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알버트 슈바이처 지음, 송영택 번역, 문예출판사, 1999년
알버트 슈바이처가 지은 책이다. 그의 초기 아프리카 생활에 대한 수필인데, 무척 재미있다.
'토인'이라는 후진 느낌의 단어가 계속 등장해서 조금 불편했는데, 아프리카인들을 그토록 사랑한 그였지만 그의 시대의 언어에 지배되었을 것이라는 추측. 혹은 번역한지 꽤 된 책이어서 번역자가 엄한 단어 - 원주민이나 흑인이나 정도로 번역할 단어 - 를 토인으로 번역했을 지도..
슈바이처는 나이 스물에 생각했단다. 20대는 예술과 학문을 위해 살고 30대는 봉사하며 살겠다고. 어떻게 스무살짜리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놀랍다. 그 때 그 시대가 지금 이 시대와 달랐다고 해도 말이다.
하여튼 그래서 슈바이처는 20대를 목사겸 오르가니스트로 살았고, 바흐의 생애에 대한 책을 출간하여 그 인세로 첫 아프리카행의 경비 상당부분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건 서른이 넘어서이다. 의학 공부에 7년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니 아프리카에 간 건 거의 마흔이 다 되어서였겠다. 뭔가 삶의 희망이 생기는 듯한 대목이다. ㅋ
이 책을 읽으면서 작금의 아프리카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이해가 생겼다. 그리고 할리우드 모험영화에나 나오는 줄 알았던 몇 가지들이 실존한다는 것을 알았고.. (예를 들어서 순식간에 덩치 큰 포유류도 뼈만 남기고 뜯어먹어버리는 열대의 개미라든가....)
아프리카나, 의료봉사나 하는 주제들보다도, 지금 이 자리에서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예컨대 이것.
아프리카는 아직 국경 단위의 정착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가 식민지가 되었다. 슈바이처의 글에 의하면 그 곳의 기후와 자연환경 속에서 '작물'이랄 만한 것이 제대로 자랄 수도 없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자라버리고 해는 너무 뜨거우므로. 물론 아프리카 원주민들도 경작이나 뭔가 키우는 일을 하기야 했다. 그러나 그 종류나 성격은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하는 것과는 달랐던 것 같다. 단적으로 감자나 밀 같은 건 물론 쌀도 키울 수가 없는 환경이란다. 그러다 보니 우유가 주식인 부족도 있고 바나나가 주식인 부족도 있고 그랬겠지. 유럽이나 아시아 같은 개념의 경작생활이 불가능했으니 유럽이나 아시아 같은 개념의 문명과 사회와 국가가 발전하는 것도 불가능했겠지.
그들은 자연에서 필요한 것들을 얻으며 작은 단위의 사회로 무리지어 살았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땅을 '식민지'로 삼고, 그들의 노동력을 싼 값에 부려먹으려 작정한 백인들이 몰려왔다. 돈을 주고 일을 시키려니, 어헛, 그들은 돈 개념도 없고 돈이 필요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니 백인들이 원하는 대로 노동을 할 리가 있나. 그래서 백인들은 이런 궁리를 했다는 것이다.
p152
그들의 필요를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만들어주자. 그러면 그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일을 할 것이다. 라고 국가와 상인이 같이 말하고 있다. 국가는 세금이라는 형식으로 경제적인 필요를 그들에게 준다. 이곳에서는 열네 살 이상의 어른은 모두 5프랑의 인두세를 내게 되어 있는데 이것을 배로 올리자는 안도 논의되고 있다. 아내 둘과 열네 살 이상의 아이를 일곱 가진 남자는 1년에 1백 프랑을 징수당하므로 그것만큼의 노동을 제공하든가 생산물을 팔든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인은 흑인에게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필요를 만들어낸다. 천, 도구류와 같은 유용한 것, 담배, 화장품과 같은 무용한 것, 알코올 류와 같은 유해한 것 등이다. 유용한 물품만으로는 충분한 노동 능률을 달성하기에 불충분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찮은 물건이나 브랜디가 더 낫다.
그런데 이 단락은, 그 때의 식민지 상황이나, 아프리카 사람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물론 시사하는 바가 많으나, 지금의 우리 삶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들의 필요를 많이 만들어주면 그들은 일을 많이 할 것이다, 라는 말.
여러 차례 징징댄 바 있지만 내가 잠시 다녔던 회사는 무척 박봉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그것도 아껴서 규모있게 썼다면 1년동안 꽤 돈을 모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퇴사할 때 거의 무일푼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놈의 '필요'가 많았기 때문에. 첫 월급을 탔을 때 그 액수에 기가 막혔는데(회사에서 입사할 때 월급액수에 대해 뻥을 좀 쳤었다. -_-;; 어찌어찌 신입사원 대표와 인사팀장의 만남이 주선되었는데 인사팀장, 얼굴에 인상 팍 쓰고 늦게 나타나서 '미안하다' 하더란다. 할 말이 없지 뭐.) 아무튼 그 때 80년대 중반쯤 입사하신 팀장님이 그러셨다. 자기 첫 월급이 얼마였는데, 그 돈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도 남았다고. 그러셨겠지요, 80년대 중반에 '하고 싶은 거'래야 뭐가 그렇게 많았겠습니까. 친구들 데려다가 뭔가에 곁들인 쏘주 한 번 쏘시고, 옷 한 벌 사입어 주시고, 부모님 내복 한 벌씩 사다 드리고, 영화 한 편 봐 주시고, 책 몇 권 사 주시고... 뭐 그 정도? 우리처럼 휴대폰비 내고, 패밀리 레스토랑 한 번 가고, 엠피쓰리나 휴대폰 따위를 하나 장만하고, 옷 하나를 살래도 품목이 훨씬 세분화되어서 돈 나가기가 쉽고, 그러지 않았겠지. 말하자면 그 분의 첫 월급은 물가대비 내 첫 월급보다 많기도 했을 것 같지만, 그것보다 더더욱, 그 때의 그 분은 6년 전의 나보다 필요가 적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물질의 노예'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님을 깨닫게 되는 말. 우리는 지금 독립국가에 살지만 '필요'라는 추상적인 국가에 식민지배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필요'정부에 인두세를 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더더욱 '필요국'에 예속시키는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해 직업생활을 해 나간다. 뭥미.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수많은 '필요'들에 어느 정도 반응할 필요는 없지만, 잠시 흐름 옆에 내려서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p199
아프리카에서 자기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일을 가져야 한다. 우습게 들릴는지 모르겠으나, 교양이 있는 사람이 교양없는 사람보다도 원시림 속의 생활을 잘 견디어낸다. 그것은 후자가 모르는 기분전환 방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진지한 책을 읽을 때에는, 하루종일 토인들의 불신이나 동물들의 투쟁과 싸워서 몸을 소모시키는 불쌍한 자가 아니고, 다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이렇게 몇 번이고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서 재 힘을 축적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불쌍할까? 이러한 사람은 무서운 아프리카의 무미건조로 인하여 파멸하는 것이다.
교양이라는 것에 대한 참 기막힌 통찰이다. '교양있어서'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고상하고, 남들 모르는 문학과 예술과 철학을 넘나들며 유식한 말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교양이란 즐김을 통한 자기쇄신의 능력이다. 경제적으로는 참 쓸모 없는 시 한 줄, 노래 한 곡에서 비루함을 잊고 즐거움을 얻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귀찮게 문학을 배우고 음악과 미술을 배우고 체육을 배우고 대학에 가서도 이런저런 교양수업을 들은 게 다 그렇게 즐기고 자기를 쇄신할 수 있는 채널들을 넓히는 과정이었지 않겠는가.
아무튼 이 책 읽으면서 슈바이처에게 매료되었다. 그의 다른 저서들이나 그에 관한 책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
알버트 슈바이처가 지은 책이다. 그의 초기 아프리카 생활에 대한 수필인데, 무척 재미있다.
'토인'이라는 후진 느낌의 단어가 계속 등장해서 조금 불편했는데, 아프리카인들을 그토록 사랑한 그였지만 그의 시대의 언어에 지배되었을 것이라는 추측. 혹은 번역한지 꽤 된 책이어서 번역자가 엄한 단어 - 원주민이나 흑인이나 정도로 번역할 단어 - 를 토인으로 번역했을 지도..
슈바이처는 나이 스물에 생각했단다. 20대는 예술과 학문을 위해 살고 30대는 봉사하며 살겠다고. 어떻게 스무살짜리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놀랍다. 그 때 그 시대가 지금 이 시대와 달랐다고 해도 말이다.
하여튼 그래서 슈바이처는 20대를 목사겸 오르가니스트로 살았고, 바흐의 생애에 대한 책을 출간하여 그 인세로 첫 아프리카행의 경비 상당부분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건 서른이 넘어서이다. 의학 공부에 7년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니 아프리카에 간 건 거의 마흔이 다 되어서였겠다. 뭔가 삶의 희망이 생기는 듯한 대목이다. ㅋ
이 책을 읽으면서 작금의 아프리카의 비극적인 상황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이해가 생겼다. 그리고 할리우드 모험영화에나 나오는 줄 알았던 몇 가지들이 실존한다는 것을 알았고.. (예를 들어서 순식간에 덩치 큰 포유류도 뼈만 남기고 뜯어먹어버리는 열대의 개미라든가....)
아프리카나, 의료봉사나 하는 주제들보다도, 지금 이 자리에서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예컨대 이것.
아프리카는 아직 국경 단위의 정착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가 식민지가 되었다. 슈바이처의 글에 의하면 그 곳의 기후와 자연환경 속에서 '작물'이랄 만한 것이 제대로 자랄 수도 없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자라버리고 해는 너무 뜨거우므로. 물론 아프리카 원주민들도 경작이나 뭔가 키우는 일을 하기야 했다. 그러나 그 종류나 성격은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하는 것과는 달랐던 것 같다. 단적으로 감자나 밀 같은 건 물론 쌀도 키울 수가 없는 환경이란다. 그러다 보니 우유가 주식인 부족도 있고 바나나가 주식인 부족도 있고 그랬겠지. 유럽이나 아시아 같은 개념의 경작생활이 불가능했으니 유럽이나 아시아 같은 개념의 문명과 사회와 국가가 발전하는 것도 불가능했겠지.
그들은 자연에서 필요한 것들을 얻으며 작은 단위의 사회로 무리지어 살았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땅을 '식민지'로 삼고, 그들의 노동력을 싼 값에 부려먹으려 작정한 백인들이 몰려왔다. 돈을 주고 일을 시키려니, 어헛, 그들은 돈 개념도 없고 돈이 필요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니 백인들이 원하는 대로 노동을 할 리가 있나. 그래서 백인들은 이런 궁리를 했다는 것이다.
p152
그들의 필요를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만들어주자. 그러면 그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일을 할 것이다. 라고 국가와 상인이 같이 말하고 있다. 국가는 세금이라는 형식으로 경제적인 필요를 그들에게 준다. 이곳에서는 열네 살 이상의 어른은 모두 5프랑의 인두세를 내게 되어 있는데 이것을 배로 올리자는 안도 논의되고 있다. 아내 둘과 열네 살 이상의 아이를 일곱 가진 남자는 1년에 1백 프랑을 징수당하므로 그것만큼의 노동을 제공하든가 생산물을 팔든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상인은 흑인에게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필요를 만들어낸다. 천, 도구류와 같은 유용한 것, 담배, 화장품과 같은 무용한 것, 알코올 류와 같은 유해한 것 등이다. 유용한 물품만으로는 충분한 노동 능률을 달성하기에 불충분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찮은 물건이나 브랜디가 더 낫다.
그런데 이 단락은, 그 때의 식민지 상황이나, 아프리카 사람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물론 시사하는 바가 많으나, 지금의 우리 삶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들의 필요를 많이 만들어주면 그들은 일을 많이 할 것이다, 라는 말.
여러 차례 징징댄 바 있지만 내가 잠시 다녔던 회사는 무척 박봉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그것도 아껴서 규모있게 썼다면 1년동안 꽤 돈을 모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퇴사할 때 거의 무일푼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놈의 '필요'가 많았기 때문에. 첫 월급을 탔을 때 그 액수에 기가 막혔는데(회사에서 입사할 때 월급액수에 대해 뻥을 좀 쳤었다. -_-;; 어찌어찌 신입사원 대표와 인사팀장의 만남이 주선되었는데 인사팀장, 얼굴에 인상 팍 쓰고 늦게 나타나서 '미안하다' 하더란다. 할 말이 없지 뭐.) 아무튼 그 때 80년대 중반쯤 입사하신 팀장님이 그러셨다. 자기 첫 월급이 얼마였는데, 그 돈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도 남았다고. 그러셨겠지요, 80년대 중반에 '하고 싶은 거'래야 뭐가 그렇게 많았겠습니까. 친구들 데려다가 뭔가에 곁들인 쏘주 한 번 쏘시고, 옷 한 벌 사입어 주시고, 부모님 내복 한 벌씩 사다 드리고, 영화 한 편 봐 주시고, 책 몇 권 사 주시고... 뭐 그 정도? 우리처럼 휴대폰비 내고, 패밀리 레스토랑 한 번 가고, 엠피쓰리나 휴대폰 따위를 하나 장만하고, 옷 하나를 살래도 품목이 훨씬 세분화되어서 돈 나가기가 쉽고, 그러지 않았겠지. 말하자면 그 분의 첫 월급은 물가대비 내 첫 월급보다 많기도 했을 것 같지만, 그것보다 더더욱, 그 때의 그 분은 6년 전의 나보다 필요가 적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물질의 노예'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님을 깨닫게 되는 말. 우리는 지금 독립국가에 살지만 '필요'라는 추상적인 국가에 식민지배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필요'정부에 인두세를 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더더욱 '필요국'에 예속시키는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해 직업생활을 해 나간다. 뭥미.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 수많은 '필요'들에 어느 정도 반응할 필요는 없지만, 잠시 흐름 옆에 내려서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p199
아프리카에서 자기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일을 가져야 한다. 우습게 들릴는지 모르겠으나, 교양이 있는 사람이 교양없는 사람보다도 원시림 속의 생활을 잘 견디어낸다. 그것은 후자가 모르는 기분전환 방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진지한 책을 읽을 때에는, 하루종일 토인들의 불신이나 동물들의 투쟁과 싸워서 몸을 소모시키는 불쌍한 자가 아니고, 다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이렇게 몇 번이고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서 재 힘을 축적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불쌍할까? 이러한 사람은 무서운 아프리카의 무미건조로 인하여 파멸하는 것이다.
교양이라는 것에 대한 참 기막힌 통찰이다. '교양있어서'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고상하고, 남들 모르는 문학과 예술과 철학을 넘나들며 유식한 말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교양이란 즐김을 통한 자기쇄신의 능력이다. 경제적으로는 참 쓸모 없는 시 한 줄, 노래 한 곡에서 비루함을 잊고 즐거움을 얻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에너지를 얻는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귀찮게 문학을 배우고 음악과 미술을 배우고 체육을 배우고 대학에 가서도 이런저런 교양수업을 들은 게 다 그렇게 즐기고 자기를 쇄신할 수 있는 채널들을 넓히는 과정이었지 않겠는가.
아무튼 이 책 읽으면서 슈바이처에게 매료되었다. 그의 다른 저서들이나 그에 관한 책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