈꾼다.
이건 한의대 오기 전, 야메 전통 의학을 배우던 시절부터 가지게 된 생각인데,
그 당시의 생각: 일본풍으로 단순도식화한 오행 이론을 배우면서,
이렇게 쉽게 배울 수 있으면서도 유익하고 '양의사들의 횡포에 맞설 수 있는' 이론은
하루 빨리 널리 보급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사람 몸이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되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교육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그 교육이 꼭 음양오행이나 침구법, 라디오 동의보감류의 약선음식 강의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람 몸은 달랑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가 전부가 아니며
병도 물질의 어그러짐만이 아니다.
그러니 醫者가 환자를 바른 삶으로 인도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약과 침을 쓴다고 해도 환자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다.
그러므로 醫者는 스스로 바른 삶을 살고 바른 길을 모색해야 하며
내게 환자로 찾아온 사람뿐만 아니라 연 닿는 한 모든 세상 사람이
바른 길을 가고 바른 삶을 살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서 진정한 醫者는 선생 역할을 맡아야 하고, 교육에 힘써야 한다.
(나아가, 선생과 의원과 사제는 궁극적으로 서로 다른 직업이 아니라고 본다.)
이런 취지 하에... 내가 꿈꾸는 나의 한의원은..
대기실 공간이 비교적 넓고 트여 있으며, 비교적 큰 책장에 환자들에게 도움 될 책들이 가득하고, 교양 한의학 강좌, 명상 강좌 등이 상설되어 있는 곳이다. 벼락밥 먹고 사무실로 총총히 돌아가기 전에 잠시 들러 딱 10분만 머리 비우고 갈 수도 있고, 부장한테 먼 소리 듣고부터 땡기는 뒷골 부여잡고 기어들어와 원장 얼굴 보고 딱 15분만 누워 침맞으면 뒷골이 풀려 또 하루 직장에 머물 힘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삶의 비전을 생각하며 숨 고를 수 있고, 진료순서 기다리다 우연히 발견한 좋은 책을 빌려다가 지하철 출퇴근길에 읽으며 삶을 다시 아름답게 생각할 수 있고, 그런 곳이다. 집단상담 프로그램도 상설적으로 운영되고, 한의원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이 자조적으로 정신의 건강과 삶의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각종 모임이 활성화된 '살롱' 개념의 한의원. 난 그런 한의원을 꿈꾼다.
근데, 선배 한의사들이 여지껏 이런 델 못 만들었다는 걸 보면 이게 상당히 비현실성의 수위가 높은 '꿈'인 모냥이다. 아주 기초적으로, 책장 들여놓는 것만 해도, 공간 넓어지면 임대료 올라가는 건 어쩔 것이며, 책관리라는 골치아픈 업무는 어쩔 것인가.
그러나 이게 꼭 꿈이란 법은 없다. 치과도 나왔는데 한의원이 못 하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더 모은다면 더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