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aus kommt heraus


* 제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이 요즘은 지인들 말고 얼마나 되실랑가요..
하여간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예수님 제자이기도 하고
공자님 제자이기도 합니다.

"네 종교가 뭐냐", 라고 하신다면,
대학시절 종교학 시간에 배운 종교의 정의 - 죽음의 해결책을 어디다 두고 있느냐 -에 따라
그리스도교(정확히는 그 중에서도 천주교)라고 말하렵니다.
나는 죽은 후 천국에 갔다가 언젠가 예수님을 따라 부활할 것에 희망을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죽음에 관한 한.. 내 입장은 명확해요. 내 희망은 해탈도 아니고 자손의 제사도 아닙니다.

그러나 2009년 한국에서 저는
평범하게 제사에 희망을 두고 사는 인구 대부분의 평균보다 훨씬 더
공자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접했다고 자부합니다.
단적으로 묻습니다.
사서 다 읽으신 분들 얼마나 되십니까.
주역 읽으셨거나 읽고 계신 분들 얼마나 되십니까.
이런 책들을 정통 유학자 선생님께 직접 사사받은 분들 얼마나 되십니까.
시경, 서경, 춘추, 예기 단 한 구절이라도 원문 구경했거나 권위자에게 귀동냥하신 분 얼마나 되십니까.

* 그런데 말이죠
우리가 흔히 유교적으로 합당한 예법이며
자손된 자로 당연히 조상께 해야 할 의무로 알고 있는 것들은
상당부분 공자님 가르침은 아닙니다.
(제가 눈으로 확인한 부분도 있고, 유학자 우리 선생님께 귀동냥으로 들은 부분도 있습니다)

단적으로 산소와 제사 모시는 문제 말입니다.
옛날 박통시절 가정의례준칙으로 5대조 이상 제사 모시지 말라고 했었다나요..
어떤 분들은 원래 유교적으로는 9대조까지 조상 제사 지내야 한다고 알고 계시죠
그런데 실은 그게 유교의 우두머리 공자님한테 크게 혼날 일입니다.
9대까지 제사 지내는 건 황제의 예였습니다.
그 밑의 사람들은 경/대부/사/서인 계급에 따라 따로 정해진 예법이 있었고
이에 따르면 일반 사람들은 아버지 제사까지만 지내는 게 법도입니다.
할아버지 제사 정도야, 아버지 돌아가시고 일시에 폐하기 뭐하니까 몇 년 더 모시기도 했다고 합니다.
(논어에 보면 부친 돌아가시고 3년을 부친 뜻을 고치지 말아야 효자라고 나옵니다.)
산소 돌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정도까지만 산소를 돌보고
그 후로는 자연으로 돌아가게 두는 것
이 순리였다고 합니다.
시경에 보면 "옛 사람 무덤 위에 지금 사람이 장사를 지내네"라는 글이 있다고 합니다.
비석도 지금처럼 아무나 세우는 것이 아니였다고 합니다.
역시 황제나 왕이나 돼야 당연스레 비석을 세우는 것이었고
그 외에는 퇴계 선생쯤 되는 나라에 공이 크신 분들만이, 돌아가시면
'저 분은 비석을 세워 드리고 대대손손 산소를 돌보라'고 왕명이 내려와 비석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조선왕조 600년동안 국토가 어떻게 남아났겠냐고
정통 유학자 우리 선생님이 그러십니다.

그러던 것이
너도나도 양반이 된 것처럼
너도나도 황제의 예를 취하는 것으로 변질된 것이지요.
양반이고 계급이고 없어진 세상이니 황제의 예 서인의 예도 또한 없어졌지만
굳이 그것들 중에서 황제의 예를 택해서 실행해야 할까요?
그럼 뭐 우리모두 아홉 궁전을 지어 계절따라 거처를 옮기며 사십시다....
어쨌든 공자님은 논어에서 참람되이 황제의 예를 행하는 사람을 굉장히 미워하십니다.

뭐 어찌됐든 좋다,
너희 아버지 살아 생전에 제사를 얼마나 목숨같이 모셨는데
너희 대에 와서 이걸 바꾸겠다고 난리냐...
뭐 드라마에도 종종 등장하는 대사죠...
유학자 우리 선생님의 견해는 이러합니다.
상례는 돌아가신 분의 예법으로 치르는 게 맞고
제례는 산 사람들 예법으로 치르는 거랍니다.
가령 아버지는 유교식으로 사셨고 자식이 교회에 다닌다면
장례까지는 유교식으로 치러 드리는 게 도리지만
제례부터는 교회식으로 예배 드려도 예에 어긋나는 게 아니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게 예법에 맞네 안 맞네 하며 분란 일으키면 좋아할 조상이 어디 계시겠습니까.
일 맡아 주관하는 사람 뜻 존중하고 가족끼리 화목한 것이 더 중요하답니다.
그러니까 젯상에 어떤 음식이 동으로 가야 할 게 서로 갔다 절을 몇 번 해야 한다 감놔라 배놔라
주례자 아니면 그러지 마시랍니다.
그게 더 예에 어긋나는 거랍니다.
맘에 안 드시면 손수 따로 지내시든가...




* 추석 연휴 마지막 날입니다.
추석 때 우리집에서는 조상님들 산소 이장 문제를 둘러싼 격렬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요즘 세상, 갈수록 살기는 빡빡해져 가고, 사람들의 종교와 사상은 바뀌어 가는데
어느 집인들 산소 문제, 제사 문제로 약간의 혼란, 약간의 변화들이 없을까요.
지금쯤 속이 좀 상해 계신 분들이 많이들 계시겠지요.
저도 실은 속이 되게 상해 있기에,
전부터 꼭 한 번 글쓰고 싶었으나 조심스러워 아껴뒀던 주제 오늘 풀어봅니다.

아래, 김대중 대통령 돌아가신 것을 애통해 하는 글은 썼으나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 조문은 안 갔다.
그 때 서울에 있었으니
맘만 먹었으면 국회도 갈 수 있었을 텐데
안 갔다.
장례식 끝나고 나서야 생각했다.
아 내가 잘못했구나.
갈 걸...
사실 노무현 대통령 때도
같이 다니는 언니들이 같이 가자고 안 했으면 안 갔을 거다.
속상하고 애통하고 뭐라도 해야겠기는 한데
조문하러 가기는 싫었다.

아마 나는 아직도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을 직면하는 게 싫은 것 같다.
아빠가 돌아가신지 14년이 넘었는데도
나한테 초상이란 참 끔찍한 느낌인 거다
물론 주위의 친구들이나 누가 부모님 돌아가셨다 이럴 땐 웬만하면 간다.
나 자신도 당해 봐서 그럴 때 와서 눈인사 한 번 건네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 힘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유족과 나 사이에 끈끈한 관계가 없을 때는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20대 때 온갖 이유 들어 결혼을 거부했었다.
이론은 거창했다.
실제로 나는 가부장적인 결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결혼 자체가 가부장제이므로
결혼제도를 파괴해야된다고
실천도 못할 과격한 사상을 품고 꽤 오랜 시간을 살았다.

그러나 20대 중반 만나던 남자친구가 결혼을 요구했을 때
나를 뒤흔든 공포는
애초에 지키지 못할 게 뻔했던 나의 거창한 신념을 저버릴까봐, 가 아니라
결혼하면 남편도 아프고 죽을 거고, 시부모도 아프고 죽을 거고, 남편의 형제자매와 그 배우자와
하여간 사돈의 팔촌까지, 아프고 죽을 사람이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지독한 공포에 쫓겨
나는 아팠고, 탈출구를 찾아 헤맸고, 한의대에까지 왔다.

이젠 어지간히 성숙했고
어지간히 죽음을, 나든 타인이든 죽는다는 사실을
제법 많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또 깨닫는다.
내가 아직도
안 볼 수만 있으면 안 보고
도망칠 수만 있으면 도망치려 하고 있다는 것.

김대중 대통령을 위해서
연도라도 한 번 바쳐드려야겠다.

당신이
자살하려고 고층건물의 난간 위에 올라 보거나,
당신 팔에 주사기를 꽂아보거나,
수면제 한 줌을 삼켜보지 않았다면,
자살에 대해 함부로 논하지 마라.

당신이 정말 사랑하는, 당신 삶에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당신이 손 쓸 수 없는 사이 제 손으로, 제 발로 죽어버린 적이 없다면
자살에 대해 함부로 논하지 마라.

자살은 사춘기 문학소녀가 앞뒤 안 맞는 습작소설에 등장시키는 낭만적인 사건이 아니다.
문학작품 속의 낭만적인 가난이 실제의 가난이 아니듯,
가난하지 않은 당신이 상상하는 가난하지만 풍요롭고 낭만적인 가난은 존재하지 않듯
'죽을 용기로 차라리 살아갈' 수 있는 진취적이고 낭만적인 자살은 없다.

그야말로 개똥밭에 구르는, 저승보다 나을 것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도
차를타고 가다가 깜빡 사고가 날 뻔하거나 눈앞에 벼락이라도 떨어지면 움찔한다.
그 움찔하는 순간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건
고등 척추동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고등한 대뇌가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기본적인 본능이고, 당신의 고등한 대뇌가 관장하는 思考 이전의 일이다.
의자에 앉아 고무 망치로 무릎을 두드리면 발이 펄쩍 들려 올라가는 것처럼

죽음 앞에서 움찔, 하는 것은 생물적인 반사 반응이다.

정말로 자살하는 사람은 그 지극히 기본적인 반사반응이 작동하지 않을 만큼 아픈 사람들이다.
누군가 자살했다면 그가 드러난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그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라.

죽을 용기로 살라는 말 따위 하고 싶거든 닥치고 당신 삶이나 용기있게 살아라.

나도 죽고싶었던 적 있다고 말하려거든 닥치고 감사기도나 해라.
당신이 죽고싶었다는 것은 '이렇게 말고, 다르게 살고 싶다'는 고등한 대뇌의 작용에 그쳤을 뿐
당신의 본능은 죽음 앞에서 움찔, 제대로 반사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혹은 당신은 다행하게도 누군가의 유형, 무형의 도움과 돌봄에 의해 목숨을 건진 것이다.

당신은 살아있고, 아마도 여러가지 어려움들을 이겨왔고 이기고 있을 것이다.
그 점에 대해 당신 자신을 자랑스러이 여겨도 좋다.
하지만 기억해라.
당신은 정말로 죽어버린 사람에 비해 운이 좋기도 했다.
당신은 어쨌든 그들보다 덜 아팠던 것이고,
그들만큼 아팠다면 어디선가 그 결정적 순간에 도움을 받을 곳이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에 찾아온 사람 같은 물리적인 것이든, 그 순간 당신의 삶의 본능을 일깨운 어떤 기억이나 에너지 같은 무형의 것이든.

그것은 당신을 위해 참으로 잘 된 일이고,
당신은 그것에 대해 충분히 자부심 가져도 좋고 기뻐해도 좋지만,
그래서 그것들을 가지지 못했던 타인들을 당신 멋대로 재단하고 판단할 권리는
당신에게 없다.

그러니 죽은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라.
닥치고 당신 삶이나 챙겨라.
이렇게가 아니라, 먼 훗날 자연스럽게 맞았어도 한없이 애달프고 아까울 사람의 죽음인데
멋대로 입놀려 더럽히지 마라.

* 선종善終
세례를 받고 大罪가 없는 상황에서 맞은 죽음이란다.
엄마가 평화방송에서 보셨다고 하심.

처음 알았다.
주보에 가끔 실리는 신부님들 선종 소식은 봤지만
늘 한글로 봤으니 한자가 뭔지도 몰랐고
알았다 한들 속뜻이 뭔가는 누가 말 안 해 주면 몰랐을 터.
추기경님 돌아가시고
서울대교구 공식발표가 '선종'으로 나서 신문기자들도 '선종'이라 하니 일반인들이 궁금해했고
그래서 평화방송에서도 방송에서 그 애길 했던 모냥.

* 연도
꽥. 이건 한자 찾으라고 하지 마셈.
연옥의 연자, 기도의 도자일 것임.
(자세히 묻지 마셈)
한국 천주교에서 죽은 사람을 위해 행하는 기도.
시편의 구절에서 따온 부분이 많고,
여러 이름으로 하느님을 부르며 죽은 이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있기를 청하기도 하고
성모마리아를 비롯한 여러 성인들을 호칭하면서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기를 청하기도 하는 기도문인데
미, 라, 도를 기본으로 한 전통적인 음계의 곡조를 붙여서 하는 게 보통이다.
그 소리가 꼭 상여소리나 곡소리같이 들린다.

바티칸 차원에서 만든 기도문은 아니라고 한다.
아마도
돌아가신 날로부터 여러날 연속해서 조문을 받다가 장례식을 하는
한국의 장례 문화에 맞춰 만든 것이 아닐까라고 혼자 추측.
(자세히 묻지 마셈)
다른 나라에선 주로 묵주기도를 많이 바친다는 것 같다.
(이것도 자세히 묻지 마셈)

성당에선 자기 성당에 적을 둔 교우가 돌아가시면
팀을 짜서 팀별로 돌아가며 빈소에 조문하고 연도를 바쳐준다.
상황이 좋은 경우에는 거의 낮시간동안 끊이지 않고 연도가 이어지도록...
이렇게 끊임없이 곁을 지키며 끊임없이 기도해 주는 모습에 감동해
가톨릭에 입교하셨다는 케이스도 봤다...
반면 돌아가신 분이 신자고 상주는 신자가 아닌데
끝도없이 밀려와서 구성진 기도소리를 내는 게 부담스러워
상주가 연도팀을 돌려보낸 케이스도 봤다...

가톨릭은 오랜 세월동안 잘 다듬어진 전례형식을 가진 종교이다.
관혼상제의 의식이 모두 교회식의 전례양식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신앙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연도도 아주 중요한 기도로 다루어지고
성당별로, 혹은 성당내 구역별로, 연도 경연대회를 열기도 한다.

근데 나는 이 기도를 아주 싫어한다.
이 기도만 들으면 나는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로 되돌아가는 느낌이 나서
싫다.
연도 안 한다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안 돌아가신 거 되나, 그건 물론 아닌데
구성진 연도 가락을 들으면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의 끔찍한 느낌 느낌들이 살아 올라오는 것 같다.
이젠 돌아가신지도 꽤 되었고
이 상태에서 적응도 했고 성장도 했는데
그런 걸 싹 다 無로 돌리고 14년 전으로 돌아가 버리는 느낌.
그래서 싫다.
물론 누구 실제로 돌아가셨을 때 실제로 빈소에 가면 나도 같이 기도하지만
(어차피 초상집 가면 이미 어느정도 14년전으로 돌아가버리므로 연도한다고 더나빠질 건 없다.)
아무튼 싫다.

그래서 이번에 추기경님 돌아가시고도 연도는 참석 안 했다.
평화방송에서 중계해 주는 것도 안 보고 방에 들어가버렸고
(장례미사는 재방송으로 봤다..)
대전교구에서 하는 것도 미사만 가고 연도는 안 했다.

* 나는 죽음이 두렵다.

그래 뭐, 가톨릭 신자라고 나발불고 다니고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 간다 해도 주님 함께 계시면 두려울 것 없어라'
노래도 부르고 다니지만

솔직히 두렵다.

근데 내 죽음도 두렵지만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죽을 것이 두렵다.
주변 사람들이 죽어서
장례를 치르고, 손님들을 치르고, 내 슬픔과 외로움을 치르고, '님의 부재'에 적응하고...
그 끔찍한 과정들을 겪고 또 겪을 것들을 생각하면 두렵다.
어릴 땐 사실 그래서 결혼하기 싫었다.
결혼하면 죽을 사람들이 두 배가 되니까. -_-;;;

이번에 추기경님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바라보면서
가슴아프고 슬픈 한 켠으로
진정으로, 죽음이 희망이 됨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평화방송 카메라 앞에서 천진한 표정으로
'추기경님이 저 위에 계시다는 것이 희망이다. 추기경님 진심으로 축하해요'
하시는 어떤 신부님,
우리 이제 어떡해 하는 무너지는 마음 옆으로 추기경님께는 참 잘 되었다 하고 고개를 들던 마음
그리고 추기경님을 추모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던
어떤 감사하고 은혜로운 느낌들.

그래서 참 감사하다.
하느님께, 또 추기경님께.


* 때마침 연아의 쇼트 프로그램은 '죽음의 무도'다. ㅋㅋ

* 부산에 다녀왔어요.
후배의 결혼식을 보았고
앞으로 학교를 같이 다니게 될 06학번들과 화려한 웨딩부페를 함께 했고
(앞으로 부산에서 하는 결혼식은 필사적으로 가겠어요!!!부산 웨딩부페 쵝오!)
07년의 마지막날, 8시간 진통 끝에 수술로 애를 낳은 친구와 하룻밤을 보내고
햇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해운대 바닷가의 암벽에 앉아 나를 들여다보고 왔지요.

* 바닷가 암벽 위에서 푸른 바다를 바라보다 수첩에 적었어요.
결국 죽는다.
누구나 죽는다.
무엇을 해도 죽는다.
책임을 져도 죽고
책임지지 않아도 죽는다.
여행을 해도 죽고
책을 써도 죽는다.
다 죽는다. 누구나 죽는다.
결국은 죽는다.
엄마도 죽고
나도 죽고
**도 죽는다.
결국은 전부 다 죽는다.

* 여기까지 쓰고 나서
제어할 틈도 없이 무서운 속도로 튀어오른 문장은
어차피 죽는다면 독일에 살고 싶다, 였어요.
미쳤군. 그놈의 독일. 13년 묵은 나의 고질병.
그 강렬한 감정이라니.
할 수 없다. 이젠 정말 회피할 수 없겠다.
널 뿌리째 캐 버려야겠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 그러고 나서 생각했지요.
어디에 살든 직업은 필요하고
그건 한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독일에 살건 북극에 살건,
일단 면허를 따야겠다고.

* 계속해서 생각했지요.
결국은 죽는다는 절벽같은 진리 앞에서
만약에 어영부영하다가 지금 이대로 죽는다면
무엇을 후회할 것인가 하고.
뜻밖에도
거기에 대한 대답은
최근에 나를 사로잡던 것들이 아니었어요.

한의사로 살아보지 않으면,
침통을 챙겨 전쟁터나 난민캠프에 달려가 보지 않으면,
못 배우고 가난한, 너댓살이면 노동을 시작해 열댓살이면 아이를 낳고 다시 그 아이를 너댓살이면 노동하게 하는 그런 삶말고는 생각하지도 못하는 여자들과 그 허리춤에 매달린 아기들에게 달려가보지 않으면,
이란에 여행을 가서 스카프를 둘러쓰고, 스카프를 둘러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마주해 보지 않으면,

그러면 후회할 것 같다고 나는 적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내가 그렇게 열광해 마지 않는 아기를 낳아보지 않았다고 후회할 것 같진 않았어요.
작가나 예술가가 되지 않았다고,
대단한 비즈니스 우먼이 되지 않았다고,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보지 않았다고,
그렇다고 후회할 거라는 생각도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내가 열광하거나 한탄하느라 시간을 허비한 많은 일들이
사실은 죽을 때 후회할 만큼 내게 절실한 문제는 아니었음을 알았습니다.
그저, 부럽고 탐이 났을 뿐이었던 거죠.

* 죽으려고 죽음에 대한 메모를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나는 '죽어도' 자살은 하지 않을 인간이에요. (라고 나 스스로 생각합니다. ^^)
내 생각을 죽음이라는 절벽 앞으로 이끌고 갔던 건
부산 지하철 명륜동 역에서 본 글귀였습니다.

여우는 살구기름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여우를 잡기 위해 살구기름에 독을 섞어 여우의 길목에 놓는다. 그걸 아는 여우는 살구기름을 쳐다보지 않고 지나쳐간다. 그러나 그 냄새에 못 이겨 조금쯤이야 괜찮겠지 하고 살구기름을 먹는다.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면 여우는 살구기름을 벌써 반이나 먹었음을 알아차리고 자포자기하여 기름을 마저 먹는다. 여우는 기름병 곁을 한 발짝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는다.

묵은해가 끝나갈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유급이라는 사태를 맞았던 내가
새해가 시작될 때 새 생명을 탄생시키고 병원에 누워있던 친구를 만나고 나와 읽은
어느 불교종단에서 포교를 위해 설치한 지하철역의 글귀..
그것이 나에게 그 하룻동안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내 삶의 살구기름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 사로잡혀 한 발짝도 못 빠져나가고 죽어가는가.
그로부터 출발하여 확실한 결론, 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지요.

*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모두 가수가 되는 것은 아니고
운전을 좋아한다고 모두가 운전하는 직업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한의학을 좋아한다고 모두가 한의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경우에..
내가 오랫동안 한의학친화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생활해오긴 했지만
내가 한의학을 좋아하는 환자가 아닌 한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건
그냥 당연하게 한 선택이 아니었어요.
인정하기 조금 짜증나지만 그건 그 당시 사귀던 남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 남자가 나를 결박하여 입시학원에 집어넣은 것은 아니지만
뒤늦게 수능을 다시 보고 한의대에 온 것은
그 남자와 함께 살아보겠다는 것과 맞물린 선택이었어요.
그러다가 그 남자를 놓아버리고 나니 나는 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몸에는 신장결석이 생겼었고,
마음엔 극단적이고 어두운 것과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들이 동시에 깃들었고,
늘 무엇인가에 대해 화가 나 있었습니다.
거의 1년 가까이 그랬던 것 같아요.
지난 봄 엘지챌린저를 지원한다고 정신없이 다니다 실패하고 나서야
내가 뭔가 잘못됐다는 걸 인정하게 됐고
여름방학, 후배들에게 대학을 가르쳐주기 위해 대학을 샅샅이 읽고,
집단상담에 가서 여러 사람에게 '얻어맞은' 후에야 제정신이 들었습니다.

처음 유급사태를 맞이했을 땐, 왜 지금이야, 했습니다.
왜, 정신없던 그 때도 안 당하던 유급을 왜 지금, 왜 좀 열심히 해 보려니까 이제야...
하지만 내가 정말 정신없었던 그 두 학기에 유급이 났다면
난 학교를 떠나버렸을지 모르겠어요.
마음은 없고, 불같은 것들이 내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때니까...
지금 이 시기에 맞는 유급은.. 어쩔 수 없이 속은 쓰리지만.. 많은 것을 얻게 합니다.
유급을 맞지 않았다면 나는 토요일의 그 결혼식에 가지 않았겠고,
아직 병원에 있는 친구를 찾아갔다가 입원실에서 하루를 묵지도 않았겠고,
동쪽을 바라보는 해운대의 절벽에 앉아 동에서 남으로 돌아가는 해를 받고 앉아
죽음을 바라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한의사가 될 '팔자'가 분명한 것 같습니다.

* 아마 봄이 되면 짐을 꾸려 서당에 들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3,4,5,6, 넉 달 정도를 산골에서 글읽고 산책하고 밥만 먹고 지내다 나올 생각입니다.
그러니 그 넉 달동안 이 블로그는 거의 휴면상태가 될 것 같습니다.
큰 이변이 없다면요..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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