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aus kommt heraus


아는 오빠 미니홈피에 타로점치는 것이 올라 있었다.
소원을 적어넣고 카드를 클릭하면 점괘가 나온다.

'애인이 필요하다'를 쳐 넣고 카드를 뒤집었다.
점괘 해석이 나온다.
'부정적'
-_-;;;

'독일 남자랑 사귀고 싶다.'를 쳐 넣고 다시 해 봤다.
점괘는
'가능할 리가 없다'
-_-;;;

아아 토마쓰, 당신은 정말 내 상상 속에만 있는 거야?

그나마 긍정적인 결말.
'늦어도 서른넷까지는 아기 엄마가 되고 싶다'
클릭, 클릭, 클릭,
점괘는
'긍정적'
아싸. 그거면 된 거야.


* 아주 희한하게도,
토마스에 관한 글을 쓰고 이틀 후 독어 번역 일이 연결이 되었다.
독일어로 얼마간이라도 돈을 벌게 되는 일은 내 생애에 더이상 없을 줄 알았는데.

* 오늘은 싸이월드에서 기사 클릭했다가 뜻밖의 토마스를 발견했다!
http://cyplaza.cyworld.com/media/news/View.asp?PID=A0&ArticleID=2007090411494432210

오오, 이런 안습인 걸.
토마스, 정말 나타나버린 거야?
내가 본4 땐 한국에 올 거야? T.T

* 아래는 토마스 기사의 사진에 보이는 독일어기사 해석.
사진에 가려 안 보이는 부분이 많다.
역시 독일어는.. 즐겁다.

그가 266 킬로그램이었고 옷 사이즈는 XXXXXXXXXL를 입었을 때, 여자들은 그를 쳐다도 안 봤다. 뷔르츠부르크 부근 의 게르브룬 출신 사무직원 토마스(30세). 그래서 그는 179킬로그램을 뺐다. 이제 그는 87킬로그램이다. (옷 사이즈 L) "나는 마침내 여자친구를...(머리에 가려 안 보임) 내 생애의! 난 더 이상 혼자 있고싶지 않아요.  

여기에 2년이 소요됐다. (사진에 가려 해석 불가)  

그의 아침식사  
이전: 토스트 8장과 **(사진에 가림), 계란 두 개.
지금: **(사진에 가린 것) 4장...(사진에 가림)  

점심식사
(사진에 가려서 해석 불가)

* 얼마 전 공부모임을 이끌어 주시는 선생님과 몇몇 공부 친구들이 모여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조촐한 술자리를 가진 적 있다. 맥주 페트에 과자 두어 봉지, 그리고 비엔나 소시지를 한 봉지 사서 전자렌지에 데워 왔는데.. 소시지를 가져온 오빠 가 아뜨거 하며 테이블 위에 소시지 봉지를 떨어뜨리듯 내려놓기 무섭게, 내가 손가락 끝으로 그걸 집어들어서 찢으려고 노력하는데 선생님께서 그러셨다. 내비두고 철수(가명, 공부친구, 나보다 한 살 어림, 그 자리에서 가장 어린 남성이었음..) 시키라고. 그리고 그럴 땐 '아 뜨거~' 하면서 손을 얼른 떼어야지 그런 거 너무 잘 뜯으면 새벽까지 편의점에서 술 마시는 게 생활인 사람으로 오해받기 쉽고 그런 여자 좋아할 남자 아무도 없다고.

아아 그렇구나~!

* 오늘은 또 공부모임 친구들(실은 동생들, 모두 남자.) 몇 명과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다들 국물이 먹고 싶다고 해서 근처 해장국집으로 갔다. 메뉴는 선지, 콩나물, 시래기 해장국이 있었는데 나는 선지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애들 말이 남자 앞에서 선지 해장국 시키는 여자는 솔직히 깬다는 것이었다. 이래저래 물어본 결과 나온 결론. 남자들이 '여자들은 싫어하는 혐오식품'으로 생각하는 음식들(그 자리에서 언급된 것은 개고기, 빙어, 추어탕, 선지국, 내장탕, 순대국 등등)은 남자 앞에서 먹지 마라. 단, 그 남자랑 애 낳고 난 뒤엔 괜찮다. 그 전엔 선지국 먹고싶거든 남자랑 갈 생각 말고 동생들한테 전화해라. (이 녀석들은 가끔 나를 형이라고 부른다. -_-;;)

오호 그렇구나~!

* 옛날 혈기왕성하던 시절에 이런 소리 들었으면 아무것도 아닌 소시지나 선지국 갖고 신나게 싸우고 이 사람들 안 보려 들었을지도 모른다. ㅋㅋ. 사실 저런 소리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각에서 나온 말들은 아니라는 건 여전히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뭐 어떤가. 소시지를 먹으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선지국도 평생 못 먹는 게 아니라 애 낳을 때까지만 참으면 되는데. 푸훗.

과거 '혈기왕성하던' 나는 배우자감으로서의 좋은 남성을 만나서 결혼을 전제로 한 관계를 이루는 것에 별 가중치를 두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가 이루어지는 룰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아 뭐 룰이라고 해서 지켜야 하고 안 지키면 처벌받는 것은 아니지만, 특수한 분야에서 쓰이는 전문어와 문형을 잘 파악하고 있으면 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것처럼, '짝꿍 찾기'를 목적으로 만나는 남녀관계에서 감정이 오고 가는 혹은 생겨나고 사라지는 패턴을 안다면, 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겠지.

또한, 방향을 바꾸어 생각해서..
어디서 동료로 만난 관계면 모르되, 남녀사이로 만난 남자가, 처음부터 개고기 선지국 빙어회 이런 거 먹으러 다니고, 데이트랍시고 만나서 편의점 앞 파라솔테이블에서 비엔나 소시지 뎁혀다 던져주고 찢어달라고 한다면 내 쪽에서 먼저 기분이 확 상하겠지.

그러니 남녀관계에서 평등한 동료적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아무 거리낌없이 선지국을 시키던 내게 응해온 남자는 '선지국 먹는 여자'를 용인하는 만큼 나랑 선지국 이상은 먹을 생각이 없는 남자들이었던 게지.

* 모든 권위와 모든 편견과 모든 규정된 것들에 저항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내가 저항하려던 그 모든 것들이 어떤 식으로든 의의가 있는 것들이며
적어도 생존과 편리를 위해서라도 존중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겠다.

그렇지만 여전히 좀 시원치 않은 부분은 있다.
그렇다고 그 모든 것들이 꼭 '좋은' 것도 아니고, 그 모든 것들이 꼭 유지되어야할 것들도 아니고,
세상은 어쨌든 변화해왔고 변화하고 있으며
그 모든 권위와 규정된 것들이 꼭 언제나 똑같은 무게로 유효한 것은 아니잖은가.
상식이 누구에게나 상식은 아니지 않은가.
또한 지치지 않고 저항하고 문제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은
좀더 평등하고 좀더 살맛나는 곳으로 변화해 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뭐. 좀 시원치 않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갖고 고민하진 않을란다.
살면서 적당히, 균형을 잡아가겠지. ^^

박혜경의 '주문을 걸어'가 생각나는군.
남자친구에 대한 새로운 마법!

독일인 또는 오스트리아인 남자를 만날 테야!
편의상 '토마쓰'라고 지칭하자구..

토마쓰는 178cm에 70Kg이에요.
머리는 살짝 곱슬에 갈색이고요, 눈도 갈색이에요.
가톨릭 신자이구요~

한국과 아시아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어도 곧잘 하지요.
침에  관심이 많고
의료수단으로서의 침에 대한 신뢰가 대단해요.
내가 침을 놔 준다고 하면 순순히 맞고 잘 낫지요~!

토마쓰는 평화와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돈을 버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내 한 몸 잘 사는 것만 추구하긴 너무 심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토마쓰는 지혜로워서, 늘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건강을 잘 챙기고요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요.
자신에게 신경쓰고 투자하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에요.

무엇보다도 나를 무척 사랑해요~!!!

아웅, 토마쓰~!!

나는 토마쓰를 서른셋에 만나서 그 해에 결혼해 애를 만들고 서른넷 봄에 낳을 거에요.

어디서 무엇하고 있는지 모를 토마쓰
오늘 밤도 굿나잇~!

*토마쓰의 목소리는 테너에 해당돼요. 직업 테너가수는 아니지만 음악을 사랑하죠. 특히 클래식 음악이랑 여러나라의 전통음악에 관심이 많아요. ㅋㅋ 토마쓰가 테너아저씨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테너아저씨가 좀더 특정하게 구체화된 게 토마쓰에요~


* 스물네 살에 나는,
인문대 대학원에 입학했었다.
나는,
결혼 같은 거 하는 여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고
한국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그냥 사는 사람들은 미쳤거나 무능력한 사람들 뿐이라고 생각하는
다소 과격한 머릿속을 가진 애였다.
(다소라기엔 좀 많이 과격해 뵌다.-_-;;)

그 때에 나는
작년 여름까지 나의 남자친구였던 사람을 사귀기 시작했다.
그는 어서 결혼을 하고 싶어했고
한국에서, 친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사는 것을 좋아했다.

* 그와 나의 이런 성향이 단적으로 드러났던 것이 여행에 대한 취향이다.
나에게 여행은 나를 얽어맨 것들에서 벗어나 나를 만나는 기회였다.
당연히 여행은 혼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여전히 한다.
여럿이서 가는 여행도 그 나름의 의미와 재미가 있지만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여행이란 관광버스였다.
관광버스 대절해서 친한 사람들 다 불러 태우고,
심심하지 않도록 플레이 스테이션과 게임씨디, 각종 디비디 브이씨디를 싸갖고 가는 것.
그게 그가 꿈꾸는 여행이었다.

그 때는 그가 내 남자친구였고 내 옆에 있었기에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지금 하자면
그럴려면 왜 여행을 가는데?
수많은 친구들도 있고 게임기도 있는데
여행에서 어떤 새로운 것을 얻을 건데?
새로운 것을 얻지 않을 거라면, 뭐하러 여행을 가는데?

* 나는 인문대 대학원에 들어갔고,
흔히 그러하듯 석사를 마친 후 박사로 유학을 가서 어떻게든 백인들이 사는 나라에 자리잡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 나에게,
어서 가정을 꾸리고 싶어하는,
사귄지 두 달만에, 자기 부모님의 결혼하라는 성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독일이나 미국이나 이런 데 사는 것하고는 전혀 상관없게 생긴
그는
아무리 좋아도
부담스러운 사람이었다.

어느 날엔가, 마을버스를 내려 짧은 숲길을 지나 인문대 건물로 내려가는 길을 함께 걸으며
내가 물었었다.
내가 만약에 미국 같은 데 교수 자리를 얻으면 어떻게 할 건데?
그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지금 닥친 일이 아니니까 나중에 생각하자고.
어딘지 석연치 않고 탐탁지 않은 기분이었으나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라는 그의 말은 맞게 들렸으므로 입을 다물었다.
그저 막연하게,
그 사람은 나의 꿈과 나의 커리어를 외면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만 5년도 넘는 시간동안
그의 그 말과 그 태도가 나를 옭아매었다.
내 하고 싶은 대로 하자면 나는 온 힘을 다해 백인들의 나라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불분명한 대답을 내세우면서
사실은 나랑 결혼해 한국에서 자기 가족과 자기 친구들과 자기 커뮤니티 속에서 살려는
외국에 살기는 커녕 외국에 여행 가려는 생각조차 않는
(위에서 말했지만 그의 관광버스 개념은 나의 여행개념과 전혀 다르다.)
그런 남자와 버젓이 사귀고 있으면서
그런 준비를 혼신을 기울여 할 수는 없었다.
그건 그와 헤어짐을 준비하는 것과 같이 여겨졌고, 차마 그렇게는 할 수가 없었다.

사실은 그를 사귀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그를 그만 만나고 그에게서 도망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번번이 포기했다.
어떨땐 생각으로 그치고,
어떨땐 헤어지자는 말을 하러 나갔다가 그만 그 말을 다시 거두고야 들어왔고,
어떨땐 휴대폰을 끄고 잠적했다가 며칠만에 나타나 다시 그를 만났다.

로맨틱하게 말하자면 그건 일종의 '사랑의 불가사의'였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내 인생을 사랑한다던 내가,
남자 때문에 인생 말리는 여자 우습게 보던 내가,
결혼 따위를, 그것도 한국 사회에서, 하고싶어 하는 여자는 이해할 수 없다던 내가,
그러고 있었던 거다.
말만 그럴듯하게 할 뿐 내 꿈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생각은 없던 그를,
결국엔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내가 잘 해 주면' 한 사람이 자기 신념과 인생을 포기하고도 오로지 그의 아내라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여겼을 뿐인 그를,
지가 지금 날뛰어봤자 결혼해봐라 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인 그를,
그렇게 좋아 죽는다고 잡고 있었던 거다.
결혼을 원하고 태어난 땅에 살고 싶어하는 '정상적인' 그에게 화답하지 못하는
결혼을 원하지 않고 태어난 땅을 떠나고 싶어하는 '비정상적인' 나를 자책하고 탁하고 꺾으려고
5년도 넘는 세월을 '여절여차여탁여마' 하고 있었던 것이다.

5년이나 지나자, 하늘도 감동을 했는지
마침내 내 마음이 깨지고 떨어지고 갈아져서
결혼하고 싶은 상태가 되더라.
여전히, 결혼이라는 제도는 별로 취급해줄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이랑은 결혼을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었다.
나이가 들어 또래들이 결혼을 하고, 부러울 만큼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한 몫 했으리라
어떻게 할 수 없이 쌓여온 세월도 한 몫 했고
정말로 내가 으깨지고 갈아져서 '정상'에 가까워진 부분도 있었으리라.

그런데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고 보니
그는 별로 결혼하고 싶은 상대가 아니었다.


* 이제 벌써 열 달 가까이 지났다.
이젠 좀 많이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누구 결혼한다 소리만 들으면 뒤집어진다.
겉은 딱지가 앉았어도
속은 여전히 끓탕인 거다.
결혼을 되게 좋아해서도 아니고
그 사람을 여전히 못 잊어서도 아닌데
그런데 마음에 든 습은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모난 돌을 깨어내고 갈아내는 노력으로,
결혼하려는 욕구를 만들어 왔고 거의 손에 넣을 뻔했는데
애초에 좋아하지도 않았던 거지만 거의 들어올 뻔한 걸 잃은 그 혼란은
꽤나 오래 가는 것 같다.

처음부터,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 떄도 알았더라면
그렇게 미적지근하게 발을 빼며
내 꿈에 동참하지 않으려는 남자는 만나는 게 아니었는데.

* 엊그제 동기 동생들과 함께 경혈학 교수님께 찾아갔다가
미국 쪽으로 진출하고 싶다는 동기에게 교수님께서 해 주시는 말씀을 듣다가
아, 내가 잘못 끼운 첫 단추가 거기였구나, 깨달았다.
스물넷 아깝고도 아까운 나이에 내꿈을, 내 느낌을 무시한 죄로
나는 기나긴 방황과 어둠, 그 끝의 허무와 아픔을 겪은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 떄도 알았더라면,
지금 만나는 스승들을 그 때 만났더라면..
부질없는 이런 소리들을 한 번 중얼거려나 본다.

* 그래도 나
이렇게 만나게 된 스승과 멘토들에게 감사하고
내가 나보다 조금 어린 친구들에게 뭐라도 경험에서 나온 말을 해 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마침내 파묻혀버리지 않고 어쨌든 벗어나온 내가 소중하다.
그리고
그 불가사의한,
스스로 지어냈던 끓탕 또한
불가해한 사랑의 기억으로서
소중하게 생각할란다.


‘TV·게임과 외도하는 남편’…“누가 좀 말려줘요” - 한겨레, 2007년 2월 20일

「대화단절에 교육 악영향까지 남편이 원인제공했다는 생각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조씨는 이혼을 제의했다. 이에 놀란 남편이 함께 부부상담을 받은 뒤 관계도 회복됐고, 텔레비전 중독 증상도 크게 나아졌다. 」

「건국대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아내들은 남편과 ‘관계’를 맺으며 쉬지만, 남편들은 동굴 속에서 혼자 쉬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과부하 상태에서 휴즈가 끊어지듯, 위계를 강조하는 권위적인 회사와 아이들 교육 위주인 가정 사이에서 의도적인 정신적 방전을 만들어낸다는 풀이다. 하 교수는 “남편들이 텔레비전 채널을 쉼없이 돌리는 건 자신과 텔레비전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놓고 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방어막을 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자기만의 방(동굴)을 만들려는 소극적인 욕구라는 것이다. 마라톤, 싸이클, 밤낚시처럼 혼자 하는 운동이나 취미활동에서 자신의 공간을 찾기도 한다. 」




* 헤어진 옛 애인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생각.

* 하지만 내 나름대로, 할 만큼 했다는 것도 사실이라는 생각.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먹혀드는 언어를 모르는 데다 내 힘도 약한 상태에서
'할 만큼 했다'는 것은 사실 참 초라하고 무력하다는 생각.
얼마 전 바람결에 그가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엔 감사하고, 다음엔 분노하고, 결국엔 내 연이 아니었음을 다시 깨닫던 기억.

* 어쨌든 전자게임은 '어둠'의 속성을 참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생각.

* 내가 또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될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 남자의 '동굴'은 차라리 마라톤이나 등산이기를 간절히 바람.

*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남자는 절대로 안 만나야겠다는 생각.

* 리모콘을 돌려대는 건,
'지금, 여기, 자기자신'에 만족하지 못하며
'파랑새' 혹은 '네 잎 클로버'를 찾아 헤매 다니는
'최상주의자'의 행동으로 이해하는 게
더 설득력 있다는 생각.

* 동굴이라는 둥 관계라는 둥, 이해와 공감이라는 둥 문제해결이라는 둥 하지만
여자들의 자기 표현은 들어줄 줄 모르고 성마르게 결론내고 설득하고 납득시키려고 해 문제를 빚는 남자들이, 여자들한테는 늘 들어주고 품어주기를 요구한다는 생각. 뷁. 그건 '화성 남자'류 책들이 말하는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인 의사소통방식 차이'라기보단, 남자가 여자를 얕잡아 지도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한편으론 무한한 모성애를 가진 엄마역할을 요구하는 재수없는 버릇 때문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 동굴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기로는 여자도 뒤지지 않게 필요한데 게임이나 TV 따위에 중독돼 눈이 뻘개지는 주제에 여자의 공간은 인정하지도 지켜주지도 못하는 게 수많은 남자들의 행태라는 생각. (살짝 분노 모드)

* 상당히 이른 부친상의 기억은
'영원한 사랑의 결합'에 대한 치명적인 불신을 안겨줬다는 생각.
죽을까 봐 죽을까 봐 죽을까 봐
좀머씨처럼 도망다니는 정신을 만들고야 말았다는 생각.
이런 여자랑 결혼하려는 남자는
게임도 안 하고 술도 안 하고 담배도 안 하고
운동하고 기도하고 명상하고
바르게 살고 건강하게 살고 지혜롭게 살아도 부족하다는 생각.
불행히도 옛 애인은 그걸 전혀 이해 못했었다는 생각.
그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내가 그를 진심으로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 시간이 제법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를 참 잊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 그것이 헤어짐을 후회한다는 뜻은 또 아니라는 생각.

* 그래도 어디선가 나의 테너 아저씨가 열심히 운동하고 연습하고 기도하고 살고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편이 건강과 행복에 유익하리라는 생각.

* 쓰다 보니 인용한 기사의 논지나 처음 쓰려고 했던 글의 방향과는 점점 더 멀어져 간다는 생각.

* 객관적인 상황의 변화보다 '주의'의 이동과 집중이 문제 해결의 진짜 열쇠라는 생각.
바로 위의 네 개 항목을 적으면서 관찰한 내 마음이 알려주는 진실.

* 더 엇나가기 전에 이 글 그만 접어야겠다는 결론.
^.^

PS: 이 글에서 투덜댄 대상은, 어떨 땐 신문기사, 어떨 땐 불특정 다수의 남자, 어떨 땐 옛 애인(들), 어떨 땐 내가 본 적 있는 특정 남성입니다. 매 꼭지마다 다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라며...

 

스무 살 언저리였다.

스무 살 그 언저리 땐 또 그 나름대로

한 살 한 살이 다 목숨 걸 만큼 달랐지만

당당히 나이 앞에 3자 달게 된 지금 돌아보면

그것도 스물 언저리의 일이다.


내가 워낙 동네방네 소문 다 내며 연애하는 타입이었으므로

모임의 모든 사람들은, 좀 과장하자면,

나를 만나기 전부터 Heraus는 애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친구는 나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술자리 후에,

술이 머리끝까지 취한 친구와 내가 단 둘이 남게 되었다.

친구는 한 잔 더 하자며 나를 모임의 단골 술집으로 데려갔다.

다행인지, 우리 모임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친구는 500 한 잔을 더 시켰고,

나는 술은 더 못하겠다고 냉녹차 한 잔을 시켰다.

냉녹차가 나온 길다란 유리잔에 턱을 괴고야 간신히 상체를 세울 정도로

나는 취기가 많이 올라 있었다.

나못지 않게 취한 듯한 친구는 500 한 잔을 앞에 놓고

취한 사람 특유의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는 화법으로

빙빙 두르고 둘둘 말고 빽빽히 꼬아서 무슨 이야기를 해댔다.

나는, 몸은 가누지 못할 지경이었지만 정신은 말짱히 살아있었다.

친구의 두르고 말고 꼰 말을 풀어 보면 이런 문장이 됐다.

“너도 나한테 관심있지 않니?”

밑도 없고 끝도 없이. 너도 나한테 관심있지 않냐니.

최대한 풀어낸 이 말조차 한 번 더 에둘려 있었다.

친구의 그, 고백이라면 고백이랄 말을,

너무 취해서 못 알아듣는 척 해 버렸다.

냉녹차 잔에 턱을 괸 채 잠들락 말락 하는 나를

친구가 택시 태워 집에 보냈다.


생각해 보면 참 풋풋한 시절이다.

그렇게 못 견딜 마음을

두 사람 다 술이 머리끝까지 취할 만큼 아니면 입에 담아내지도 못할...

그러고도 대놓고는 말을 못할 그 마음..

게다가, 남의 눈이 빤한 단골 술집에나 겨우 데려갔다가,

곱게 택시태워 보내는 그 마음이란..

스물이 아닌 서른 언저리에 만난 남자라면 그랬을까.

둘이 다 술이 머리끝까지 취했는데, 맘에 둔 여자랑 단 둘이 남았을 때

그러기가 쉬울까, 서른 된 남자라면.

나중에 민망해지고 틀어질 지라도, 저질러 보려 하지 않을까.

풋풋했던 친구처럼 에두르고 에둘러서 어렵게 말을 건네긴 커녕

드라마 속의 어떤 ‘나쁜 놈’처럼 나랑 한 번 자자, 그러기가 십상 아닐까.

그런 식이라면 나도

가잔 대로 순순히 따라가 고백이라면 고백인 그의 말을 듣고,

그저 취하고 잠이 와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걸로 곱게 접진 못할 거다.

가랭이라도 한 대 걷어찼겠지.
그리고, 그러고 나서도 둘이 계속 마냥 편하고 좋은 친구이기는 불가능할 거다.


친구는 아직도 나의 좋은 친구이다.

그래서 더욱,

그 때의 풋풋함이

참 고맙다.


지난번에 쓴 어떤 글에서 다음번 남친의 직업을 결정했다고 했다.

사실 테너 성악가를 만나겠다는 게 뭐 진짜 절실한 희망사항이라기보다는
그냥 가벼운 농담 같은 희망사항이었다.
테너 성악가, 멋지지 않은가 말이다. ^^
별 생각 없이 가볍게 쓴 글이지만
그 글을 쓰면서 뜻하지 않은 소득을 얻었다.

6년이나 애인을 사귀는 것도, 6년이나 묵은 애인을 나이 서른 다 돼서 정리하는 것도,
미친 짓에 가까운 짓이다.
그 미친 짓을 하고 나서
분명 내가 저지르고 내가 선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억울하고 뭔가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잘못한 것 같고
계속 마음이 아프고 힘들고 그랬다.
힘든 거야 당연하긴 하지만.. 지나치게 못 벗어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 글을 쓰면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의 상을 구체화하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내가 헤어진 이유가 명확해지면서
내 마음 속에서 이별이 속속들이 받아들여지더라.
억울할 일도 아니고, 실수한 일도 아니라는 것,
내가 좀 힘이 센 사람이었다면 다른 결과에 이를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의 나로선 할 만큼 하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었다는 것,
그게,
나 자신을 달래기 위해 억지로 머릿속으로 되뇌는 수준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동의하고 확인하는 수준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되도록 74~82년생으로 키는 171센티미터 이상이고
비디오게임을 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완벽하고 칼같은 사람은 아니더라도 지속적으로 자기관리에 신경을 쓰고(체중과 체력 관리 포함)
클래식/국악을 좋아하고 (테너 성악가 및 각종 연주 전공자 환영-_-)
지속적으로 자신을 개선하려 하고 특히 영적인 성장에 관심이 있으며
자기와 자기주변뿐만 아니라 타인들의 삶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있는
괜찮은 남자를 아시거든...

소개해 주세요. -.-

직업뿐만 아니라 스펙도.

테너 성악가. 음, 어마어마한 쏠리스트보다는 적절한 합창단원이라든가 학교 선생이라든가 하는 직업이 있으면 좋겠다. (나 소심하다. 어마어마한 예술가 뒷바라지할 자신도 없다.) 키는 174~176센티미터, 몸매는 탄탄하고 두 팔로 안기에 무리없으면 된다. 푹신푹신하고 두 팔이 살짝 짧은 몸매 완전 사절이다. 깡마른 것도 싫다.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다니는 사람이어야 한다. 담배와 비디오게임은 하면 안 된다. 술은 스스로 통제 가능한 정도 범위라면 마셔도 좋다. 지속적으로 운동과 식사에 신경쓰며 건강을 챙기고, 아프면 병원에 가거나 푹 쉬거나 하여간 적절한 처치를 신속하게 찾는 사람, 곤경에 처하면 적절한 방식으로 도움을 청할 줄 아는 사람, 함께 기도와 명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남자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면 직업은 바뀌어도 좋다.
다만, 음악을, 특히 클래식과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제 그 스펙에 맞는 남자만 찾으면 된다.
...

근데, 동기 동생이 그러더라.
찾는 것보다, 하나 낳아서 키우는 게 빠르겠다고.
정말 그렇게 어려운가? ㅋㅋ


* 12월 16일에 친구들과 얘기하고서 조금 더 수정. 키는 나보다 15센티 이상 크기만 하면 된다. (내 키가 공식적으로 158 비공식적으로 156이다. ㅋㅋ) 나는 이전에 사귀던 사람들이 나한테 말해준 자기 키를 기준으로, 너무 작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한 거였는데, 친구들 말이 174면 남자 치고도 조금 큰 편이란다. 키 큰 사람을 특별히 추구하는 건 아니지만, 보통 키 정도는 돼 줬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내 어깨를 안고 걸어다니기에 무리 없을 정도의 키차이는 됐음 좋겠다. 너무 많이 큰 사람이면 대화할 때 고개가 아플 우려가 있으므로 좀 안 좋지만, 사실 키라는 건 큰 고려대상은 아니다.

근데, 정말 낳아서 키우는 게 빠를 정도로 이런 남자가 드물까? 두 팔로 안을 수 있을 정도의 몸매(=+= just friend에 나온 표현)만 되고, 얼굴이 웃는 상이고, 비디오게임과 담배를 멀리하면 되는데. 함께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하고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되는데. 이게 너무 꿈이 큰 건가? 으음. 하지만 이 이하로 눈을 낮추고 싶진 않다!!


옛날에 어떤 잡지에서 본 말.

영어공부 열심히 하던 사람이
어느날 밖에서 완전히 얼어갖고 집에 겨우 들어왔는데
미국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와서 '하우 아 유?' 하기에
'아임 쏘 콜드 어쩌구 안 좋아.' 했더니
친구가 마구 웃더란다.
한국인에게 하우아유 물었을 때 '암 파인 땡큐' 이외의 대답을 듣기는 처음이라며.

지난 여름, 오래 사귄 애인이랑 헤어지고 나서 얼마 후부터
나 괜찮아 멀쩡해 아무렇지도 않아 오히려 축하할 일인 걸
그러고 다녔는데
이제야 인정.
I'm not fine.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하나씩, 
사로잡힌 것에서 벗어나고
조금 더 멀쩡한 상태에 가깝게 다가가기도 했지만
여전히 나는 안 괜찮다.
젠장.
맨날 이런 식이야 맨날.
안 괜찮으면 안 괜찮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밖으로 안 괜찮음을 알려 양해를 구하고
그래야 인생이 덜 꼬이는데
늘 병신처럼 '난 괜찮아'를 외치면서
이리 구르고 저리 넘어지고 다 망쳐놓고
나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그동안 안 괜찮았고
여전히 안 괜찮다는 거.

미안하다 Heraus.
자꾸 방치해서.



Heraus’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com / Original WP theme by John Wrana / tattertools skin by yuno & N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