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aus kommt heraus


* 종교가 무엇이든간에 현재의 한국을 살아가는 한국어 구사자들이면 거의 한 번씩은 들어본 말이 아닐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 그리고 그 유명한 노래. 개신교 CCM의 제목이자 노랫말이지만.. '하나님'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 노래의 초반부 가사는 웬만한 사람들에겐 현실 속에서 각박하고 까칠해진 가슴을 뒤흔드는 힘이 있다. 이런 말이 어딨는가, 다짜고짜 나더러 '당신'이라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란다. 이어지는 노랫말은 사실 잘 들리지도 않고 기억나지도 않는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약간은 영문 모를, 혹은 간지럽고 느끼한, 혹은 달콤하고 위안이 되는 말은 제법 충격이 세다.

노래의 전체 가사는 이렇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노래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것이겠지.
하느님께서 너를 사랑하셔서 이 세상에 내셨다. 그건 네가 태어나기 아주 오래 전부터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일이었다. 그러니 네가 태어난 것은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라 소중하고 가치로운 계획에 의한 것이었고, 너는 하느님이 심혈을 기울여 창조해낸 완성품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만들어내시고나서 보시니 참 좋았다. 너는 이토록 큰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고, 이토록 소중한 사람이다. 너의 존재 자체가 소중하고, 너의 존재 자체가 기쁨이 된다.


그러나 그런 종교적인 '하느님'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하는 개념말고도.. 나는 이 노래의 제목이 다른 측면에서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정말로 '사랑받기 위해'서, 그러니까 사랑받고 싶어서 태어나는 것

이 아닐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동양적인 윤회의 개념에 갖다 붙여보자면, 왜 생이 즐겁고 기쁘고 좋고 쉽지만은 않고 고통과 노력과 어려움도 만만치 않게 겪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또 태어나겠는가, 라고 질문해 보면 그 답은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받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다시 기독교 개념으로 돌아가 태어나는 것에 내 의지가 개입되지 않는다고 봐도, 태어난 목적은 결국 살아가는 목적과 같다고 볼 수 있다고 치면, 생의 목적이 '사랑받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한다. 이건 기독교 교리와도 배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기독교에서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 또한 사랑받으시기 위해서라고 보기 때문이다. (솔직히 난 성경을 줄줄이 외고 꿰고 있는 사람은 아니라 성경 어디에 나온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개신교 가톨릭을 막론하고 이런 말을 하고, 이런 말을 담은 노래를 부른다. 물론 그 말이 항상 '사랑'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사랑, 영광, 찬양 기타등등. 하지만 그 핵심은 결국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개체발생은 종의 발생을 되풀이 한다나 뭐 하는 소리도 있고, 성경에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대로 우리를 지으셨다고 하는 바, 하느님께서 사랑받고 싶어 사랑할 사람을 만드셨다면 사람도 사랑받고자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말이지.

* 생의 비극은 그 사랑을 받을 줄 모르는 것에서 비롯한다.

수동태가 발달하지 않은 한국어에서 '사랑하다'의 피동형으로는 '사랑받다'가 주로 쓰인다.
그러나 살펴보라. '사랑받다'는 '사랑되다'도 아니고 '사랑해지다'도 아니고 '사랑함을 당하다'도 아니다. '사랑하다'와 대비되어 'be loved'의 뜻으로 '사랑받다'라는 단어를 선택하게 되기는 하지만 사랑받는 것은 그저 수동적인 피동형은 아닌 것이다. 말하자면, 사랑받는다는 것은 'receive love'이고, 'choose to be loved'이고, 'behave to be loved'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랑을 받아들이고, 사랑받기를 택하고, 사랑받을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으면서 be loved하지 못해서 불행해 하고 be loved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더한 비극은, 사람들이 be loved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하는 행동들은 절대로 be loved하지 못할 행동들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도 나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을 상대에게 매달리고,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고 내게 즐겁지도 않은데 내게 소중한 것들을 희생하기도 하고, 관계의 진짜 문제들을 외면한 채 자기자신을 완벽주의로 달달 볶아대기도 한다.

그런데, 다시 노래로 돌아가 보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는데,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고,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다.
이미.
벌써.
불완전하고 어지러진 삶의 현상태 그대로.
당신을 부당하게 대하고 때로는 학대하는 사람들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니 부질없이 사랑을 주지 않는 사람에게 매달릴 필요도 없고
당신의 완벽하지 못함을 자책할 필요도 없고
괜한 희생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주파수를 '사랑'에 맞추고,
주의를 '사랑'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 양력 음력 모두 해가 바뀌고, 입춘도 지나고, 길었던 설 연휴도 끝나고
명실상부하게, 달력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완전히 빼도박도 못하게
2008년 무자년이 되어 버렸습니다. ^^
모든 분들께
사랑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 어느날 싸이에 접속하니
두 해 전 세상을 뜬 친구가 내게 '네이트온 친구' 신청을 했단다.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답은 하나.
싸이에 접속하면 자기 일촌들에게 자동으로 네이트온 친구 신청을 하도록 팝업이 뜨곤 한다.
친구의 가족 누군가가 접속했다가,별 생각 없이 팝업에서 '예'를 클릭했겠지.

며칠을 두고 고민했다.
이걸 수락해야해 거절해야 해.
거절하자니 뭔가 미안했고
수락하자니 네이트온에 접속할 때마다 어떤 감정을 겪을 것이 부담스러웠고
이도저도 않고 두자니 자꾸만 마음이 아프고 신경쓰였다.

* 그러다 방금 그 친구 미니홈피에 가봤는데,
이건 웬걸! 새 글이 가득 떠 있는 것이다.
녀석의 어릴적 사진과 대학졸업식 사진이 올라 있었다.
그리고 사진마다, 나는 모르는 어느 철없는 일촌의 리플.
마치 녀석이 살아있기나 한 것처럼.

방명록에 가 보니,
녀석이 간 후로 늘 그렇듯 친했던 친구 몇 명이 녀석을 그리며 쓴 글들이 있었고
그사이로, 그 철없는 일촌이 영문몰라 하며
'**님 새해 인사하러 왔는데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이에요? 글들이 왜 심상치 않아요?'
하고 있었다...

* 그러다 녀석 아버님의 홈피로 건너가 보니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녀석의 미니홈피에 새로 올라온 사진의 코멘트들이
다 아버님 미니홈피의 글과 같은 스타일이었다.
아버님께서 그러셨구나.

* 아버님께 일촌신청을 하고..
녀석 이름으로 된 네이트온 친구신청을 수락했다.
며칠 전부터 녀석의 휴대폰 번호와 같은 번호의 차를 자꾸 보게 되면서
죽은 녀석과 살아계신 녀석의 아버님이 자꾸 생각났었는데...
아버님을 챙겨야 할 타이밍이라는 신호인 모양이다.
녀석이 죽고 나서, 아버님 챙겨드리겠다고 맘은 먹었었지만
나도 힘들었고...
그래서 아버님께 연락드리는 것 자체가 맘 단단히 먹어야 하는 일이었기에
잘 그러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젠 할 수 있을 것 같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님은 서울에 계시고 나는 대전에 있고
아버님을 일로 바쁘시고 나는 공부로 바쁘고(꽥!)
그러니 자주 뵙는다거나 하는 건 꿈조차 꾸기 어렵고
딸이 아닌 내가 정말 '딸처럼' 한다는 것은 또한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하는 만큼은 해야지.
그게 사람 사는 일이지.

*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한 많이
사랑하고
감사하고
누리며 살자.
절대적으로 반드시 꼭 언제나 기억하고 행해야 할,
생의 첫번째 강령.

국제백신연구소 International Vaccine Institute


국제백신연구소(IVI)는 UN산하 기구였다가 지금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국제기구입니다.
백신을 연구개발하고, 백신이 특히 중요한 개발도상국에 백신을 보급하는 일을 합니다.
서울대학교 내에 위치하고요..
한국에 본부를 둔 현재로선 유일한 국제기구이며
한국정부가 부지와 운영비의 3분의 1을 제공합니다.


우리학교와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생들 중 희망자들이 모여서 함께 한 견학이었고요
미국인인 존 클레멘스 사무총장님이 직접 나와서 연구소가 하는 일들에 대해 설명해 주고
학생들의 질문도 받아주셨어요.
클레멘스 총장님은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생물학, 예일대에서 의학을 공부한 양방의사이시고요
증조부부터 의사이셨던 의사집안 출신이시고,
부인도 예일대학교 병원에 근무하시는 의사시랍니다.
IVI에 오시기 전에는 미국립보건원(NIH)에 계셨다고 합니다.

비교적 교육수준이 높고 잘 사는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감염성 전염병은
'지나간 옛 이야기'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감염성 질병이 지나간 이야기가 아닌 곳과 아닌 사람들이 여전히 지구상에 많습니다.
1년에 2백만 명의 아이들이 단순 설사로 죽는답니다.
위생상태와 영양상태가 좋지 않고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곳에서는
아직도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일이 흔한 것이지요.
이외에 조류독감처럼 새롭게 대두되는 전염병,
생물무기의 가능성에 대비해서
(예컨대 사라졌다고 공식 선언된 천연두는 여전히 실험실에 남아있고 생물무기의 가능성에 대비해 백신연구가 계속 진행 중이랍니다.)
잘 사는 나라들을 위해서도 백신 연구가 꼭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약회사에선 더이상 백신연구에 공을 들이지 않죠. 돈이 안 되니까요.
그래서 IVI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백신 연구소에 대한 소개가 끝나고 질문 시간이 주어졌을 때,
한 한양대학교 학생이 백신연구소를 통해 이루고 싶은 총장님의 꿈은 무엇이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 분이 하신 대답은 'Saving people.'이었습니다.
참으로 인상깊은 순간이었습니다.

진료실에 앉아 직접 환자를 만나고, 가운을 입고 일하는 의사가 아니라 해도
저 분은 진짜 의사이시구나, 그런 생각.
나도 의사로서의 삶에 대해 더 넓고 큰 꿈을 꾸도록 지지를 받은 느낌이었어요.
시야가 확 트인 느낌.

연구실들이 늘어선 복도를 휘리릭, 수박 겉핥기도 아니고 겉 보기 정도로 돌아보는 시간도 마련됐습니다. 그 때는 연구 책임자인 분께서 나와 좀 다른 각도의 설명을 해 주셨는데, 그 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온 인류 중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꽤 큰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백신을 연구하자면 감염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을 다루어야 하고 그건 곧 위험에 직면하는 일이니까요. 연구실 내의 공기를 거르는 헤파필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실감이 났지요.

참 감사한 세상입니다.


* 최근에 읽은 공지영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서문에서
공지영이 이런 문장을 써 놓은 걸 봤다.
'우리는 모두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어한다는 것,
그것 외의 다른 것은 모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정확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대략 이런 말.
오래 두고 가슴에 남는 말이다.

* 최근 한 1년 넘게, 계속 꾸준히는 아니지만 얼추 꾸준히
상담이나 상담 비슷한 작업을 계속 해 왔다.
그리고 내 주변엔 정말 빡세게 상담을 받는 사람들 두 명이 있었다..
그 시간이 길어지고, 자기 내면으로 들어간 깊이가 깊어지면서
서로 다른 문제로 서로 다른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기 시작한 세 사람은
결국 똑같은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싶었다는 것.
그런데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
결국엔 그것,
어릴 적 엄마품에서 밀려난 어느 기억, 엄마 그늘에서 받은 어느 상처,
그런 것이 자라서 병도 되고, 모난 성격도 되고, 문제행동도 된다.

*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상처를 입으면 자기내면 한 구석에서 그 나이를 유지하고 만다.
다섯살짜리 상처입은 아기가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자기 아기에게 좋은 것을 줄 수는 없다.
아기에게 좋은 것을 실제로 주는 부모가 되려면
부모 스스로가 먼저 자기 내면 안의 그 다섯살 짜리 자아를
부모가 되기 충분한 나이로 키워야 한다.
그건 그렇게 간단한 작업은 아니다.
어디 가서 상담을 받든, 치료를 받든, 명상 같은 걸 통해 높은 수준에 이르든,
아무튼 자기 내면에 관한 작업을 해야 한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지만,
자기 상처를 인정하고 그걸 적절히 처리하기 위해
자기를 냉정히 마주보고 필요한 도움을 찾아가는 사람 역시 드물다.
그런 것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라도,
아기 부모가 되기 전에 실제로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도 많지는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크든 작든 자기 문제를 그대로 떠안은 채로
기혼자가 되고, 부모가 된다.
그리고 그 상처와 문제들은 그대로 자식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되고
자식들에게 문제가 비슷하게 전이된다.

* 나는 지난해 가을 엄마랑 같이 어느 수녀님께 면담하러 다니면서 그걸 깨달았다.
수녀님께서 권해주신 방법으로 엄마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엄마가 육십 먹은 엄마로가 아니라,
층층한 대가족 속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자란 늦둥이 막내딸,
낯선 도시로 나와 오빠댁에 얹혀살며 여고를 다니던 10대 소녀,
직장생활하며 별 큰 낙도 꿈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던 20대 처녀,
그 모든 상처들을 그대로 지닌 채 아빠와 결혼을 하던 서른 언저리의 젊은 여자로 보였다.
그리고 외할머니로부터 엄마로, 엄마로부터 나로, 눈덩이처럼 굴러온 무언가가 보였다.
그걸 인식하고 나서부터 엄마와 나의 관계가 조금 달라졌다.

* 요즘 주위에서 내 또래들이 아기를 낳고 키우는 걸 보면서 더더욱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엄마들은 다 위대하다.
부모들은 모두 아이를 사랑한다.
그러나 아이를 사랑하고, 자기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어하는 모든 부모가
아이에게 실제로 좋은 것만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나은 경우는, 엄마 아빠 자신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다.
하지만 자식은 커녕 결혼도 않은 홀홀단신 몸으로도,
평화를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답없고도 어려운 문제에 대해
자기 나름의 답안지를 충분히 작성해 놓은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들은 당장 엄청난 현실에 직면해야 한다.
내가 먹여주지 않으면, 내가 씻겨주고 기저귀를 채워주지 않으면,
내가 재워주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 24시간 돌봄을 요구하는 존재.
홀홀단신일 때도 쉽지 않던 마음의 평화, 삶의 철학이 갑자기 생길 수는 없다.

* 어쩌면 나의 '미혼' 시절이 길어지고 있는 건
내 내면에 그만큼 정리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따로 정리하지 않아도 잘 살고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은 일찍 결혼하고 일찍 부모가 되지만
(그러니 괜찮은 남자 순서로 장가간다는 말은 일부 사실일 거다.)
정리도 안 되고, 정리 안 되면 잘 살기도 어려운 나같은 인간은
미혼 기간을 좀더 늘리면서 마음의 평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 생뚱맞지만
모든 아기들이 충분히 사랑받고 자랐으면 좋겠다.
아이들 몸과 마음 속, 사랑이 부족해 뻥 뚫린 빈자리가 자라
이상성격도 되고, 이상행동도 되고, 병도 되고, 범죄도 되고, 사회문제도 되고
그렇다고 믿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뻥 뚫린 빈자리에는
저마다 필요한 하느님의 섭리가 깃들기를.
아멘.

12월 언젠가 을지로3가역에서 환승하러 가는데
아동학대방지법제정 서명을 받고 있더군요.
아동학대 사례 사진 전시와 함께...
평소에 열렬히 관심두고 무슨 활동을 한 적은 없지만
적잖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문제라서 서명을 헀습니다.
그랬더니 후원도 권유하시던데..
솔직히 수입이 없는 처지라 -_-;; 무모한 약속을 할 수는 없었고
다른 분들에게 후원 권유할 테니 종이를 달라고 했지요.
안내 팸플릿 같은 걸 받아 왔습니다.
카메라도 없고 스캐너도 없으니 팸플릿 자체는 못 올리고...

유엔경제사회이사회에서 포괄적 협의지위를 부여받은 국제비영리민간단체라는
(좀 어려운데, 유엔에서 지원받는 단체라는 뜻인 듯합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을 소개합니다. 클릭~!

어린 시절 학대를 받으면
뇌의 일부 신경경로가 손상을 받아
남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사라진다더군요.
이해가 안 가는 흉악범들의 경우
대개 어린 시절 학대받은 경험이 있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느껴질 피해자의 고통이라는 것에
아무 감이 없기에 흉악범죄를 뚝딱 저지를 수 있는 거라고..
꼭 흉악범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엔...
남한테 공감해 주지 못하고 남에게 상처주는 사람들이 많죠.
그래서 각자들 상처를 받기도 하고..
사회적인 여러 문제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니 학대받는(혹은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건
'나와 크게 상관은 없는 그 아이'를 위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는 사회,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일입니다.
많은 관심 가져 주시고요...

꼭 이 단체가 아니라도 다른 단체를 통해서 혹은 개인적으로..
모든 어린이들이 사랑받고, 행복하게 자라
결과적으로 이 세상이 사랑과 행복과 평화로 가득차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에게
사랑과 평화와 행복과 기쁨과 건강 가득하소서!♥

1.
"그러다가 죽겠어요!"
"그러니 제발 나를 좀 내버려 두시오!"

귀여운 그림과 아담한 분량으로 마치 어른을 위한 어여쁜 동화인 양 유행했지만 사실 읽어보면 상당히 엽기였던 독일 소설 '좀머씨 이야기'의 핵심 대화. 좀머씨 그러다가 죽겠어요. /그러니 제발 나를 내버려 두라구요. //Heraus씨 그러다가 죽겠어요. /그러니 제발 나를 내버려 두라구요. //그러다 죽겠어요. /그러니 제발 나늘 내버려 둬요 Heraus씨!

2.
큰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12년 전 먼저 돌아가신 우리 아빠의 옆자리
양지바른 곳에
큰아버지의 산소를 쓰고 왔다.
다음번엔
부루마불 게임이나
그게 어른들 쓰기 너무 어렵다 싶으면
다양한 놀이에 쓸 수 있는 축구공이라도 하나 사갖고 가서
두 분 가운데에 놔 드리고 와야겠다.
아님, 바둑판이랑 바둑돌을 놔 드릴까.
알까기, 오목, 바둑, 각종 창의적인 게임이 가능한데.

재미나게 노세요 두 분.
노는 틈틈이
살아있는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3.
아빠가 돌아가셨을 땐 내가 너무 어렸고
다행스럽게도 내 주변엔
어린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되도록
장례절차를 보아 주시고
우리 식구들을 돌봐 주신
많은 분들이 계셨다.
그래서 우리 세 식구는 그냥 충격받고 슬퍼하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아니라 나만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나이가 좀 들고,
아빠보다는 한 발 더 건넌 큰아빠의 일이다 보니,
이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 때 어떤 어떤 분들에게 무엇을 받은 것인지.
참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이렇게 굳건하게 서로 등을 받쳐줄 수 있고
서로 안아줄 수 있는
가족과 친지들이
참으로 소중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4.
아들만 둘 두신 막내 작은아빠께
슬며시 다가 팔짱을 끼고
"작은 아빠!"
"왜?"
"사랑해요!"

그런 말 난생 처음 들으신다고 했다.
누구한테도 들은 적 없으시다고. ㅋ
"아들만 둘 있어서 이런 말씀 안 들어보셨죠?
실수하신 거라니깐~ 딸을 낳았어야죠!"
"그러게."
ㅋㅋ

살아있을 때,
살아가는 동안,
가능한 한 많이 말해야겠다.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사랑해!

(에고 근데,
연애결혼하셨는데도 정말 못 들어보셨어요?
부모님 세대는 그런 말씀 안 하시나요?
속으로 그런 의문이 들었는데,
물론 감히 진짜 여쭙진 않았다. ㅋ)

5.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이 껴안아야겠다.

6.
그러다 죽겠어요 Heraus씨!

알아요 언젠가 죽을 거에요.

시기를 선택할 수 있다면
80대로 하고 싶군요.
많이, 크게 사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삶을 기쁨과 희망으로 채워주고 난 후이길 바라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느 좋은 저녁, 사랑하는 사람들을 잔뜩 만나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많이 웃고
서로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소중한 당신이 나와 함께 있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나누고 돌아와
포근한 면 이불 속에서 자다가 가는
그런 아름다운 방법이면 좋겠군요.
내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
숨뇌(연수)가 기능을 멈춘 후로도
내 심장이 조금 오래 뛰어 주면 좋겠군요.
그러면
나의 장기들로
어떤 사람인가가
생의 고통을 덜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 테니까요.

장례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면
화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니 이젠 나를 좀 내버려 두어요.
언젠가 죽을 것을 모르지 않아요.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게 죽음이라면
당신 때문에 덜덜 떨면서
좀머씨처럼 깡말라가지 않겠어요.

그러니 날 좀 내버려 두어요,
공포씨!
그러니 날 좀 내버려 두어요,
조바심씨!
그러니 날 좀 내버려 두어요,
걱정씨!

사랑과
평화와
행복과
기쁨과
여유와
희망과
생동하는 삶만 생각하기도
나는 정말 바쁘답니다!


포옹하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외롭지 않으니까.

두려움을 이길 수 있으니까.

느낌을 공유할 수 있으니까.

자신감을 키워주니까.

새로운 사랑에 눈뜨게 해 주니까.

노화방지에도 도움이 되니까. (자주 포옹하는 사람들은 더 오랫동안 젊음을 유지한답니다.)

식욕억제에 효과적이니까. (포옹을 통해서 충만감을 느끼는 사람은 덜 먹게 된다네요. 사실, 두 팔로 누군가를 안고 있는 상태에선 먹기가 좀 곤란하겠죠?! ^^:)


포옹하면 또...

긴장이 풀려요.

불면증에 도움이 돼요.

어깨와 팔 근육이 강해져요.

키가 작은 사람에게는 스트레칭 효과가 있어요.

키가 큰 사람에게는 허리 굽히기 운동이되죠.

혼란스러운 상황을 바람직한 방법으로 헤쳐나갈 수 있어요.

술이나 담배보다 건전해요. (혼자 피우고 마시는 대신 서로 안아보세요!)

우리 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 주죠.


게다가 포옹은...

민주적이에요. 누구든 포옹할 자격이 있죠!

환경친화적이에요. 포옹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니까요.

단열효과가 높아요. 열이 보존되잖아요.

휴대용이고요.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지 않아요.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요.

행복한 날을 더욱 행복하게, 견딜 수 없는 날을 견딜 만하게 해 줘요.

누군가에게 속해 있다는 느낌을 선사하죠.

우리 생의 텅 빈 공간들을 채워줘요.

효과가 오래 지속돼요. 포옹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그 따스함은 우리 마음에 울림으로 남는답니다.

뿐만 아니라 포옹은 우리 마음에 총알 대신 장미를 심어주죠.


                                                       -'포옹할까요', 캐서린 키팅 지음, 이수은 옮김, 도서출판 이레

* 시험 기간에 학교 도서관에서 너무 귀여운 책을 발견했음..

*  한국 문화에선 부모자식간에 끌어안기조차 어색한 사람들도 많지만 ..
이렇게 효과가 좋은데...
어색함을 무릅쓰고 안아봅시당~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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