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적어넣고 카드를 클릭하면 점괘가 나온다.
'애인이 필요하다'를 쳐 넣고 카드를 뒤집었다.
점괘 해석이 나온다.
'부정적'
-_-;;;
'독일 남자랑 사귀고 싶다.'를 쳐 넣고 다시 해 봤다.
점괘는
'가능할 리가 없다'
-_-;;;
아아 토마쓰, 당신은 정말 내 상상 속에만 있는 거야?
그나마 긍정적인 결말.
'늦어도 서른넷까지는 아기 엄마가 되고 싶다'
클릭, 클릭, 클릭,
점괘는
'긍정적'
아싸. 그거면 된 거야.
박혜경의 '주문을 걸어'가 생각나는군.
남자친구에 대한 새로운 마법!
독일인 또는 오스트리아인 남자를 만날 테야!
편의상 '토마쓰'라고 지칭하자구..
토마쓰는 178cm에 70Kg이에요.
머리는 살짝 곱슬에 갈색이고요, 눈도 갈색이에요.
가톨릭 신자이구요~
한국과 아시아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어도 곧잘 하지요.
침에 관심이 많고
의료수단으로서의 침에 대한 신뢰가 대단해요.
내가 침을 놔 준다고 하면 순순히 맞고 잘 낫지요~!
토마쓰는 평화와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돈을 버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내 한 몸 잘 사는 것만 추구하긴 너무 심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토마쓰는 지혜로워서, 늘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의 건강을 잘 챙기고요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요.
자신에게 신경쓰고 투자하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에요.
무엇보다도 나를 무척 사랑해요~!!!
아웅, 토마쓰~!!
나는 토마쓰를 서른셋에 만나서 그 해에 결혼해 애를 만들고 서른넷 봄에 낳을 거에요.
어디서 무엇하고 있는지 모를 토마쓰
오늘 밤도 굿나잇~!
*토마쓰의 목소리는 테너에 해당돼요. 직업 테너가수는 아니지만 음악을 사랑하죠. 특히 클래식 음악이랑 여러나라의 전통음악에 관심이 많아요. ㅋㅋ 토마쓰가 테너아저씨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테너아저씨가 좀더 특정하게 구체화된 게 토마쓰에요~
* 스물네 살에 나는,
인문대 대학원에 입학했었다.
나는,
결혼 같은 거 하는 여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고
한국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그냥 사는 사람들은 미쳤거나 무능력한 사람들 뿐이라고 생각하는
다소 과격한 머릿속을 가진 애였다.
(다소라기엔 좀 많이 과격해 뵌다.-_-;;)
그 때에 나는
작년 여름까지 나의 남자친구였던 사람을 사귀기 시작했다.
그는 어서 결혼을 하고 싶어했고
한국에서, 친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사는 것을 좋아했다.
* 그와 나의 이런 성향이 단적으로 드러났던 것이 여행에 대한 취향이다.
나에게 여행은 나를 얽어맨 것들에서 벗어나 나를 만나는 기회였다.
당연히 여행은 혼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여전히 한다.
여럿이서 가는 여행도 그 나름의 의미와 재미가 있지만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여행이란 관광버스였다.
관광버스 대절해서 친한 사람들 다 불러 태우고,
심심하지 않도록 플레이 스테이션과 게임씨디, 각종 디비디 브이씨디를 싸갖고 가는 것.
그게 그가 꿈꾸는 여행이었다.
그 때는 그가 내 남자친구였고 내 옆에 있었기에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지금 하자면
그럴려면 왜 여행을 가는데?
수많은 친구들도 있고 게임기도 있는데
여행에서 어떤 새로운 것을 얻을 건데?
새로운 것을 얻지 않을 거라면, 뭐하러 여행을 가는데?
* 나는 인문대 대학원에 들어갔고,
흔히 그러하듯 석사를 마친 후 박사로 유학을 가서 어떻게든 백인들이 사는 나라에 자리잡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 나에게,
어서 가정을 꾸리고 싶어하는,
사귄지 두 달만에, 자기 부모님의 결혼하라는 성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독일이나 미국이나 이런 데 사는 것하고는 전혀 상관없게 생긴
그는
아무리 좋아도
부담스러운 사람이었다.
어느 날엔가, 마을버스를 내려 짧은 숲길을 지나 인문대 건물로 내려가는 길을 함께 걸으며
내가 물었었다.
내가 만약에 미국 같은 데 교수 자리를 얻으면 어떻게 할 건데?
그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지금 닥친 일이 아니니까 나중에 생각하자고.
어딘지 석연치 않고 탐탁지 않은 기분이었으나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라는 그의 말은 맞게 들렸으므로 입을 다물었다.
그저 막연하게,
그 사람은 나의 꿈과 나의 커리어를 외면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만 5년도 넘는 시간동안
그의 그 말과 그 태도가 나를 옭아매었다.
내 하고 싶은 대로 하자면 나는 온 힘을 다해 백인들의 나라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불분명한 대답을 내세우면서
사실은 나랑 결혼해 한국에서 자기 가족과 자기 친구들과 자기 커뮤니티 속에서 살려는
외국에 살기는 커녕 외국에 여행 가려는 생각조차 않는
(위에서 말했지만 그의 관광버스 개념은 나의 여행개념과 전혀 다르다.)
그런 남자와 버젓이 사귀고 있으면서
그런 준비를 혼신을 기울여 할 수는 없었다.
그건 그와 헤어짐을 준비하는 것과 같이 여겨졌고, 차마 그렇게는 할 수가 없었다.
사실은 그를 사귀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그를 그만 만나고 그에게서 도망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번번이 포기했다.
어떨땐 생각으로 그치고,
어떨땐 헤어지자는 말을 하러 나갔다가 그만 그 말을 다시 거두고야 들어왔고,
어떨땐 휴대폰을 끄고 잠적했다가 며칠만에 나타나 다시 그를 만났다.
로맨틱하게 말하자면 그건 일종의 '사랑의 불가사의'였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내 인생을 사랑한다던 내가,
남자 때문에 인생 말리는 여자 우습게 보던 내가,
결혼 따위를, 그것도 한국 사회에서, 하고싶어 하는 여자는 이해할 수 없다던 내가,
그러고 있었던 거다.
말만 그럴듯하게 할 뿐 내 꿈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생각은 없던 그를,
결국엔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내가 잘 해 주면' 한 사람이 자기 신념과 인생을 포기하고도 오로지 그의 아내라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여겼을 뿐인 그를,
지가 지금 날뛰어봤자 결혼해봐라 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인 그를,
그렇게 좋아 죽는다고 잡고 있었던 거다.
결혼을 원하고 태어난 땅에 살고 싶어하는 '정상적인' 그에게 화답하지 못하는
결혼을 원하지 않고 태어난 땅을 떠나고 싶어하는 '비정상적인' 나를 자책하고 탁하고 꺾으려고
5년도 넘는 세월을 '여절여차여탁여마' 하고 있었던 것이다.
5년이나 지나자, 하늘도 감동을 했는지
마침내 내 마음이 깨지고 떨어지고 갈아져서
결혼하고 싶은 상태가 되더라.
여전히, 결혼이라는 제도는 별로 취급해줄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이랑은 결혼을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었다.
나이가 들어 또래들이 결혼을 하고, 부러울 만큼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한 몫 했으리라
어떻게 할 수 없이 쌓여온 세월도 한 몫 했고
정말로 내가 으깨지고 갈아져서 '정상'에 가까워진 부분도 있었으리라.
그런데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고 보니
그는 별로 결혼하고 싶은 상대가 아니었다.
* 이제 벌써 열 달 가까이 지났다.
이젠 좀 많이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누구 결혼한다 소리만 들으면 뒤집어진다.
겉은 딱지가 앉았어도
속은 여전히 끓탕인 거다.
결혼을 되게 좋아해서도 아니고
그 사람을 여전히 못 잊어서도 아닌데
그런데 마음에 든 습은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모난 돌을 깨어내고 갈아내는 노력으로,
결혼하려는 욕구를 만들어 왔고 거의 손에 넣을 뻔했는데
애초에 좋아하지도 않았던 거지만 거의 들어올 뻔한 걸 잃은 그 혼란은
꽤나 오래 가는 것 같다.
처음부터,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 떄도 알았더라면
그렇게 미적지근하게 발을 빼며
내 꿈에 동참하지 않으려는 남자는 만나는 게 아니었는데.
* 엊그제 동기 동생들과 함께 경혈학 교수님께 찾아갔다가
미국 쪽으로 진출하고 싶다는 동기에게 교수님께서 해 주시는 말씀을 듣다가
아, 내가 잘못 끼운 첫 단추가 거기였구나, 깨달았다.
스물넷 아깝고도 아까운 나이에 내꿈을, 내 느낌을 무시한 죄로
나는 기나긴 방황과 어둠, 그 끝의 허무와 아픔을 겪은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 떄도 알았더라면,
지금 만나는 스승들을 그 때 만났더라면..
부질없는 이런 소리들을 한 번 중얼거려나 본다.
* 그래도 나
이렇게 만나게 된 스승과 멘토들에게 감사하고
내가 나보다 조금 어린 친구들에게 뭐라도 경험에서 나온 말을 해 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마침내 파묻혀버리지 않고 어쨌든 벗어나온 내가 소중하다.
그리고
그 불가사의한,
스스로 지어냈던 끓탕 또한
불가해한 사랑의 기억으로서
소중하게 생각할란다.
스무 살 언저리였다.
스무 살 그 언저리 땐 또 그 나름대로
한 살 한 살이 다 목숨 걸 만큼 달랐지만
당당히 나이 앞에 3자 달게 된 지금 돌아보면
그것도 스물 언저리의 일이다.
내가 워낙 동네방네 소문 다 내며 연애하는 타입이었으므로
모임의 모든 사람들은, 좀 과장하자면,
나를 만나기 전부터 Heraus는 애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친구는 나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술자리 후에,
술이 머리끝까지 취한 친구와 내가 단 둘이 남게 되었다.
친구는 한 잔 더 하자며 나를 모임의 단골 술집으로 데려갔다.
다행인지, 우리 모임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친구는 500 한 잔을 더 시켰고,
나는 술은 더 못하겠다고 냉녹차 한 잔을 시켰다.
냉녹차가 나온 길다란 유리잔에 턱을 괴고야 간신히 상체를 세울 정도로
나는 취기가 많이 올라 있었다.
나못지 않게 취한 듯한 친구는 500 한 잔을 앞에 놓고
취한 사람 특유의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는 화법으로
빙빙 두르고 둘둘 말고 빽빽히 꼬아서 무슨 이야기를 해댔다.
나는, 몸은 가누지 못할 지경이었지만 정신은 말짱히 살아있었다.
친구의 두르고 말고 꼰 말을 풀어 보면 이런 문장이 됐다.
“너도 나한테 관심있지 않니?”
밑도 없고 끝도 없이. 너도 나한테 관심있지 않냐니.
최대한 풀어낸 이 말조차 한 번 더 에둘려 있었다.
친구의 그, 고백이라면 고백이랄 말을,
너무 취해서 못 알아듣는 척 해 버렸다.
냉녹차 잔에 턱을 괸 채 잠들락 말락 하는 나를
친구가 택시 태워 집에 보냈다.
생각해 보면 참 풋풋한 시절이다.
그렇게 못 견딜 마음을
두 사람 다 술이 머리끝까지 취할 만큼 아니면 입에 담아내지도 못할...
그러고도 대놓고는 말을 못할 그 마음..
게다가, 남의 눈이 빤한 단골 술집에나 겨우 데려갔다가,
곱게 택시태워 보내는 그 마음이란..
스물이 아닌 서른 언저리에 만난 남자라면 그랬을까.
둘이 다 술이 머리끝까지 취했는데, 맘에 둔 여자랑 단 둘이 남았을 때
그러기가 쉬울까, 서른 된 남자라면.
나중에 민망해지고 틀어질 지라도, 저질러 보려 하지 않을까.
풋풋했던 친구처럼 에두르고 에둘러서 어렵게 말을 건네긴 커녕
드라마 속의 어떤 ‘나쁜 놈’처럼 나랑 한 번 자자, 그러기가 십상 아닐까.
그런 식이라면 나도
가잔 대로 순순히 따라가 고백이라면 고백인 그의 말을 듣고,
그저 취하고 잠이 와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걸로 곱게 접진 못할 거다.
가랭이라도 한 대 걷어찼겠지.
그리고, 그러고 나서도 둘이 계속 마냥 편하고 좋은 친구이기는 불가능할 거다.
친구는 아직도 나의 좋은 친구이다.
그래서 더욱,
그 때의 풋풋함이
참 고맙다.
직업뿐만 아니라 스펙도.
테너 성악가. 음, 어마어마한 쏠리스트보다는 적절한 합창단원이라든가 학교 선생이라든가 하는 직업이 있으면 좋겠다. (나 소심하다. 어마어마한 예술가 뒷바라지할 자신도 없다.) 키는 174~176센티미터, 몸매는 탄탄하고 두 팔로 안기에 무리없으면 된다. 푹신푹신하고 두 팔이 살짝 짧은 몸매 완전 사절이다. 깡마른 것도 싫다.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다니는 사람이어야 한다. 담배와 비디오게임은 하면 안 된다. 술은 스스로 통제 가능한 정도 범위라면 마셔도 좋다. 지속적으로 운동과 식사에 신경쓰며 건강을 챙기고, 아프면 병원에 가거나 푹 쉬거나 하여간 적절한 처치를 신속하게 찾는 사람, 곤경에 처하면 적절한 방식으로 도움을 청할 줄 아는 사람, 함께 기도와 명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남자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면 직업은 바뀌어도 좋다.
다만, 음악을, 특히 클래식과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제 그 스펙에 맞는 남자만 찾으면 된다.
...
근데, 동기 동생이 그러더라.
찾는 것보다, 하나 낳아서 키우는 게 빠르겠다고.
정말 그렇게 어려운가? ㅋㅋ
* 12월 16일에 친구들과 얘기하고서 조금 더 수정. 키는 나보다 15센티 이상 크기만 하면 된다. (내 키가 공식적으로 158 비공식적으로 156이다. ㅋㅋ) 나는 이전에 사귀던 사람들이 나한테 말해준 자기 키를 기준으로, 너무 작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한 거였는데, 친구들 말이 174면 남자 치고도 조금 큰 편이란다. 키 큰 사람을 특별히 추구하는 건 아니지만, 보통 키 정도는 돼 줬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내 어깨를 안고 걸어다니기에 무리 없을 정도의 키차이는 됐음 좋겠다. 너무 많이 큰 사람이면 대화할 때 고개가 아플 우려가 있으므로 좀 안 좋지만, 사실 키라는 건 큰 고려대상은 아니다.
근데, 정말 낳아서 키우는 게 빠를 정도로 이런 남자가 드물까? 두 팔로 안을 수 있을 정도의 몸매(=+= just friend에 나온 표현)만 되고, 얼굴이 웃는 상이고, 비디오게임과 담배를 멀리하면 되는데. 함께 음악을 듣고 산책을 하고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되는데. 이게 너무 꿈이 큰 건가? 으음. 하지만 이 이하로 눈을 낮추고 싶진 않다!!
옛날에 어떤 잡지에서 본 말.
영어공부 열심히 하던 사람이
어느날 밖에서 완전히 얼어갖고 집에 겨우 들어왔는데
미국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와서 '하우 아 유?' 하기에
'아임 쏘 콜드 어쩌구 안 좋아.' 했더니
친구가 마구 웃더란다.
한국인에게 하우아유 물었을 때 '암 파인 땡큐' 이외의 대답을 듣기는 처음이라며.
지난 여름, 오래 사귄 애인이랑 헤어지고 나서 얼마 후부터
나 괜찮아 멀쩡해 아무렇지도 않아 오히려 축하할 일인 걸
그러고 다녔는데
이제야 인정.
I'm not fine.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하나씩,
사로잡힌 것에서 벗어나고
조금 더 멀쩡한 상태에 가깝게 다가가기도 했지만
여전히 나는 안 괜찮다.
젠장.
맨날 이런 식이야 맨날.
안 괜찮으면 안 괜찮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밖으로 안 괜찮음을 알려 양해를 구하고
그래야 인생이 덜 꼬이는데
늘 병신처럼 '난 괜찮아'를 외치면서
이리 구르고 저리 넘어지고 다 망쳐놓고
나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그동안 안 괜찮았고
여전히 안 괜찮다는 거.
미안하다 Heraus.
자꾸 방치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