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읽은 공지영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서문에서
공지영이 이런 문장을 써 놓은 걸 봤다.
'우리는 모두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어한다는 것,
그것 외의 다른 것은 모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정확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대략 이런 말.
오래 두고 가슴에 남는 말이다.
* 최근 한 1년 넘게, 계속 꾸준히는 아니지만 얼추 꾸준히
상담이나 상담 비슷한 작업을 계속 해 왔다.
그리고 내 주변엔 정말 빡세게 상담을 받는 사람들 두 명이 있었다..
그 시간이 길어지고, 자기 내면으로 들어간 깊이가 깊어지면서
서로 다른 문제로 서로 다른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기 시작한 세 사람은
결국 똑같은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싶었다는 것.
그런데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
결국엔 그것,
어릴 적 엄마품에서 밀려난 어느 기억, 엄마 그늘에서 받은 어느 상처,
그런 것이 자라서 병도 되고, 모난 성격도 되고, 문제행동도 된다.
*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상처를 입으면 자기내면 한 구석에서 그 나이를 유지하고 만다.
다섯살짜리 상처입은 아기가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자기 아기에게 좋은 것을 줄 수는 없다.
아기에게 좋은 것을 실제로 주는 부모가 되려면
부모 스스로가 먼저 자기 내면 안의 그 다섯살 짜리 자아를
부모가 되기 충분한 나이로 키워야 한다.
그건 그렇게 간단한 작업은 아니다.
어디 가서 상담을 받든, 치료를 받든, 명상 같은 걸 통해 높은 수준에 이르든,
아무튼 자기 내면에 관한 작업을 해야 한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지만,
자기 상처를 인정하고 그걸 적절히 처리하기 위해
자기를 냉정히 마주보고 필요한 도움을 찾아가는 사람 역시 드물다.
그런 것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라도,
아기 부모가 되기 전에 실제로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도 많지는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크든 작든 자기 문제를 그대로 떠안은 채로
기혼자가 되고, 부모가 된다.
그리고 그 상처와 문제들은 그대로 자식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되고
자식들에게 문제가 비슷하게 전이된다.
* 나는 지난해 가을 엄마랑 같이 어느 수녀님께 면담하러 다니면서 그걸 깨달았다.
수녀님께서 권해주신 방법으로 엄마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엄마가 육십 먹은 엄마로가 아니라,
층층한 대가족 속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자란 늦둥이 막내딸,
낯선 도시로 나와 오빠댁에 얹혀살며 여고를 다니던 10대 소녀,
직장생활하며 별 큰 낙도 꿈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던 20대 처녀,
그 모든 상처들을 그대로 지닌 채 아빠와 결혼을 하던 서른 언저리의 젊은 여자로 보였다.
그리고 외할머니로부터 엄마로, 엄마로부터 나로, 눈덩이처럼 굴러온 무언가가 보였다.
그걸 인식하고 나서부터 엄마와 나의 관계가 조금 달라졌다.
* 요즘 주위에서 내 또래들이 아기를 낳고 키우는 걸 보면서 더더욱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엄마들은 다 위대하다.
부모들은 모두 아이를 사랑한다.
그러나 아이를 사랑하고, 자기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어하는 모든 부모가
아이에게 실제로 좋은 것만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나은 경우는, 엄마 아빠 자신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다.
하지만 자식은 커녕 결혼도 않은 홀홀단신 몸으로도,
평화를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답없고도 어려운 문제에 대해
자기 나름의 답안지를 충분히 작성해 놓은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들은 당장 엄청난 현실에 직면해야 한다.
내가 먹여주지 않으면, 내가 씻겨주고 기저귀를 채워주지 않으면,
내가 재워주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 24시간 돌봄을 요구하는 존재.
홀홀단신일 때도 쉽지 않던 마음의 평화, 삶의 철학이 갑자기 생길 수는 없다.
* 어쩌면 나의 '미혼' 시절이 길어지고 있는 건
내 내면에 그만큼 정리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따로 정리하지 않아도 잘 살고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은 일찍 결혼하고 일찍 부모가 되지만
(그러니 괜찮은 남자 순서로 장가간다는 말은 일부 사실일 거다.)
정리도 안 되고, 정리 안 되면 잘 살기도 어려운 나같은 인간은
미혼 기간을 좀더 늘리면서 마음의 평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 생뚱맞지만
모든 아기들이 충분히 사랑받고 자랐으면 좋겠다.
아이들 몸과 마음 속, 사랑이 부족해 뻥 뚫린 빈자리가 자라
이상성격도 되고, 이상행동도 되고, 병도 되고, 범죄도 되고, 사회문제도 되고
그렇다고 믿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뻥 뚫린 빈자리에는
저마다 필요한 하느님의 섭리가 깃들기를.
아멘.
공지영이 이런 문장을 써 놓은 걸 봤다.
'우리는 모두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어한다는 것,
그것 외의 다른 것은 모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정확하게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대략 이런 말.
오래 두고 가슴에 남는 말이다.
* 최근 한 1년 넘게, 계속 꾸준히는 아니지만 얼추 꾸준히
상담이나 상담 비슷한 작업을 계속 해 왔다.
그리고 내 주변엔 정말 빡세게 상담을 받는 사람들 두 명이 있었다..
그 시간이 길어지고, 자기 내면으로 들어간 깊이가 깊어지면서
서로 다른 문제로 서로 다른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기 시작한 세 사람은
결국 똑같은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싶었다는 것.
그런데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
결국엔 그것,
어릴 적 엄마품에서 밀려난 어느 기억, 엄마 그늘에서 받은 어느 상처,
그런 것이 자라서 병도 되고, 모난 성격도 되고, 문제행동도 된다.
*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상처를 입으면 자기내면 한 구석에서 그 나이를 유지하고 만다.
다섯살짜리 상처입은 아기가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자기 아기에게 좋은 것을 줄 수는 없다.
아기에게 좋은 것을 실제로 주는 부모가 되려면
부모 스스로가 먼저 자기 내면 안의 그 다섯살 짜리 자아를
부모가 되기 충분한 나이로 키워야 한다.
그건 그렇게 간단한 작업은 아니다.
어디 가서 상담을 받든, 치료를 받든, 명상 같은 걸 통해 높은 수준에 이르든,
아무튼 자기 내면에 관한 작업을 해야 한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지만,
자기 상처를 인정하고 그걸 적절히 처리하기 위해
자기를 냉정히 마주보고 필요한 도움을 찾아가는 사람 역시 드물다.
그런 것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라도,
아기 부모가 되기 전에 실제로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도 많지는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크든 작든 자기 문제를 그대로 떠안은 채로
기혼자가 되고, 부모가 된다.
그리고 그 상처와 문제들은 그대로 자식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되고
자식들에게 문제가 비슷하게 전이된다.
* 나는 지난해 가을 엄마랑 같이 어느 수녀님께 면담하러 다니면서 그걸 깨달았다.
수녀님께서 권해주신 방법으로 엄마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엄마가 육십 먹은 엄마로가 아니라,
층층한 대가족 속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자란 늦둥이 막내딸,
낯선 도시로 나와 오빠댁에 얹혀살며 여고를 다니던 10대 소녀,
직장생활하며 별 큰 낙도 꿈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던 20대 처녀,
그 모든 상처들을 그대로 지닌 채 아빠와 결혼을 하던 서른 언저리의 젊은 여자로 보였다.
그리고 외할머니로부터 엄마로, 엄마로부터 나로, 눈덩이처럼 굴러온 무언가가 보였다.
그걸 인식하고 나서부터 엄마와 나의 관계가 조금 달라졌다.
* 요즘 주위에서 내 또래들이 아기를 낳고 키우는 걸 보면서 더더욱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엄마들은 다 위대하다.
부모들은 모두 아이를 사랑한다.
그러나 아이를 사랑하고, 자기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어하는 모든 부모가
아이에게 실제로 좋은 것만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나은 경우는, 엄마 아빠 자신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다.
하지만 자식은 커녕 결혼도 않은 홀홀단신 몸으로도,
평화를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답없고도 어려운 문제에 대해
자기 나름의 답안지를 충분히 작성해 놓은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들은 당장 엄청난 현실에 직면해야 한다.
내가 먹여주지 않으면, 내가 씻겨주고 기저귀를 채워주지 않으면,
내가 재워주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 24시간 돌봄을 요구하는 존재.
홀홀단신일 때도 쉽지 않던 마음의 평화, 삶의 철학이 갑자기 생길 수는 없다.
* 어쩌면 나의 '미혼' 시절이 길어지고 있는 건
내 내면에 그만큼 정리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따로 정리하지 않아도 잘 살고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은 일찍 결혼하고 일찍 부모가 되지만
(그러니 괜찮은 남자 순서로 장가간다는 말은 일부 사실일 거다.)
정리도 안 되고, 정리 안 되면 잘 살기도 어려운 나같은 인간은
미혼 기간을 좀더 늘리면서 마음의 평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 생뚱맞지만
모든 아기들이 충분히 사랑받고 자랐으면 좋겠다.
아이들 몸과 마음 속, 사랑이 부족해 뻥 뚫린 빈자리가 자라
이상성격도 되고, 이상행동도 되고, 병도 되고, 범죄도 되고, 사회문제도 되고
그렇다고 믿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뻥 뚫린 빈자리에는
저마다 필요한 하느님의 섭리가 깃들기를.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